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순서와 나의 순서는 달라"
의류는 기본적으로 SS, FW로 움직인다. 봄과 여름을 묶고 가을과 겨울을 같이 준비한다. 물론 큰 틀에서만 같이 움직이고 그 안에서 개별 시즌을 준비한다. 최종적으로 원부자재를 발주할 시점이 되면 어느 정도 시점이 겹치게 되고 아이템에 따라 작업시간이 상이하다 보니 가끔 순서가 바뀔 때가 있다. 여름 원단이 봄 원단보다 일찍 작업 완료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생산을 관리하는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
내가 맡았던 아이템은 하의였다. 한 번은 가을과 겨울 기획 오더가 진행 중이었는데 가을 원단보다 겨울 원단이 먼저 작업이 완료가 되어 출고가 됐다. 먼저 들어와야 할 가을 원단이 사고가 생긴 것이었다. 기획 오더이기에 선기획으로 진행되던 아이템이었다. 급히 진행 순서를 바꿔야 했고 기획파트의 선임과 이 부분을 공유했다.
의류 생산의 봉제는 흐름이 중요하다. 생산라인이 멈추지 않게 오더는 이어져야 했고 한번 들어간 오더는 수량에 따라 생산기일을 예측했다. 난 생산부 소속으로 공장 라인의 흐름과 품질, 그리고 납기가 중요했다. 기획파트의 선임은 영업부 소속으로 시즌 구성에 맞는 제품의 순차 출시가 중요했다. 사고가 생긴 가을 원단은 최소 4일 정도 뒤에 들어오고, 겨울 원단의 작업 기일은 최소 7일이었다. 가을 원단이 들어와서 바로 작업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생산 라인은 라인을 끊게 되면 끊는 시간과 다음 작업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다른 작업을 이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입장차에 따른 논쟁이 시작됐다.
"겨울보다 가을 옷이 먼저 출시되어야 하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작업 순서와 흐름으로 봤을 때 작업 중에 끊고 다른 작업을 들어갈 수는 없다 오히려 효율만 더 떨어진다. 하루 이틀이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 아니라면 겨울 아이템부터 작업이 들어가는 게 맞다."
라는 나의 견해와
"단순하게 생각해도 가을 옷이 먼저 출시되어 매장에 걸리는 게 맞지 가을보다 겨울옷이 먼저 걸리는 게 맞는 것인가. 그리고 작업을 끊어 갈 수 있음에도 그리 하지 않는 것은 한쪽의 편의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기본적인 순서를 생각한다면 가을 아이템이 들어오는 순간 그 작업을 우선 하는 것이 맞다"
라는 기획파트 선임의 견해가 좁혀지지 않아 나중에는 약간의 언성도 높아졌다.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가 아니었다. 직무와 역할에 따라 생각하는 업무의 순서가 다르기에, 해왔던 일이 같지 않아 업무 우선순위가 상이했던 것이다.
유통회사를 다닐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물건이 많아야 판매가 잘된다"와 "잘 안 되는 매장에 물건을 많이 넣을 수 없다"라는 자신 업무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견해가 좁혀지지 않은 적도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하는 일의 순서가 다른 것이다. 정답은 없다. 그리고 틀린 사람도 없다. 그래서 협치와 이해가 필요하다.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서로가 생각하는 일의 순서는 다를 것이다.
서로 다른 순서를 어떻게 맞춰나가고 풀어내느냐가 "일을 한다"라는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