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공 창업을 응원한다는 말은 자주 들었어도 당신의 창업을 반대한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떤 개인이 억하심정을 가지고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서울시 산하 서울신용보증재단이 운영하는 어떤 홈페이지에 가면 이런 경고 문구가 정말 나온다. 물론 창업을 아예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창업을 반대한다는 경고다.
청년 창업을 준비하는 부모라면 이런 경고를 자주 할 것이다. 청년들의 지인들도 이런 경고를 충심으로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청년들의 미래에 별로 애정이 없을 것 같은 국가기관들은 창업을 엄청나게 권장한다. 국가만 아니라 조그만 도시의 구청에 가도 무슨무슨 창업센터 같은 것을 수월찮게 만날 수 있다. 서울신용보증재단과 같은 충고를 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으면 저리로 대출도 해주고 당장 쓸 수 있는 보조금도 얼마간 지원해준다. 부모는 우리 청년들을 섭섭하게 해주지만 국가나 지자체는 마음씨가 고상해서 그러는 것일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실상을 반영한 조언은 국가가 아니라 부모들이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창업이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벌써 지나가버렸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충만한 벤처 사업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는 필부(匹夫)들은 걱정과 우려를 하면서도 창업의 길을 떠나는 것이 태반이다.
최근에 내가 모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대기 중인 예비창업자들을 만났을 때도 그들은 많은 걱정거리를 품고 있었다. 어떤 미용실을 준비하려던 분(A씨)은 경력이 5년 정도 되었다. 5년 동안 어떤 사장님 밑에서 잔심부름부터 시작해서 확고한 미용기술을 익혀 자립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하였다. 그렇다고 A씨가 창업을 꼭 하기 위해 헤어 기능과 고객 관리 방안을 익혀왔던 것은 아닐 것이다. 올 4월에 사업주와 A씨는 상당한 다툼을 했고 결국 사업주가 A씨를 잘랐다. A씨는 전 고용주의 미용실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가게를 차리기로 하였다. 정말 자신이 있다고 했다. 기존 가게에서도 A씨는 고객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고 생각했고 억울하게 퇴사를 당했지만 고객들은 자신의 솜씨를 보고 미용실에 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비신사적인 행위로 보이는 창업이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고 사업장을 마련했다. 그 창업이 성공한다면 기존 가게는 1/3이 폭삭 주저앉을 것이 뻔하다. A씨의 억울한 사정을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은 아무래도 권장할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나는 공공 금융기관의 의뢰로 나왔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 물론 A씨의 그러한 진술에도 불이익은 없다. 대출은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또 한 명의 창업자 B씨는 일식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도 근무 중인 직장에서 잘린 경우였는데 업주의 횡포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하였다. 사업주는 B씨보다 2살이 어린데 매일 욕을 달고 다니고 살며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다 보니 그 모멸감 때문에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영업이 예전만큼 잘 안되다 보니 그 사장님의 심사가 뒤틀어져 구성원 간의 우애가 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직장 내 갑질이라는 것이 B씨에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일자리가 감소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시절이라 직장 내에서의 괴롭힘도 웬만하면 참아내야 하는 것이 이 시대 근로자들의 숙명이라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노동강도, 근무시간, 월급 액수로만 나타나지 않는 그 바닥의 고충이 있어서 못 견디게 괴로우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 실업자가 되는 것이고 그 실업 상태를 존속하기 힘드니까 자영업 창업의 길로 나서는 것이다. B씨는 안타깝게도 대출을 거절당하였다. 정확히 그의 신용도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우리 시대의 자영업 창업을 내가 분석적으로 들여다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모든 사례를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부푼 청운의 꿈을 안고 창업을 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 시대가 아님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가는 청년들의 창업을 힘껏 밀어 준다. 심지어 창업자에게만 특별히 제공되는 대출원금 상환 면제 프로그램도 있다. 그냥 아무 자영업이나 이런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기존 비즈니스에 접목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만 설명해주면 생활혁신형 창업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2천만 원까지 대출해준다. 만약 사업에 실패했다는 판정을 받으면 대출금은 그냥 없었던 것으로 해준다. 물론 대출상환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까지 내버려두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실히 했는데 실패하면 원금 상환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창업을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대는 성숙할 대로 성숙하였고 이제 그 실패까지도 지원되는 시대의 초입에 들어섰다.
성공하면 성공해서 좋고, 실패하면 상환의무가 면제되어서 좋은 것이 이 시대 자영업 지원사업의 최신 경향이다. 중간 중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 생존자금, 긴급 고용안정자금을 150만원씩 2번 받는다. 가게 문은 닫았는데 조용히 사업자등록 번호는 살려둔다. 이렇게 지원금 단물을 다 빼먹고 나야 폐업 신고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요즘 소상공인 업계의 동향이라고 말하면 너무 우스꽝스럽게 그렸다고 볼지도 모른다. 너무 비꼬듯 써놔서 묵묵히 일하는 다수의 소상공인들에게는 누가 될지도 모른다. 처음엔 이렇게 맛보기 정도로 사태가 벌어진다. 하지만 점점 이러한 국가의 지원 경향은 당연한 것으로 정착된다. 누구에겐가 직접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보편적인 정책으로 확립되는데 장애물은 없다.
국가의 정책은 그렇다 치고, 현실은? 역시 어떠한 변화도 없다. 지원금이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이로써 경쟁의 밀림에 있는 나무들에는 거름이 조금씩 뿌려진 효과가 나온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더욱 숲이 울창해져 그들끼리의 경쟁은 여전하다. 가끔 병충해나 산불이 나서 나무끼리의 경쟁이 느슨해질 일도 드물어졌다. 역시 서울신용보증재단의 구호가 진리다. “당신의 준비 안 된 창업을 반대합니다.” 특수한 창업은 몰라도 일반적인 창업은 이제 국가가 권장해서는 안 될 일이 되었다. 기존의 중소기업,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들 밥그릇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면 그 밥그릇을 빼앗아가며 일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창업 지원이라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험한 도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봐야 알 만한 일이다.
어떤 학자는 물건이 팔려서 화폐로 전환되는 과정을 ‘목숨을 건 도약’이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가치가 있을 것 같은 물건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회적인 가치로 인정을 받아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그 물건은 목숨을 잃는다. 물건이 제값에 팔릴 수 있을지 없을지 어느 누구도 보증수표를 써주지는 못한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목숨을 건 도약을 매일 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보면 된다. 직장인은 다르다. 근로계약서에 보면 월급을 얼마 주겠다고 확정적으로 적혀 있다. 그러니 근로자들이여, 직장인들이여 그대의 창업을 응원한다고 누군가 말해 준다고 하여도 곧이듣지는 말았으면 한다. 확실한 경쟁력이 있다는 사람을 제외하면 그렇다. 밀림의 가혹한 경쟁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하고 이런 저런 대출로 시작해봤자, 코로나 지원금을 받아봤자, 결국 고독한 생존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자영업의 숙명이다.
TIP!
몇 년 전에 나온 자영업 창업 10계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 맞게 다시 써보겠다.
1. 창업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그 열정으로 지금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라.
2. 40대 자영업자의 평균 소비지출은 임금근로자의 절반 수준이니 그 위험성을 직시하라.
3. 창업하려면 생활밀접 업종은 피하고 블루오션을 찾아라.
4. 적어도 1년 이상 준비과정을 거쳐라.
5. 내 점포가 주변 상권과 궁합이 잘 맞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검토하라.
6. 단기적인 수익성보다는 3년 이상의 수익을 생각하라.
7. 상가임대차, 권리금 문제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라.
8. 프랜차이즈 창업을 한다면 공익 가맹거래사의 도움을 받고 현장의 실상을 파악하라.
9. 개업 ‘빨’ 믿지 말고 지속성을 찾아라.
10. 소비자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기 위해 늘 공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