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봐 내가 뭐랬어"
선입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난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과론적인 대화의 최고봉이며 시작점과 과정 모두를 관장하며 "네가 해 온 모든 일들을 알고 있으며 결과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는 책임은 없고 훈수만 있는 그런 말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말의 뉘앙스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말투이다. 좋은 의미 즉 걱정과 위로의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듣고 있는 나의 생각이다.
좋은 조언을 해줄 때가 있다. 어디까지나 조언이다. 좀 더 깊숙이 개입하거나 결정의 순간을 좌지우지하는 언사를 즐기지 않는다.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와는 다르지만 분명 그러한 고민과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는 그 고민과 선택에 도움을 주고 싶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할 때 특히 사용하는 단어나 내용에 조심한다. 자칫 내 생각을 주입하거나 강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여러 가지 실수를 했다. 조급한 이직을 한 적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오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관계를 끊은 적도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고 했던 것을 과감히 밀어붙이고 후회해 본 적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는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선택을 하기 전에 좋은 얘기도 듣고 여러 가지 변수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선택을 했고 후회는 할지언정 탓을 하지는 않았다.
"거봐 내가 뭐랬어"
"내 말 안 들으니 이렇게 된 거 아냐"
웃으며 답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화가 끝나면 좋겠지만 내가 인정을 하는 순간 마치 '시작점부터 결과점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안 되는 거야'라는 대화로 이어진다. 칭찬도 3번 하면 칭찬으로 안 들린다는 데 안 그래도 후회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시작한다면 눈을 제외한 모든 감각기관을 닫게 된다. 말하고 싶은 것도 말하지 않게 되고 듣고는 있으나 내 머릿속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누가 그걸 모릅니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지나간 일을 자꾸 얘기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그렇다면 답을 주시던가요!"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소심하고 생각이 짧아 보이고 옹졸해 보이기까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그 이후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미 그렇게 된 것이니 앞으로를 생각해보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거봐 내가 뭐랬어'라는 말은 쉽게 하지 않는다. 아예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거봐 내가 뭐랬어'에서 끝낸 뒤 지난 일을 경험 삼아 앞으로를 모색해보자라는 얘기로 자연스럽게 전환한다.
오해가 생길 수 있고 편협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아닌 나도 모르게 이 말을 쓰고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걱정과 고민의 공유라는 의미로 말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거봐 내가 뭐랬어"에서 끝내야 한다. "내 말 안 들으니 이렇게 된 거 아냐"와 함께 나의 고민이 아닌 당신의 훈계나 충고만 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다.
나의 기준에서 좋은 의미의 말이 아니기 때문에 안 쓰려고 노력하고 의식하고 있다. 정말 친한 사이 그리고 자주 만나고 대화 나누는 사이에서는 이 말을 날 서게 듣지 않는다. 정말 걱정해주고 고민을 들어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이에서 이 말은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을 했다 해도 좋게 들리지 않는다. 아직 수양이 부족하고 배움이 더 필요해서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