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생각의 폭이 넓어질 줄 알았는데, 내 시야는 나만의세계에서만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만나는 사람들이나 활동 범위에 변화가 적어짐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 같기도 하지만, 그럴수록유연해지고자 노력해야 하건만...
내 생각 범위에서 결론 지어 버리고 다른 의견은 듣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으니 그냥저냥 똑같이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러리오!!
결혼해서 애 키우며 직장생활까지 하고 있는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기 싫은듯한 그네들의 태도를 발견할 때가 있다. 노력하지 않으면 근육도 사고도 굳어버리기 마련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니도 나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고교 동창이자 진진이와 동갑인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친구 A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의 중2 딸도 우리 아이와 별만 다를게 없이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고, A도 이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이해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어서, 서로 많이 공감하고 대화 나누는 편이다.
A야 말로, 학창 시절부터 스스로 공부해서 줄곧 1~2등을 놓치지 않던 자타공인 모범생에, 지금은'학교'라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근무하다 보니 사고가 딱딱해질 법도 한데, 본인과 전혀 다른 딸을 키우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고 유연해진 케이스이다. 역시 교사인 남편은 자유분방한 딸을 말 안 듣는 문제아 취급을 하는 터에, 내 친구가 중간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듯했다.
대화 중에 A가 학기 초 학교 에피소드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B는, 선생님들도 꺼리는 문제아이다. 내 친구 A도 이 반에 들어갈 때마다 다른 교과목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B의 예측불허의 언행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던 차...
그날도 B아이의 반 수업 시간이었고, 여느 시간과 마찬가지로 수업 듣는 아이, 자는 아이 등등 다양한 교실 풍경이 펼쳐졌는데, 내 친구 눈에 띈 B의 핸드폰 사용 모습! 그 자리에서 B의 핸드폰을 수거했단다. B는 투덜거리면서도, 수업 중 폰 사용이 금지였기에 순순히 선생님 A에게 폰을 맡겼고...
그날따라 수업 마무리가 좀 길어졌는데, 종 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B. 수업 종료 후 A는 반장에게 "핸드폰 찾으러 교무실로 오라고 B에게 전해라"라고 말한 후 교실을 나갔다.
A는 쉬는 시간 동안 학부모에게 전화 상담이 있어서 교무실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교무실 입구에서 B가 껄렁하게 서서 지나가는 선생님들과 실랑이 중인 것을 발견했다.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입구로 나가봤더니, B가 제대로 원하는 바를 말하지도 않은 채 씩씩거리고 있더란다.
A: B야, 핸드폰 찾으러 안 오고 여기 서서 뭐 하니?
B: 선생님! 아니 내 핸드폰 왜 안 줘요 CXX, BXX, ZXX!!
A는 B가 반장에게 전해 듣고 핸드폰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핸드폰 어디 갔냐고 항의하러 온 것처럼 느껴져서, B의 언행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잠시 미루고
"B야, 반장한테 니 핸드폰 찾으러 교무실 가라는 말 못 들었니?아이고 속상했겠네!"
라며 핸드폰 못 돌려받을까 봐 마음 졸였던B의 마음을 그저 읽어주었단다.
그랬더니 갑자기 Cxx, Bxx 하던 B의 눈빛이 나른하게 풀리며,
"아 정말요 선생님? 반장이 말 안 해줬어요 저 핸드폰 주세요!"
정말 별것 아닌 이 사건 이후, B는 그 누구보다 A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학생이 되었고 (다른 교과선생님께는 어떤 태도였을지는 모르지만..) A는 B뿐만 아니라 B의 친구들에게 까지 사랑받는 교사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둘이 눈 마주치며 웃었다.
"A야. 우리 이렇게 남들 마음 읽고 그런 성격 아니었는데, 애 덕에 많이 배운다 그렇지?"
"소담아, 내 말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줄 알고 여태껏 살아왔는데, 애를 나아보니 나도 노력해야 한다는 걸 매일 깨닫게 되네. 학생들 마음 읽어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그거 안 하고 못하고 살았다."
사춘기 아이의 발작에 가까운 발악을 지켜보며 우리 둘 다 엄마로서 얼마나 내려놓고 이해하려고 애썼는지. 그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풍부해졌는지.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 어디까지 깊어졌는지... 많이 배우고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