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중딩씨가 한 번씩 소동을 부릴 때면, '이 아이는 왜 엄마인 나를 들들 볶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아이에게 말하면 '엄마, 엄마나 나 좀 괴롭히지 마!'라는 단호한 대답이 날아와, 당황해하곤 했다.
어느 주말, 동네 스*벅스에 세 식구 출동했다. 남편과 나는 커피 마시며 책 좀 읽고, 아이는 숙제하며 차분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주말 오전 커피숍은 꽤 조용했는데, 구석 테이블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두세 살 어려 보이는 동생이 나란히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고, 엄마는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었다. 말이 '봐주는'것이지, 엄마의 말투는 거의 윽박지르는 수준이었다. 엄마의 주 타깃은 형이었고, 동생은 그저 책 보고 장난치면서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듣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용한 매장이었기에 세 모자의 목소리가 꽤 잘 들렸는데, 엄마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아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영어와 국어 숙제를 하는 듯했는데, 아이 엄마는 왜 이렇게 쉬운 걸 모르냐고, 방금 같은 문제를 풀었는데 왜 모르냐고, 아이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아이를 닦달했다.
애가 모를 수도 있지 않냐고, 그렇게 강하게 말 안 하셔도 된다고, 어리 애가 지금 이거 못 푼다고 큰일 나냐고, 옆에 가서 슬쩍 말해주고 싶은걸 억지로 참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도 나 어릴 때 저랬어."
......
때는 바야흐로 우리 딸 초등학교 2학년 때. 남편이 홍콩에 발령이 나서, 나도 회사 휴직하고 아이와 함께 1년 반 동안 해외살이 한 적이 있었다.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냈지만, 어딜 가나 극성인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 나도 우리 딸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호시탐탐 정보를 얻어내던 시기였다.
그즈음 한국 진도의 수학에서 구구단과 시계 보기가 나왔는데, 그 부분을 너무 어려워하는 아이를 보고 정말 답답했었다. 아이가 문제집 푸는 걸 지켜보다가 한 번은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아이 머리를 쥐어박았다."어이고, 머리는 장식품이니?" 덧붙이며.
어릴 때부터 장난으로라도 매 맞아본 적이 없던 아이는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서럽게 울었고, 퇴근하던 남편이 저 멀리서도 들리는 우리 집 울음소리를 듣고, 무슨 일 났나 싶어 한달음에 들어와서 흥분한 모녀를 워워 시켰던 기억.
나, 그때 우리 아이를 괴롭혔었지. 구구단 그게 뭐라고. 내가 너를 들들 볶았었구나. 잘하는 것에 대해 칭찬만 해줘도 충분했을 그 시절에. 너만의 속도를 인정하지 못하고 내 욕심을 부렸구나.
아이를 대하다 보면 내 아이 실력이 내 실력 같고, 나보다 이해력이 떨어지면 좌절감이 들때가있었다. 그렇지만 어릴때부터 내 욕심은 접어놓고그저 아이의 존재 자체만을 사랑하고 존중해 줬다면 사춘기도 좀 약하게 왔을지도 모른다.
커피숍 저 엄마도, 본인이 얼마나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지 어쩌면 평생 모를 수도 있다. 나도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다 내려놓고 자아성찰 하게 된 것이므로.
부모들이여. 사소한 일로아이에게 내 나쁜 감정을 전가하지 말자. 아이를 무시하거나 윽박지르지 말아 보자. 응애응애 울며 태어나 내 품에 안기던 그 소중한 순간만을 떠올려 보자. 쉽진 않겠지만, 우린 부모니까. 한번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