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가 자주 쓰시는 표현이 있다.
"우리 딸" , "우리 아들" , "우리 남편"
나도 어머니를 다른 사람 앞에서 "우리 어머니"라 부른다. "나", "너"를 쓸 수 있는 상황에서 왜 "우리"라는 표현을 쓸까?
"나랑 커피 마실까?"
"우리 커피 마실까?"
"너랑 얘기해보고 결정하려고"
"우리 같이 얘기해보고 결정해보자"
같은 표현인데 좀 더 친숙하고 소속감이 생기는 말이다. "같이", "함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니 유대감이 생기고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가족, 친구, 지인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많이 쓰는 말인데 그것은 우리 무의식 속에 위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단어라 생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비단 사적인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업무나 공적인 일을 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현장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제품의 칼라 문제로 바이어와 이견이 생겨 담당자를 만났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칼라는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컨펌 및 진행과정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이다.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라 대화와 공감, 그리고 문제 해결에 대한 서로의 의지가 많이 필요했다.
처음 대화의 시작은 제품을 다시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였다. 최종 바이어가 안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과 이 정도의 색차 값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재생산을 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평행선과도 같은 얘기가 오고 갔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제품의 다른 부분과 납기,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까지 얘기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이런 방법으로 해결해 보면 어떨까요?"
라는 대화가 오고 갔고 그러면서 좀 더 친밀하면서도 현실적인 방법을 찾게 되었다. 최종 바이어에게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처음에는 각자의 입장이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장과 과장이란 직급이 아닌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체적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단어 하나가 상황을 바꿨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와"너"가 아닌 "우리"라는 울타리에 같이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상황은 그전과 확실히 달랐다. 무의식 속에 마음에서 내는 소리가 같아졌던 것일까. 원활한 해결책을 찾아 미팅을 매끄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고, 그 날 오후 최종 바이어와의 미팅도 원만히 해결되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종 미팅에서도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나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언어의 마음과 이치란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편안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말이지만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싶은 마음의 소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