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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장려금 대상자는 세무서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by 최팔룡

내가 K미용실 사장님을 만난 것은 2019년 자영업 컨설팅 사업이 종료되던 무렵이었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자영업 정책에 대해 알려드리고 점포를 정리하는 분들에게 철거비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무려 20년을 해 오던 영업을 종료하면서 이 분은 최근에야 정부나 지자체에서 자영업자를 위한 각종 지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국세청에서 매년 자영업자에게 지급해오고 있던 근로장려금 신청 안내문을 오는 족족 쓰레기통에 찢어버렸고 하였다. 그분은 평생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자기 주머니를 누군가가 채워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자기가 땀을 흘려 정당한 대가를 받고 그것으로 자기 삶을 영위하는 자세, 이러한 태도는 농부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자영(自營)이라는 한자의 뜻 그대로 살아가는 사장님의 자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것이었다. 근로장려금은 국세청에서 저소득 근로자나 자영업자가 현재의 불충분한 소득 여건에도 실망하지 않고 경제활동을 계속 하도록 독려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조를 중시하는 자영업의 마인드와 충돌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의 삶을 지지, 협조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마도 K미용실 사장님은 자신의 훌륭한 삶의 자세를 완고하게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것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셨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돈을 그냥 입금해주겠다던 그 고지서를 찢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최근에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던 P사장님도 똑같은 경과를 내게 토로하였다. 10년 동안이나 영업을 해왔지만 그 동안 근로장려금이라는 것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최근 들어 재난소득과 같이 정부에서 무상으로 지원금을 풀어 놓는 일이 공론화되면서 덩달아 근로장려금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P사장님은 마침 2020년 6월까지 영업을 하고 폐업을 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내가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을 받을 수 있게 전산 작업을 해드렸고 거기에 더하여 근로장려금을 앞당겨 6월까지 수령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폐업 자체를 늦출까 고민하게 되었다. 이처럼 근로장려금의 효과는 일하는 근로대중의 소득 보전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게 되는 시기를 늦추거나 근로 의욕을 증강시키는 데까지 이른다.

최근 모 단체장은 “기본소득제는 내가 필생에 이루고 싶은 정책”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기본소득제가 궁극의 소득 보전정책이라는 뉘앙스를 담았다. 수 년에 걸쳐 긍정적 취지를 더해온 근로장려금이 아니라 기본소득제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일까? 사실 근로장려금 제도와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기본소득제는 기본적인 가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총체적인 우열을 쉽게 가려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하는 상공인들의 근로의욕을 북돋우고 그 소속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힘써 일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기본소득제가 아니라 근로장려금 제도라 할 것이다.

근로장려금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도 10년 이상 되었고 그 효과와 취지가 충분히 설명되었지만 갑자기 등장한 재난소득, 기본소득의 논리에 파묻혀버리게 된 것 같다. 실제 제도적 시행 효과와 범위를 분석적으로 비교하여 따지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근로장려금이 아니라 기본소득제이다. 둘 다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동일한 국세 재원에서 충당되어 중복되는 것이기에 대립하여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여당도 야당도 구분 없이 기본소득을 입방아에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근로장려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기본소득제가 중요하다고 믿는 정치인들 또한 근로와 무관하게 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미래의 경제 비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사업을 영위하지도 않고, 노동을 하지도 않는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생존여건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기본소득이라는 것을 제공받는 것은 반드시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경제적 모델과 부합하는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일할 수 없어서 쉬는 사람도 돈이 있어야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마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실업급여도 마찬가지이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은 일할 곳이 없어서 임시로 급전을 처방받는 것이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경제생활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런 것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코로나로 만신창이가 된 서민경제의 여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재난(기본)소득이라는 것이 등장한 것이라면 그것은 응급처방으로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주구장창 기본소득을 받아서 삶을 영위하면 된다고 홍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소득 보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오랫동안 그 취지를 인정받아 온 근로장려금을 확대하는 조건에서 최근 부각된 재난(기본)소득의 의미를 어떻게 추가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것을 뒤집어 기본소득을 앞에 내세우고 근로장려금이 뒷전으로 가는 일이 향후 발생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경제생활이라는 관념 자체가 흔들리는 결과가 예상된다. 즉 정직하게 일하는 것에서 보람을 찾고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소득을 확대하고자 하는 우리 상공인의 꿈이 무너지게 되는 후과가 예상된다. 거시적 효과는 단지 특정 경제 계층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경제생활의 규범을 무너뜨리는 효과까지 예상된다.


이제 소상공인들의 현실로 돌아와 본다. 소박한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 근로장려금을 신청해보자. 근로장려금 제도를 알고 있다고 하는 프리랜서, 자영업자들도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고지서가 와야 신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현재의 자산 규모와 소득 기준을 충족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근로장려금이다. 아무리 본인이 실업자라 하여도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최소한의 아르바이트라도 한다. 그렇다면 근로장려금 혜택이 있는 것이다.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고지를 못 받은 분이라면 내가 얻은 소득을 적극적으로 세무관서에 신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합소득세 신고를 한다면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계좌로 20만원 이체받은 내역과 함께 상대측 소득 지급자의 사업자 정보만 있다면 소득을 정확히 신고할 수 있게 된다. 지급자가 원천징수를 하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영세 자영업자, 아르바이트생들도 모두 지급 대상이 된다. 적극적으로 소득을 공개하고 근로장려금을 받아보자.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떡을 주지는 않는 법이다.


TIP!

[근로장려금 고지를 받지 않은 사람도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1. 전년도 나에게 소득을 지급한 사람의 사업자 정보나 개인정보 확인

2. 종합소득세 신고를 한다. 소득을 받은 내역을 제대로 입력하면 내게 혜택이 커진다.

3. 8월이나 9월까지 근로장려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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