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담 Feb 04. 2024

식빵 마지막 장은 누가 먹나요?

밥의 굴레 2.

하루는, 딸 진진이가 아침식사로 식빵과 수프를  먹겠다 해서, 밥돌이 남편에게도 아침에 빵을 먹을 것을 권했다. 샐러드와 소시지 그리고 수프도 함께 먹는다는 것을 전제로. 흔쾌히 오케이 한 남편.


그런데 식빵을 꺼내 보니, 장밖에 남지 않았다. 중간 장 온전한 식빵은 체중 증량이 시급한 딸을 위해 , 그리고 마지막 장(갈색 꼬다리가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남편을 위해 토스트 했다. 지막 장이라고 해도 꽤 통통한 부분이었으며, 나는 오히려 반장 꼬다리의 토스트 을 즐기는 편이라, 별 망설임 없이 배분(?)했던 것 같다.


그러데 한참을 먹던 남편이,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마지막 꼬다리 장을 왜 나를 주는 거지? 존중받지 못한 느낌이 드네 "


"존,,,,중??"


아침 내내 토스트 하고 샐러드 만들어 식탁 차리던 내 손에 힘이 탁 빠진다. 어떤 부분에서 존중 소리가 나오는 걸까? 아니, 왜 이런 작은 부분에서 본인의 자존감을 고수하려고 하는 걸까? 남편과 같이 산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만다.


"그럼 마지막 장은 누가 먹어? 첫 장은 내가 먹었어"라고 하니, 남편 왈, "버리면 되지"


"버... 려??"


짧은 아침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그날, 이 상황에 대한 정리가 너무 되질 않아, 잘 가는 온라인 맘카페에 이 상황을 게시하고 의견을 구했다.


그랬더니, 70% 이상이

"꼬다리는 저도 안 먹어요", " 남편이 돈 버는데 이쁜 부분 챙겨 주세요", "꼬다리는 앞으로 버리던지 러스크 만들어 드세요" 등등, 내가 잘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정말 내가 남편을 존중 안 하고 살았다고? 마음이 얼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억울한 마음에 벅차올라, 워킹맘이 80프로인 내 친구 단톡방에 이 상황을 공유했다. 그랬더니, 80프로 이상이, "가족 안 먹는 건 남편이 처리해야지!", "주는 데로 먹는 게 남편 아닌가?", "의외로 너네 남편 깐깐하네?" 등, 정 반대의 반응이...


그중에 한 친구가 중립적인 말을 한다.

"우리 집은 서로 배려해 주는 입장에서, 토스트 만드는 사람이 먹기 싫은 부분을 먹어."

부인이 토스트 하면, 가족을 위해 부인이 다들 안 먹은 마지막 부분을 먹고, 남편이 토스트 하면 남편이 다들 안 먹는 부분을 선택해, 모두를  "배려"하고 본인은 "희생"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이 친구 가족은 남편도 그렇고 내 친구도 그렇고, 부부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집이었던 것 같다.


남편에게 식빵 마지막장을 줄 때, "존중"의 반대치인 "무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다 큰 어른이고 뭐든 잘 먹으니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뭐" 란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식빵 한 장으로 서로 마음이 상할 것 같다면  다양한 논란을 뒤로하고 그냥 그 부분은 "버리고 말자"로 결론을 낸다. (내가 먹어도 되긴 하지만, 또 굳이 남편도 거부하는 부분을 내가 먹으려니 "처리 담당"이 되어버리는 듯하여, 기분이 썩 개운하지 않네.)


그날 오후,

"앞으로 식빵 마지막장은 모두 안 먹는 걸로 할게"란 톡을 남편에게 보내자,

"굿 아이디어"라는 경쾌한 답이 돌아온다.


어지간히 존중받고 싶었나 보다!















이전 03화 "밥"의 굴레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