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
주로 책을 혼자 읽고 혼자 정리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존 버거의 방식 대로 다른 방식으로 ‘해’ 보는 독후감 첫 번째라서 의미가 남다르다. 평소에는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을 만한 책을 읽는 게 좋았는데 최근에서야 인문학 책을 집어 들면서 개인적인 감상보다는 내용 이해가 먼저 되어야 하는 점에서 독서가 좀 어렵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인문학 장르도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 싫진 않다.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이 책을 왜 썼는지, 번역가가 이 책을 왜 국내 독자들에게 추천해 줬는지 관심이 많은 나는 머리말이나, 옮긴이의 말을 꼭 챙겨 보는 편이다. 트레바리에서 선택해 준 이 책이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꿔 본 것 또한 존 버거의 방식 대로 해본 셈이다. 미술에 대한 접근도 아카데믹한 시각에서만 해석하는 기존의 관점과 달리 존 버거는 보는 방식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 또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서 좋았고, 그림을 보는 방식에서의 변화, 유럽의 회화 속에 나타난 여러 직업들, 누드화를 바라보는 시각, 광고에 대한 솔직한 시각을 새로 알게 됐다.
#그림을 보는 방식
존 버거가 말하는 그림은 화가가 바라본 걸 나름대로 해석한 시선에 대한 결과물이라면, 카메라는 그날의 시간과 장소에 발생한 현상 그대로를 옮긴 것이다. 둘의 차이라면 카메라가 담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담은 것이라 진위 여부를 구분하는 게 적절한 반면, 그림은 작가의 관점과 해석이 녹아든 것이라 관람객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특별한 순간을 옮긴 사진에 비해 그림은 의미, 의지, 관점을 의도적으로 담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카메라가 대중화되면 그림 시장이 쇠퇴할 것이라는 그때의 예측이 빗나간 건지 모른다.
#누드화를 바라보는 시각
보통 섬세한 감정을 담은 영화를 볼 때면 분명 이걸 만든 감독은 여자일 거야, 혹은 거친 액션 영화는 꼭 남자 감독이 제작했을 거라고 쉽게 생각할 만큼 성 고정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존 버거가 말한 대로 그림을 다시 보니 마네 올랭피아나 누드화 역시 남성적 시각에서 본 구도였고, 또 타이타닉의 로즈 초상화처럼 지극히 개인적이라서 관객을 끼어들 틈이 없는 그림 또한 어떤 느낌인 지 새로 보이는 것 같다.
#유럽의 회화 속에 나타난 여러 직업들
지금까지는 그림 속에서 보이는 공예품이 화가가 얼마나 정밀하게 묘사했는지 그 색채나 기법에 집중했다면, 소재로서 바라보는 공예품의 완성도나 그걸 제작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하마터면 간과할 뻔했다. 가죽 갑옷, 실크 드레스, 각종 금 세공품 등. 유럽 회화를 둘러볼 기회가 생긴다면 다음부터는 페인팅 속에 생략된 여러 직업인들이 하나둘 연결 짓게 될 것 같다.
#그림은 앎의 도구가 아닌 소유의 대상
피렌체 메디치 가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림은 화가들의 손으로 빗은 작품이 아닌 부자들이 재산으로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니 또 다르게 다가왔다. 미술품 거래가 왕성한 시장이 부유층 중심이기도 하고 재산을 막대하게 가진 사람들이 꼭 화랑, 갤러리를 소유하기도 하니까. 피렌체 하면 문화 강국이고 우피치 미술관에서 실컷 전시 감상 했던 추억이 있는데 이제는 피렌체 하면 엄청난 부를 누린 국가로 다르게 보인다.
#광고에 대한 솔직한 시각
한때 광고쟁이가 되고 싶었던 초년생 시절, 광고 과제를 하면 거 광고가 제품의 윤리적 영향 여부를 떠나 사람들에게 허상을 심어주는 것 같다는 판단에서 더 좋은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공익 캠페인 분야로 진로를 틀었던 때가 있다. 한때는 광고로 표현하는 세련되고 화려한 물질주의 시절을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그 광고 및 제품이 지닌 밸류를 잘 포장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현재의 불만족함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 존버거의 언어로 강조되니까 내가 그 길과 맞지 않아 미리 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존 버거의 글이 논문 정도의 글이었다면 그의 가설과 주장이 조금 편협하게 들리거나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들 중 ’이런 것도 있다 ‘고 넌지시 알려주는 것 같아 좀 부드럽게 수용할 수 있던 것 같다.
평소라면 손에 잡지도 않던 장르의 책이었을 텐데 참 좋은 기회였다. 존 버거가 오래전에 쓴 얇은 책에서 인사이트를 가득 얻을 수 있었다. 혼자만 쓰고 덮어두는 북리뷰를 남들과 나누는 건 어떤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