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고문"

by Ryan
"희망고문"


난 희망고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희망고문이 되는 말을 하지 않는다. 희망고문이 주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경험해 봐서인지 또다시 겪고 싶지 않고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에게 희망고문을 주고 싶지 않다. 말 그대로 희망고문이다. 나는 간절히 원하고 농담으로 얘기하더라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얘기한다. 물론 상대방도 날 놀리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일말의 희망이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라는 마음이 생긴다. 어쩔 수 없다. 원하고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생활 시작한 지 꽤 됐다. 당연히 일해온 업계 쪽에 아는 사람도 많이 있고 그 안에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자연스레 도움을 요청받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건 내가 한번 알아볼게"


"내가 아는 사람이 그쪽 일 하고 있어 연락해서 진행이 되는지 물어볼게"


"그 일은 내가 도와줄 수 있겠다"


자주 쓰는 말이다. 서로 부족한 부분은 도와주면서 관계가 돈독해진다. 이 중 상대방이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들도 있다. 물론 나 또한 긴박하고 진지하게 요청하는 일들이 많다. 위의 말에서 대화가 끊기면 이제부터 희망고문이 시작된다. 기다리는 사람이 생긴다. 시간이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 시간이 오는 것이다. 초조해지는 쪽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다시 재촉해야 하나'
'부담 주면 싫어하지 않을까'
'안 되는 건가...'


부정적으로 생각은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다. 답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부탁받은 사람 역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드는 시간이다. 많이 겪어본 일이라 그 시간이 참으로 답답했다.


그래서 규칙을 만들었다.


"답은 꼭 하자!"


"가부를 정확히 말하자"


"답을 하는 것엔 사소함이 없다"


모든 부탁에 좋은 답을 줄 수 없다. 안될 수도 있고 지연이 될 수도 있다. '안되면 안 된다', '지연되고 있다' 등의 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답을 줄 땐 애매하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될 거 같은데...'라는 말은 또 하나의 희망고문이 된다. 설령 중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 일의 경중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 100%는 아니다. 하지만 의식하고 잊지 않으려 한다. 그 간절함과 답답함을 나도 겪어봤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때 현실적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조언이라는 것은 답이 없다. 말 그대로 도움을 주는 말인데 조언이 허언이 되면 안 된다. 그래서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 직접 경험했던 얘기를 할 때는 그때 느꼈던 감정도 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고 한다.

희망고문은 말하는 사람은 모를 수 있다. 가볍게 하는 얘기라고,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말에 상대방은 진지하고 진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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