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이기심
생각이 많으면 예수님이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나는 가끔 새벽에 잠이 깨어 아침까지 뒤척입니다. 생각이 많아서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걱정이 많아서 그러는거죠. 더 정확하게는 ...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이럴 때 나는 잠결에 기도합니다. 대게 이럴 때 하는 기도는 횡설수설입니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혼수상태에서 기도 아닌 기도를 드립니다. 생각이 많으니까, 스스로 믿음이 없어서라는 것도 아니까 그런 죄송함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 나는 다급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좀 보세요. 믿음이 없어 걱정하고 있는 저 좀 보세요. 다 맡기고 지금은 제발 잠 좀 자게 해주세요....”
뭐 이러면서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알람이 울립니다. 일어나 출근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이고... 또 망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걱정의 근원은 이기심과 두려움
오늘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말씀을 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니면 기도에 진정성이 떨어졌던가, 그래서 세상 걱정이 나를 짓누르는 그 틈새로 사탄이 나를 붙들고 있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이런 나를 가끔은 예민해서 그런다며 변명을 늘어놓지만 사실, 그건 변명일 뿐입니다.
사실, 오늘 새벽에는 느닷없이 노후가 걱정되었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우울했고, 일손을 놓고 하릴없이 살아가는 나 자신을 상상하니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죽게 될 것인지도 걱정되었습니다.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마음에도 갱년기와 노화가 찾아온 듯합니다. 긴급 처방이 필요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랑
그래서 나는 다시 모세의 죽음 장면을 열어보았습니다. 모세는 죽음을 감지한 순간까지도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는 그 일을, 흔들림 없이, 끝까지 계속했습니다.
그를 위대한 직무에서 물러나게 만든 사람들을 위해 그는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그가 바로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홀로 죽어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임종 순간에는 그를 지켜줄 친구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 외롭고 두려운 순간까지도, 그는 백성을 사랑했습니다.(부조, 470)
죽는 순간까지 흔들림 없이 집중할 수 있었던 사랑, 과연 모세는 예수님의 표상답습니다.
모세의 죽음을 펼쳐 읽어보니, 내가 오늘 새벽에 잠 못 이룬 이유는 바로 ‘이기심’ 때문이었다는 답을 주셨습니다. 내려놓았나 싶으면 어느새 또 가득 들어차 있는 이기심 때문에 나는 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다 가신 예수님과 모세. 그들의 생애는 어느덧 내게서 또 멀어져 버렸습니다.
‘비우자, 비우자, 이기심을 비워낸 자리에 채우자, 채우자, 사랑을 채워 보자’ 하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잊어버리면 이기심이 가득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는 이유
모세는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초림과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죽음을 앞둔 모세에게 예수님의 일생을 보여주셨을까요?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인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알려주시려는 것이 아닐까요? 광야에서 독뱀에 물려 죽음 바로 앞까지 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구리뱀을 들어 십자가의 표상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죽음을 앞둔 우리에게도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말라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도록.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오늘 다시 깊이 깨닫습니다.
흔들리는 믿음, 잊고 있던 십자가
내가 잠못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나는 근래에 십자가를 묵상한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속해 살아가느라 너무도 바빴습니다.한동안 글도 써지지 않았고, 말씀도 깨달아지지 않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우울했습니다. 한때 “우울증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나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씩씩하게 다독였던 나였지만, 그런 나조차도 흔들렸습니다. 나는 사탄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었습니다.그곳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뿐이었는데, 나는 그것마저도 간과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내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영광을 ‘내가’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순간의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돌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나는 오늘,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를 흔드는 사탄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 곧 당신께서는 정확한 순종을 요구하시며 사람들은 저희 창조주께 속한 영광을 스스로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교훈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부조, 479).
영광을 스스로 받지 않도록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일지라도, 이기심이 스며들면 어느새 예수님을 시야에서 놓쳐버립니다. 그러면, 모든 영광을 스스로 받는 것에도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묵상하면, 보잘것없는 내 진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위로의 성령이 내려지고, 잃어버렸던 용기가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한순간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십자가를 묵상해야만 합니다.하나님은 내가 몇 발짝 멀어지면, 다시 나를 바짝 옆으로 끌어당겨 주십니다. 결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어스름한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딸아, 너를 사랑한다.”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그리고 저 너머에서 하나님이 나를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평안히 가라.”
그날, 나는 잠을 못 자고 출근했지만, 사랑으로 충만해진 채 발걸음 가볍게 퇴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