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생존 게임은 곤란하다
거리두기 2단계가 되든 3단계가 되든 장사가 정말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감염병 확산 경고에 따라 사회적 경계심은 금방 상승하지만 상황 호전에도 불구하고 경계심이 풀어지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 이래저래 올해는 다 지나갔다. 벌써 9월. 몇 주 후에 다시 감염자가 늘어나게 될 것이고 경계가 강화될 것이다. 골목에서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업종들은 앞으로도 많이 힘들 거라는 얘기다.
자영업자의 고정비용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임대료(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임차료가 정확한 표현임)인데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임차료를 조정 받은 곳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올 봄에 한창 난리가 났을 때에는 20~30만원 빼주는 곳도 있었지만 그것을 지속시켜주는 곳은 별로 없었다. 코로나로 영업을 못하게 되더라도 임차료는 요지부동. 방역을 이유로 개인의 자유로운 영리행위가 제한을 받게 되었지만 건물주의 임대료 수입에는 아무 제한이 없다. 공무원들 월급도 그대로다. 의료인들이 고생한다지만 그들의 급여도 더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자영업자, 힘없는 상가 세입자들만 독박을 쓴다.
20년 전 IMF가 할퀴고 간 시대에 일부 세입자들이 차임감액청구권이라는 권리를 행사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임대차 계약이 유지되고 있는 도중에 임차료를 깎아달라고 임대인에게 요청을 할 수 있는 권리다. 이런 것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분명히 법에 그렇게 적혀 있기는 하다. 임대차 계약과 무관한 국가적인 경제 위기의 사유로 해당 계약을 지킬 수 없게 되면 내가 임차료를 일부 부담하기 어렵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일부 법률사무소에서는 차임감액(증감)청구권이 있으니 임대인에게 즉시 내용증명을 보내어 내 임차료를 OO% 깎아서 내겠다고 통보하라고 조언한다. 이런 내용으로 광고를 해서 세입자들이 법률 상담을 받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임차 보증금이 건물주에게 묶여 있는 조건에서 이런 법적 분쟁에 돌입하라고 조언하기는 어렵다. 법률가들이야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 세입자들이 선택하기는 어려운 옵션이다.
그러니 법조문에 나오는 차임감액청구권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코로나와 같이 비상시국이 되면 해당 임차료를 인하해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주면 어떨까. 사인 간의 계약을 중도에 어지럽히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가 아닌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쌍방이 계약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되었으니 어느 일방이 해당 계약을 변경하자고 청구하는 것뿐이다. 그 청구 행위를 사인 간에 맡겨두지 말고 지자체나 국가가 마련한 공적 테이블에서 처리하자는 것이다. 일부 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는 최근에서야 이런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차임감액청구권 제도화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렇다면 당장 우리 세입자들이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최초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제대로 해야 된다. 계약서에 어떤 내용을 써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분도 있다. 그냥 부동산에서 써주는 계약서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공인중개사는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를 활용하고 있다. 일단 건물주라는 사람이 진짜 건물주가 맞는지 등본에서 찾아보고 계약서에 적힌 사람과 동일인인지 알아본다. 상가 내부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고 하자가 있는 경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밝힌다. 집주인이나 전 세입자가 세금이나 공과금을 납부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하여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명시한다. 모두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에 나오는 사항이다. 이런 사항들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향후 발생할 문제들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이다.
일부 건물주는 계약 체결부터 권리금 포기 사항을 계약서에 명기하자는 사람도 있다. 임차료도 싸고 상권도 좋은데 계약서에 이런 내용을 쓰자고 하면 참 기분 나쁘다. 그런데 꼭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임대인이 권리금을 날로 먹으려고 해도 법원에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면 계약을 하면 된다. 다른 것들은 계약서에 나온 것을 꼭 지켜야 하지만 이런 것은 모르는 척 넘어가도 된다.
사업자등록과 확정일자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꼭 누락하는 사람이 있다. 임대차 계약을 하고 나서 즉시 이런 행위를 해줘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생긴다. 계약하자마자 건물주가 건물을 팔고 나갔을 때 사업자등록이 없으면 새로운 건물주에게 보증금도 못 받아 그야말로 쪽박을 찬다. 경매에 넘어갔을 때 확정일자가 없으면 다른 채권자들이 살코기를 다 발라먹고 임차인은 거지가 된다. 요즘처럼 상가가 재미없는 시절에는 이런 것들 꼭 챙겨야 한다. 차일피일 할 것이 아니라 계약 즉시 이행해야 살아남는다.
계약기간이 다 되어 계약을 갱신해야 할 때도 상가임대차 제도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계약갱신은 기존 계약과 동일한 기간으로 해야 하며 보증금과 월세는 5%까지만 인상 가능하다. 물론 세입자가 3개월 이상 월세를 연체하는 등의 의무를 다 했다는 전제가 붙는다. 갱신은 최대 10년까지 가능하다. 서울이라면 (보증금+월세의 100배)가 9억 원 미만이라면 5% 룰을 준수해야 한다. 월세 5% 인상이라는 것이 코로나 시대에는 얼척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세입자가 쫓겨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정부의 방역 대응이 전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조치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가장 만신창이가 된 것은 교육 분야, 즉 우리의 미래다. 아이들에게 학습을 제공함으로서 미래를 준비해야 할 공간이 처참하게 부서졌다. 무슨 등교라도 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그 다음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소상공인,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가 찢어졌다. 재난지원금 같은 것을 1년에 2번 준다고 해서 복구가 될까?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것이라 지원금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계속 악순환에 빠져들고 어디에 탈출구가 있는지도 모른다. 계속 출혈을 강요당한다.
중앙임상위원회가 최근 전 사회적인 방역 강화보다는 중환자 중심의 의료체계를 구축하자는 기자회견을 하려다 취소했다고 한다. 감염자 자체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전 사회의 자원이 동원되는 방식을 앞으로 1년 더 추진해야 할까? 젊은이들의 미래를 희생하고 소상공인, 근로자의 소중한 일상을 파괴하는 방식은 앞으로 몇 달은 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방역인지, 감염자를 단순히 줄이는 것 자체가 목표로 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소상공인 대책도 마찬가지다. 계속 지원금으로 봉합할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에게만 출혈을 강요하는 방식을 이제는 중단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임대료를 조정하는 문제는 어떨까. 이미 차임감액청구권이 법에 있으니 하위 법령이나 조례로 다듬으면 될 일이다. 코로나가 시급하다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생존 게임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TIP!
상가임대차 관련 필수 체크 사항
1. 최초 임대차 계약 시에 표준임대차 계약서를 활용한다.
2. 임대차에 나온 내용을 꼼꼼하게 챙기되 권리금 특약 같은 것은 살짝 무시하는 전략을 취한다. 오히려 더 좋은 상가를 구할 수도 있다.
3.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가질 수 있도록 사업자등록과 확정일자를 신속히 한다.
4. 임대차 계약 갱신 시에는 기존 계약 기간과 동일하게, 임차료는 5% 내에서 정하며 임대인의 부당한 요구에는 법률 자문을 받는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심화 법률 상담은 무료이므로 적극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