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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경제에도 항생제가 있다

by 최팔룡

서민경제에도 항생제가 있다

바야흐로 2020년은 코로나19의 악몽으로도 기억되겠지만 소비 보조금의 전성시대가 열린 해로도 역사에 기록될 듯하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시는 사장님들은 이런 칼럼을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을 글로 쓸 게 무어냐고 할 것이다. 일단 코로나 사태 초기인 3월 말부터 재난긴급생활비라는 이름으로 가구당 약 40~50만원 씩 지급 받았다. 물론 소득이나 재산 기준으로 못 받으신 분도 있지만 내가 만난 사장님들 상당수는 이것을 받으면서 2020년을 시작하셨다.

두 번째는 국민 누구나 받았던 재난지원금이라는 것이 있었다. 선거 전에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만 받는 것으로 회자되다가 일약 보편 지급 형태로 결정되었다. 서울 재난긴급생활비와 마찬가지로 현금이 아니라 소비쿠폰의 형태로 뿌려졌다. 일단 국가에서 직접 지급을 받아서 소상공인의 가계 형편이 나아진 것도 있고, 영업을 해서 그 쿠폰을 수취하는 형태로 돈을 버신 분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서울시는 소상공인 생존자금이라고 해서 2개월 간 70만원 씩 총 14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지금 한창 지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7월 말까지 소상공인의 통장으로 직접 입금될 예정이다. 여기에 추가하여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이라고 150만원이 국가에서 지급되고 있다. 명칭이 고용안정이라고 되어 있다 보니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해당이 없는 줄 아는 분도 있지만 잘못 생각하고 계신다. 지금이라고 이 글을 보시는 분은 당장 신청하기 바란다.


올해 소비 보조금이라는 것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 징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단지 2020년은 보조금의 비가 두드러지고 요란하게 쏟아지고 있는 것뿐이다. 그 징조들은 익히 들어보았거나 이미 익숙한 것들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2020년을 위한 맛보기 정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문화, 스포츠 쿠폰 같은 것들은 가장 먼저 보편화되었다. 정부가 정한 ‘문화가 있는 날’이 되면 영화나 박물관 전시 상품 등을 저렴하게 관람, 이용할 수 있다. 저소득 층의 아이들에게는 체육관에 가서 쓸 수 있는 쿠폰도 있다. 다들 같이 먹는 점심식사는 물론이고 저녁식사 쿠폰도 보편화되었다. 쿠폰을 쓰면 눈칫밥 먹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이제 이런 쿠폰을 너도 나도 쓰게 되다 보니 몇 가지 우려들도 희석되는 듯하다.


농업 분야에는 직불금이라는 형태의 보조금이 도입된 지 15년이 되었다. 2005년 전에는 농민들이 추곡수매제라는 방식으로 생산 자체를 보장 받았고 다시 비슷한 것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논이나 밭의 면적에 비례하여 눈곱만큼의 보조금을 준다. 추곡수매를 위해 국가의 돈으로 매입을 하는 것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그냥 현금을 나누어주는 것이나 장부상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보면 국가가 직접 나서 생산에 개입을 했던 것에서 소비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대전환을 한 것이다.

서울시의 임대주택 정책에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포착된다. 장기전세주택이라는 제도는 2009년에 도입되었는데 이것은 최저 소득자가 아닌 도시 서민까지 포괄하는 장기적 임대주택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공급 측면에서 임대주택이 많아지면 결국 주택을 소유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실거주라는 본연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다만 2009년 전까지는 일반 서민들이나 중산층에게까지 임대주택의 개념이 도입되지 않았던 것인데 장기전세주택이 등장하면서 서울시의 주택정책에 큰 변화의 단초가 마련되었다. 그랬던 것이 몇 년 전 장기안심주택이라고 하여 사인 간 주택 임대차 거래 시에 보증금 보조 제도가 생겼다. 서민의 전세보증금을 보조해주는 것이 더 보편적이고 확실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주택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는 상황에서 그런 보조금은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같은 것이 된다. 2년마다 보증금을 올려 이사 다니는 처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상 살펴 본 문화쿠폰, 농업 직불금, 전세보증금 쿠폰이 차례로 등장하게 된 것은 단순히 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큰 흐름으로 포착된다. 국가가 문화예술을 직접 육성하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영역에서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국가가 중요 생산물인 벼의 공급을 직접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 개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여 그들의 생활에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이다. 서울시민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이왕 존재하는 민간 거래에 쿠폰을 줘서 높아지는 임차료 부담을 조금이나마 경감해보겠다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국가 예산의 보조 기능이 생산에서 소비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현대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통상형 개방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향후 경제의 비전을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철학에 대한 것이다. 2020년에 이르기까지 소비쿠폰이 점점 강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이런 것이 바람직하니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경제는 생산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물줄기와 같은 것이며, 지류로 이어지는 소비에 작은 댐을 만들어봤자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충고를 곱씹어 보면 보조금 만세 구호를 쉽게 외치기 어렵다.

필자는 이와 같은 보조금을 경제 분야의 항생제로 인식한다. 항생제는 세균의 증식을 막는 중요한 약재임에 틀림없다. 간단한 염증 치료에도 항생제가 없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페니실린의 개발이 현대약학의 발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항생제는 단지 항생제일 뿐이다. 기관지에 염증이 생겼다면 그 염증 자체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떤 질병에 의해 그렇게 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병을 치료하는 것은 일상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지 그때그때 염증을 제거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염증은 병에서 파생된 결과에 해당하는 것이지 병의 원인과는 거리가 멀다. 이와 같이 소비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경제의 최종 결과인 소비에 뒤늦게 개입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처방과는 인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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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런 보조금이 아니면 국가의 경제 개입이라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볼멘 소리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공공재의 성격이 가장 강할 것으로 보이는 주택임대 보조 영역의 사례가 적당해 보인다. 장기전세주택의 공급은 점차 줄이다가 작년에는 거의 공급이 안 되었던 것을 보면 확실히 이 추세는 거스를 수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전체 주택 공급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장기전세주택의 비중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 전체적인 정책 전환 또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급 측면에서의 근본적인 대안 마련 없이는 언제가도 부동산 대란은 해소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보증금 쿠폰 덕분에 임대인이 오히려 가격을 올려 받는 상황까지 있는 걸 보면 항생제의 내성까지 포착된다.

결국 생산이 문제이고 그 생산을 위한 자산을 누가 보유하고 관리하느냐가 핵심이라는 고전적 이론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이런 저런 삿된 것들이 시야를 흐려보지만 누가 경제의 주인이냐는 문제는 피해 갈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소유물의 문패에 이름을 새겨 넣는 문제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다.

생산의 일익을 담당하는 소상공인의 생산과 자산의 문제는 어떠한가? 이윤을 축적하여 자산 가치를 추가하는 것이 정도이다. 국가나 기관이 도와주는 제도는 없을까? 자산 형성을 직접 도와주는 것은 찾기 어렵다. 그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저축은행과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제공하는 사업장 업그레이드 지원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가게를 하시는 사장님들은 누구나 해당된다. 100만원의 범위 내에서 점포의 시설 개선, 인테리어, 간판 등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 가게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면 무료로 진행되는 컨설팅을 통해 상담을 받아 보는 것도 가능하다. 매월 소비 쿠폰이나 보조금만 펑펑 쏟아진다면 장사 어렵지 않겠지만 그런 세상은 오지 않는다. 우리 가게의 자산 가치를 높이고 환경을 개선하여 매출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정도(定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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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대출을 받고 있는지 확인한다.

본인이 활용 중이 저축은행 창구에 가서 컨설팅 및 사업장 업그레이드 신청서를 제출한다.

컨설팅을 통해 내 가게에 무엇이 필요한지 상담한다.

승인이 되면 공사를 실시한다.

100만원의 범위에서 사용하고 세금계산서 등 증빙은 공사 직후 받아 기관에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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