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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Feb 11. 2024

결혼 후 첫 명절의 기억

직접 만든 송편이란.

15여 년 전 명절의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명절만 돌아오면, 지금의 내 상황과는 관계없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11월에 결혼한 28세의 어렸던 내가, 결혼 후 첫 명절인 구정을 보낸 후 4개월 만에 이혼하고 싶어 졌던 사건.


식상하지만 어떤 말로도 대체할 수 없는 표현인 "가부장적 경상도 시댁"의 4형제 중 맏이인 아버지 덕에, 종갓집은 아니지만 식구 많은 큰집의 막내며느리인 내가 겪어야 할 명절의 크기에 대해,  겪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다이아 반지나 명품 가방은 혼수로 못해줘도 한복은 비싼 걸로 해야 한다며, 그 시절 시세로 5백만 원도 넘는 명장의 한복을 해주신 시어머니는 명절 내내 한복을 인형처럼 나에게 입히시고는 보는 사람마다 자랑을 했었다. 나는 앞치마를 둘렀다 벗었다 하며 사람들에게 명장 한복을 구경시켜 줘야 했다.(그 한복은 두세 해 명 입혀지다가, 지금은 시댁의 어느 옷장에 처박혀 있는 걸로 안다. 시어머니의 허영의 표징인 그 한복을 나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인형이 된 기분은 사실 내가 느낀 굴욕감의 1/10 정도에 불과했다. 본 게임은 산더미 같은 부엌일에 있었다. 명장의 한복을 입은 식모라니...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생각할 틈도 없었다. 나는 내가 모르는 남편의 친척들을 위해 상을 차리고 치우길 거듭하는 것은 물론, 그 많은 명절 음식을 다 거들었다. (흘동안 가장 피크타임 손님의 수를 세어보니 40명에 가까웠던 게 기억난다.)  물론 여러 명의 숙모님들과 손윗 동서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부려먹기 쉬운 일꾼이었던 듯싶다. 나는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도 모르고 2박 3일을 부엌에서 보냈다. 


색시가 부엌에서 못 나오고 정신 나간 표정으로 일만 하는 것을 보고, 남편은 좌불안석이었다. 여태껏 명절마다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을 얻어먹다가, 결혼 후 남편이 느낀 상황은 매우 달랐을 듯하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은, 남편이 나를 보러 부엌에 들어오기만 하면, "고추 떨어진다"며, 출입하는 것을 나무라셨다. 얼마나 구시대적인 발지 따지고 들 겨를도 없었다. 새 식구라며 아껴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일만 시키는 시식구들의 이중성이 서러워서, 주렁주렁 흐르는 눈물을 숨기기에 바빴다.


하이라이트는, 갑자기 배달 온 찹쌀반죽.  식구가 들어왔으니 떡을 직접 해 먹어야 하겠다며,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시어머니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떡은 퇴근길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3팩에 1만 원 주고 사 먹기만 했던 나는, 찹쌀가루를 반죽해 찜통에 떡을 쪄내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한겨울에 콩 송편이라니, 새 며느리를 위해 정말 많은 것을 준비해 주신 우리 시어머니, 새삼... (원래도 안 좋아했지만, 그 이후로 콩송편은 안 먹힌다.)


마무리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따로 식사하던 것. 산더미 같은 부엌일 후 밥이 제대로 넘어갈 턱이 없건만, 시어머니를 비롯한 여자 어른들은, 많이 먹어라 먹어라 하셨다. 너무 시달려, 먹기는커녕 쳐다보기도 싫었던 명절 음식을 앞에 두고, 는 꾸역꾸역 먹는 척만 했었다. 저 여인들은 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불공평함과 노동의 불균형에 대해 어찌 저리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까 생각하며 입에 음식을 넣다가, 대차게 체해서 소화제를 털어 었던 기억. 절이 끝나도 우리 엄마아빠 보러 보내주질 않아 안절부절못하던 상황은, 많은 집에서 일어나는 너무 식상한 이야기니 생략한다.


그 이후 몇 번의 명절은, 큰 차이 없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일 년에 딱 두 번 명절이니 참아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종교단체나 시설에서 타인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하는데, 며칠의 육체노동이 뭐 그리 힘드냐며, 가족의 일이니 오히려 기쁘게 하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명절에 피 한 방울 안 섞인 여자들만 모인 부엌에서, 오직 남자의 서열에 따라 발생하는 부당한 노동은, 괴롭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심지어 차례는 남자 식구 가족을 위한 행사 아닌가. 게다가,  한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집안의 지형을 바꿀 만한 큰 사건이 없을 경우엔 수십 년 될 수밖에 없는 노동이라면, 심으로 피하고 싶다.


남편들이여.

 "원래 우리 집은 그렇다"며 소위 "꼰대"가 되기를 자처하지 말고,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부당함에 대해 생각해 보고, 바꾸려고 노력할 책임이 그대들에게 있다. 일 년에 단 두 번의 명절이, 모두에게 행복하고 기쁜 시간일 수 있도록, 어떤 방법이든 고민해 보길 바란다.


느리는 못 바꾼다. 아들이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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