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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11회 - 제작자인가, 수입업자인가 (1)

 어떤 예술 창작 작업이 외롭고 힘들지 않겠냐마는 한국에서 새로운 뮤지컬 작품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외롭고 힘든 싸움이다. 새로운 작품을 쓴다는 것 자체가 원래 힘든 것이지만 외적인 요인들이 창작인을 괴롭히면 더욱 외롭고 힘들다. 그 외적인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해외 뮤지컬 수입업자들의 행태이다. 지금 나는 뮤지컬 작가인 나의 밥그릇을 빼앗기고 있다는 질투심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해외의 성공적인 뮤지컬 작품을 창작해낸 사람들을 예술가로서 동지애를 가지고 있다. (그들 모두가 나를 동지로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하고 있는 일이 뮤지컬 작품을 쓰는 일이라서 이래저래 제작자들을 많이 만나기도 하고 만나보지 못한 제작자들에 대해서는 전해 듣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는 나로 실소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제작자들의 특징. 우선, 본 건 많다는 것. 십 년 전만 해도 뮤지컬 관련 영상물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상품화되어서 판매되는 자료도 많지 않았지만 있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상품화되어 판매되는 자료도 꽤 많고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자료들을 구입해서 보기도 하고 가끔은 해외에 나가서 공연 중인 뮤지컬 작품들을 보고 온다. 제작자로서 성공작들의 수준 정도와 세계의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완성된 공연을 평가하는 눈은 있지만 아직 무대화되지 않은 대본과 음악의 작품을 평가하는 눈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뮤지컬의 작가와 작곡가에게 작품 의뢰를 할 때 자신들이 본 작품들을 늘어놓으며 이런저런 것을 요구하곤 한다. 사실 어떤 작품을 영상화해서 팔 정도라면 완성도나 흥행 면에서 성공을 한, 검증이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완성되고 검증된 자료나 공연을 보고 평가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을까?    


 제작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그런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잠시 한국의 뮤지컬계의 현실에 대해 지적하면서 제작자들이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는 데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제작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의 많은 어려움 가운데 나는 세 가지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려고 할 때 그들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좋은 대본과 음악을 갖춘 창작 뮤지컬 작품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작하고 싶은 창작 뮤지컬 작품이 없다고 자주 토로한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공연물들을 보고 그만한 수준의 공연을 제작하고 싶지만 작품이 없다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뮤지컬 작가로서, 그리고 뮤지컬 작가와 작곡가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두 번째는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창작 뮤지컬에 투자를 하기를 꺼려하고, 투자를 한다 하더라도 단기간에 순이익을 챙기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완성도 높은 어떤 한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 그런데 장기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극장 측이 대관 기간을 장기간으로 해주지도 않을뿐더러 혹 장기대관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대관에 들어가는 대관비가 너무 비싸지고 이는 곧 제작자에게는 무모한 짓이 된다. 공연을 위한 극장의 수가 충분하지 않아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대관은 언제나 경쟁적이고 대관비는 그래서 비싸다. 그래서 여러 공연장을 옮겨 다니며 띄엄띄엄 공연을 해야 한다. 뮤지컬 공연을 해서 단기간에 순이익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제작자는 투자자에게 단기간에 수익의 지분을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을 안는다. 투자자에게는 뮤지컬 공연에 관련된 손익분기점이 제법 길다는 것을 이해할 의무는 없다. (투자자들이 뮤지컬에 돈을 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아직도 낭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어떤 곳에 수억 원을 투자할만한 돈이 있는 사람이나 기업은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굳이 공연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 그렇다. 뮤지컬에 투자할 수억 원을 부동산에 일 년만 투자해도 뮤지컬 공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훨씬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뮤지컬을 통해 수익을 얻고자 한다.)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그 세 번째는 제작자 스스로의 의지이다. 제작사가 하나의 회사로서 유지가 되려면 향후 몇 년 동안 제작할 작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좋은 작품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외국의 뮤지컬을 사 와서 회사를 굴려야 한다. 그러다가 어떤 한 작품이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면 그 작품은 일종의 효자종목이 되어서 돈을 벌어주기 때문에 ‘고정 레퍼토리’로 정해진다. 그런 고정 레퍼토리가 안정적으로 꾸준히 수익을 줄 때에는 그것을 뿌리치고 새로운 창작 작품을 제작하는 일에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작품을 제작해야 제작자로서 인정을 받을 텐데 돈맛을 알고 나면 과감히 모험을 걸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는데 창작 뮤지컬 제작을 해야 한다고 무조건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것은 현실적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제작자들이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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