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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정말 붕괴된 시대, 소상공인의 자녀교육

코로나 시대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by 최팔룡

예전부터 교실 붕괴라는 말은 있었지만 20년이 되자 급기야 학교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하였다. 부족하나마 조금이라도 역할을 담당해왔던 곳이 사라져버렸다. 아니 자가진단 같은 걸 하고 밥을 먹여서 준비물을 챙겨 보내야 하니, 역할을 분담하기는커녕 부담스럽기만 한 곳이 학교라 할 것이다. ‘너희가 와야 학교다’ 같은 현수막이 학교에 걸린 걸 보면 선생님들의 마음이야 알겠지만 자녀의 미래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가정의 입장에서, 학교는 애물단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 그래도 직장인들이야 육아휴직 같은 게 있어 애들을 챙긴다지만 소상공인은 언감생심, 시대의 변화가 야속하기만 하다.

3월까지만 해도 아이들 교육 문제는 1~2달 정도 버티면 예전처럼 정상화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최소 1년, 어쩌면 2년, 아니 아예 이렇게 눌러앉아 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 자영업자들 장사야 망해먹는다 하더라도 도대체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일까.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기관도 없다. 무슨 생존자금 같은 건 나라가 가끔 챙겨주는 것 같지만 더욱 중요한 미래 문제, 교육은 관심 밖이다.


맞벌이로 바쁜 소상공인을 대신하여 양육의 기능을 조부모가 전담하는 가정을 여럿 목격한다. 어쩌면 요즘 대세가 된 느낌이다. 조부모는 양육의 최전선에 나와 있다. 경제 활동을 하는 부모가 한참 일을 해야 하는 낮 시간에 아이들은 조부모와 시간을 보낸다. 최종 책임자는 아닐지라도 조부모의 가치관, 행동, 식습관이 조손녀의 일상을 책임진다. 예전에는 세대와 세대는 25년 정도 간격으로 이어졌는데 이제는 50년이라는 기준이 자리 잡은 것일까?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세상과는 동떨어지게 아이들은 반세기 전에 살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물론 조부모들은 아이들은 사랑한다. 하지만 다들 몸이 성치 않다. 요즘 아이들한테 맞는 교육을 하기도 어렵다. 음식 하나는 잘 하지만 다른 건 젬병이다.

결국 자녀 교육은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말은 통용되겠지만 코로나 시대, 부모의 책임성은 더욱 엄중해졌다. 부모들이 더욱 용감해져서 그런 게 아니라 학교도 사회도 아이들을 내몰아버려서 아이들은 가정 말고 다른 곳은 갈 수 없게 됐다. 안전과 방역의 이름으로 아이들은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무증상 감염원으로 널리 우려하여 가정에만 머물러야 한다. 소상공인의 경제활동이야 어찌됐든 길을 찾아본다지만 아이들의 교육은 다 버렸다. 오직 부모에게만 강제로 떠맡겨졌다.

다시 말하지만 학교는 이미 그 운명을 다하였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도 있고 교실도 있지만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등교를 하더라도 그것은 학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어쨌든 학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학교라는 기관이 아직 있으니까 아이들은 가끔 동원되어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가는 것 같다. 학생들은 가끔 학교에 들러 친구들과 서로 얼굴도 잘 모르고 대화도 차단된 상태로 머물다 돌아올 뿐이다. 그렇게 갔다 올 거라면 그냥 안정적으로 집에 쭉 있는 게 낫다. 집에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등교 행위는 가끔 귀찮은 외출이라 하겠고, 맞벌이로 바쁜 사장님들의 아이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천덕꾸러기 신세다. 제발 코로나 감염원이 됐다는 소리만 듣지 않으려무나.


이쯤 되면 가정에서 특단의 학습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정생활을 잘 하는 사장님들을 만나보면 가정도 하나의 사회처럼 가꾼다는 특징이 있으니 지면으로 소개해 볼까 한다.

먼저 아이들이 또래집단과 어울려 노는 문화가 파괴되었으니 그 역할을 형제자매들이 대신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 손위형제도 어차피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됐으니 동생들을 챙겨야 한다. 어설프더라도 동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장남, 장녀들은 부모로부터 크게 격려를 받아야 한다. 몇 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형은 책임감과 지도력을 키울 수 있다. 그렇다고 동생의 양육을 손위형제가 다 떠맡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놀이를 할 때나 집안일을 분담하도록 하면서 아이들의 역할을 최대한 세밀하게 분담하도록 한다. 역할이 안정적으로 분담되면 아이들의 다툼이 줄어든다. 영 싸우지 않고 클 수는 없지만 어쨌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평형단계를 만들어주면 대성공이다.

가게를 지키는 부부 사장님을 대신해서 가정을 돌보는 주체로 장남과 장녀를 세워보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밀봉된 가정 내에서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것은 좋지만 어떤 기준과 규범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앙상한 규칙만 남발하는 것은 말발이 제대로 안 먹힌다. 맏이들에게 가정의 가재도구와 시설을 챙기고 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간섭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어떨까? 부모가 있을 때에는 물론 부모가 챙긴다. 택배도 받고 가스불이 꺼졌는지 살펴보고 빨래도 걷어야 한다. 부모가 외출하면 맏이가 최고책임자가 된다. 그렇다고 똘이장군처럼 나서라는 것은 아니다. 동생들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귀를 쫑긋 세우도록 하는 것만 해도 큰 발전이다. 비가 오면 창문을 닫아 난장판이 되지 않도록 챙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어떤가. 실내 온도가 너무 높으면 에어컨을 켜 주고, 가스레인지 중간밸브가 잠겼는지 살펴볼 수 있는 맏이라면 백점이다. 조그만 가정이라도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맏이들은 자신감이 커진다. 그러면 그 동생들에게도 그 좋은 영향이 내려온다.

결국 자녀로 하여금 가정에서도 학급이나 또래집단처럼 소그룹 체계를 경험해보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집단 속에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사회에서 제 구실을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것을 고안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난 IT 프리랜서 사장님은 이런 방식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당장 구체적인 실천 방식을 모르겠다고 한다. 현명한 부모들은 이런 것들을 명시적이든 아니든 매뉴얼로 가지고 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역할을 분담시켜야 하는지, 그 책임의 한계는 어디인지, 약속을 잘 지켰거나 잘못 지켰을 때 어떤 대접을 받는지, 규칙을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지키고 있는지 체크한다.


며칠 전에 만난 K사장님의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코로나로 집에만 있다 보니 엄청난 독서를 하더란다. 가만 보면 K사장님도 책에서 손을 놓지 않는 성격이다.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하고 놀아 줄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일단 아빠의 영상은 독서하는 모습이다. 그것이 영향을 주었는지 아이는 봄, 여름 내내 책을 많이 봤다. 그러다 보니 K가 놀랄 만큼 아이의 지적 수준이 높아졌음을 느낀다고 하였다. 망해버린 학교에서 기침소리도 내지 않고 머무르는데 급급했다면 그런 공부를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K의 아이는 코로나 시기에 공부를 많이 했다.

더 이상 일 핑계 대고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가게 문을 저녁 9시면 닫아야 하는 세상이다. 트러블을 각오하고 장모에게 아이를 떠맡기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가정의 규범을 만들고 아이들과 부모가 작은 사회를 만들어서 구성원들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많은 역할을 주어서는 안 되고 조금씩 자기 일을 성취하도록 해서 재미를 느껴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 어렵겠지만 1개월 후, 더 멀리는 6개월 후 아이들은 자신의 가정이 좀 다른 곳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서 부모도 보람을 찾다보면 우리 점포의 매출도 개선되고 사회도 정상화되는 날이 어느덧 다가올 것이다.


TIP!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이 가정에서 잘 지내는 방법은?

1. 가족회의를 열어 가정의 규칙을 세운다. 물론 회의 전에 부모가 안건을 잘 준비해야 한다.

2. 규칙에는 가정을 하나의 사회로 보아 역할을 분담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3. 규칙의 준수와 미준수에 따라 상을 주거나 불이익을 준다.

4. 한 번의 회의 결과로 규칙이 완벽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시범 기간을 거쳐 규정을 다듬는다.

5. 규정만으로 아이들이 다 잘하기는 어렵다. 부모가 짧은 시간이라도 겸손한 자세로 솔선수범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가정의 기강이 바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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