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겠네?"
AB형이다. 내 혈액형을 얘기했을 때, (물론 농담인 것도 알고 친해지기 위한 쿠션 용어인 것도 안다.) 반응은 두 가지다.
"어? AB형은 천재 아니면 돌+아이라는데 음.. 천재는 아닌 것 같으니..."
"어쩐지 좀 독특하더라..."
AB형이 인구수가 제일 적다. 전 세계적으로도 제일 인구수가 적은 혈액형이다. 소수이기 때문에 받는 핍박이다! 농담인 걸 알지만 가끔 정말 기분 나쁠 때도 있다. 제일 기분 나쁜 건 농담이더라도 그렇게 박혀있는 인식이다. 재밌자고 만든 농담이겠지만 농담은 어디까지나 듣는 사람이 농담으로 느껴야 농담인 것이다. 오늘 얘기의 주제는 혈액형이 아니니 조금 딱딱한 얘기는 여기까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생물시간에 혈액형 판정법을 배웠다. 실습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난 이 수업 전까지 A형으로 살아왔다. 아마 중학교 건강기록부에는 A형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A형인 줄 알았으니까. 책에 나오는 혈액형 별 성격을 보면 딱 A형이었다.
'맞네 맞아!', '난 누가 봐도 딱 A형이네'
난 그렇게 유소년 기를 보냈고 실험하는 당일날까지도 A형으로 알고 있었다. 실험을 해보니 AB형이 나왔다. 어? 내가 뭘 잘못했나?. 선생님한테 혼났다. 실험시간에 장난쳤다고. 제대로 안 하냐고. 한번 더 했다. AB형이었다. 선생님은 '넌 AB형이다'라는 확정을 내리셨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였다.
'혹시 나도?...'
평소보다 2시간 정도 늦게 집에 들어갔다. 굳은 표정으로 부모님 혈액형을 여쭤봤고 공식에 대입했다. 오히려 A형이 나오기 힘든 조합이었다. 다시 공부 열심히 하기로 했다.
난 A형으로 살아오다 AB형이 되었다. AB형 성격을 보니 딱 나였다. 다시 보니 A형보다는 AB형에 더 가까운 성격이었다. 다시 보니...
난 혈액형으로 구분되는 성향을 10%만 믿는다. 믿고 있던 혈액형이 바뀐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식을 그렇게 하고 그렇게 믿고 있으면 그렇게 보인다. 나조차도 가지고 있던 인식으로 나를 판단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만든 인식이 먼저였다.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말이다. 그러니 남이 바라보는 인식은 얼마나 더 확고했을까? 좋은 인식이라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라면 고정된 인식이라는 건 참 무섭다. 선입견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종류의 인식이 있다. 혈액형은 재미가 될 수도 있는 범용적인 인식이다. 재미 삼아 가질 수도 있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그런 인식 말이다. 그런 인식 말고 정말 무서운 인식이 있다. 피부색, 종교, 지역, 정치이념 등등 민감하고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 말이다. 나도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걸 정형화하고 고착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말 그대로 노력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온 지 오래됐다. 그 사회에서 예전부터 가져온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알면서도 당연하게 가지고 왔던 인식들이니 말이다.
노력하는 자세로 말하자면 특정 분야의 인식에 대해 글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인식이라는 것이 그만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본인이 느끼기에 안 좋은 인식이라고 생각이 들면 노력하자는 얘기다. 굳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굉장히 넓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굉장히 좁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매번 직업을 바꾸지 않는 이상 동종업계에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게 우리 사회다. 한 다리 건너 좀 더 멀리 두 다리 건너면 지나가는 사람을 알 수도 있다. 그만큼 얽히고설켜있는 게 현실의 사회다.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는 넓지 않다. 그 안에서 또다시 잘못된, 그릇된 인식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더 좁아지게 된다. 그리고 다르다가 아닌 틀리다가 되는 것이다.
일방적인 세력이 득세하고 반대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서 점차 다양한 언로가 생기고 공통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게재하고 공유하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동시에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나와 다르면 넌 틀린 것이다라는 강한 인식의 시대도 같이 수반되어 가는 것 같다. 앞으로 갈수록 발전되어 가겠지만 발전의 방향이 좋은 쪽으로 가려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런 생각을 가진 너는 틀리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점차 없어지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