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비추는 것도 일이야"

by Ryan
"얼굴 비추는 것도 일이야."


패션은 시즌으로 움직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 시즌을 1년에 걸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인다.

생산은 1년에 1~2개월 정도 생산 비수기라는 게 있다. 요즘은 선기획도 있고 QR(Quick Response) 오더들도 있어서 비수기가 없는 곳도 있겠지만 대략 1~2개월 정도는 비수기가 있다.


내가 일했던 부서는 오전 사무업무, 오후 외근업무 형태로 일했다. 오전에는 생산과 관련해 봉제 진행과 각종 원부자재의 입고 등 생산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무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외근을 나갔다. 주로 봉제처와 편직처 위주로 현장 관리를 위해 나갔었는데, 생산이라는 것이 매일 변수가 발생할 수 있어 갈 때마다 꼼꼼하게, 그리고 다음 스케줄을 잘 확인해야 했다.


회사에서 정해준 납기일이 다가올 즈음이면 생산관리자와 협력사 모두 정신없이 기한 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야근도 하고, 각종 사건사고 처리해가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수기가 다가왔다. 비수기가 되면 그동안의 업무 리뷰와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논하기 위한 워크숍을 갔고 협력사 공장 중에서는 야유회를 가는 곳도 있었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사무 업무로 바쁠 때면 자연스레 외근 가는 시간도 줄었다. 협력 공장에서도 작업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근 업무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나 또한 서류 작업과 사무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때쯤 부장님이 물어보셨다.


"오늘 외근 나가는 곳 있어?"


"오늘 외근 계획 없습니다. 부장님"


"왜 외근 계획이 없어?"


"지금 작업이 들어가는 곳이 없어서 굳이 외근 안 나가고 사무실에서 전화로도 업무가 가능합니다."


나의 대답에 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장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작업을 이루어질 때 정확하고 확인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과의 관계다. 일이 있을 때 현장에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을 때도 현장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과 소통하고 준비과정도 같이 공유하면 신뢰라는 것이 생긴다. 일은 없어도 커피 한잔 나누며 얼굴 비치는 것도 너의 일이야."


바로 가방을 들고 협력사로 갔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다음 시즌에 대한 얘기도 공유했다. 인사드리고 나오는 데 사장님께서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일이 아니더라도 와. 와서 얼굴 비추고 얘기하다가 가"


라고 하셨다. 사장님께서 나를 신뢰해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이 말씀하셨던 업무적인 신뢰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신뢰라는 것이 이런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업무가 진행되는 협력사를 갔을 때 모든 분들이 하셨던 얘기가 와줘서 고마워였다. 일이 없음에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봐주신 듯했고 이러한 신뢰는 바쁜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 위의 말이 자주 생각난다. 앞으로의 일과 계획에 불안할 때도 있고 희망에 차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 한 통 화가 그리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일적인 신뢰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글을 저장하고 안부 전화 한 통씩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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