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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Jan 28. 2024

"밥"의 굴레 1.

전제: 섭식장애 사춘기 소녀를 키우는 맘으로... 미성년자 제외한 다른 식구(우리 집의 경우, 남편이 해당)의 식사까지 챙기는 건 좀 힘이 든다.


남편은 정말 밥을 좋아한다. 밥을 얼마나 좋아하냐면, 주말 아침 자다가 행여 우리 집 아침식사 시간인 8시를 놓칠까봐, 그 전날 아무리 늦게 잤더라도 일찍 기상해서 아침 식탁에 앉는다. 늘어지게 자다가 점심 먹을 즈음 일어나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세끼 먹을 수 있는 주말의 소중한 한 끼를 스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지어 올빼미형 인간인데도, 식욕이 수면욕을 가뿐히 이긴다. 밥 한 그릇 뚝딱 하고 두 그릇 뚝딱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한마디 한다. "깔끔하게 자알 먹었다!"


내가 1년간 섭식장애 아이의 식사에 집중을 하다 보니, 남편 식사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퇴사 전에는 당연히 본인 먹을 건 스스로 챙겨 먹는 식이었는데, 지난해부터 내가 집에 있으면서 아이에게 신경을 몰아 쓰며 끼니를 챙기다 보니, 상대적으로 남편에겐 더 소홀하게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는 있겠다.


성인은 스스 챙기는 게 기본이라 생각하므로, 남편이 느낄 서운함은 애써 곤 하지만, 자꾸 이 남자가 간접적으로 "밥"타령한다는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 토요일 오전, 볼일이 있어 세 식구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진진이가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오랜만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한 거라, 너무 기쁘게 "그래그래, 엄마가 해줄게!" 대답했는데, 운전하던 남편이 옆에서 한마디 한다.

"나는?"


"나는?"이란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나는 뭐 줄 거야? 나도 밥 먹고 싶어. 나도 김치볶음밥 해줄 거야? 아니면 뭐 먹지?"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진이 빠진다.


내 의식의 흐름은 이렇다.


1. 내가 언제 밥 안 챙겨줬어?

2. 왜 매번 밥 밥 하는 거지? 아침도 잘 먹었잖아.

3. 밥돌씨, 나중에 퇴직해서 삼식이 되어서 하루종일 밥타령 하면 너무 싫겠다...


이렇게 마무리되고 마는 내 사고에도 문제는 있긴 하다. 나는 그리 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이미 섭식장애 아이 식사 챙기느라 가족의 식사는 숙제처럼 자리 잡고 말았다. 그래서 식사 준비는 좀 피로하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아이 입에 뭘 먹이느냐가 500배는 더 중요한 상황에서, 같은 선상에 있는 부모인 남편이 밥 밥 하는 것이 참 어리게 느껴진다.


아마 남편은, 내 관심이 아이에게만 쏠려서 더 밥타령을 하는듯하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자꾸 외면해 버리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막내딸로 사랑받기만 하며 자랐는데, 나이 40줄이 넘어 딸도 남편도 서로 자기 더 사랑해 달라고 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아이는 내가 낳았으니 온몸으로 사랑해 주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다 큰 남편은 어쩌란 말인가... 본인도 어릴 때 받지 못한 사랑을 나한테, '밥'을 매개로 달라 달라하고 있는 것 같으나 팍팍 주는 게 꺼려지는 내 마음은 어쩌란 말인지... 자꾸 당신 엄마한테 가서 사랑받아먹고 오라는 못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어찌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남편이 밥돌이일 뿐, 다른 가사에 게으른 사람은 아니다. 내 퇴사 후에도 내가 버거워하는 많은 집안일을 해주고 있고,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놈의 밥'앞에서 나는 왜 이리 차가워지는지.... 나 스스로도 자꾸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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