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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13회 - 우리 정서와 한국 뮤지컬 (1)

 학부 때 연극을 전공한 나는 그때 ‘우리의 것’에 대해 억압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연극학과에서 전통연극과 전통놀이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과목은 필수과목이었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 때까지 자라오면서 접해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던 전통적인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 혼란스러웠다. 막상 학과에서 공연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것은 아니었고 당시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작품들도 역시 그랬기 때문이었다. 간혹 그런 모습을 보이는 공연들도 있었지만 결코 주류는 아니었다. 그것들에 대해 관심을 두는 이유는 연극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이었기 때문이었지 그것들이 재미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고민했다. 왜 나는 우리의 전통적인 것보다 전통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동시대의 것들에 더 끌릴까라는 고민. 내가 전통을 무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나는 그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접할 때 자주 지루함을 느낄까? 내가 우리 전통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일까? 그만큼 철이 없는 것일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반성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왜 이런 솔직한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없을까? 우리의 전통적인 것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나와 다른 학우들은, 너희들은 왜 이런 것을 모르냐, 관심이 없냐라는 그분들의 질책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것들을 배울 당시에 나에게는 그것들이 현재의 나의 삶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고민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이 정리되어서 마음이 자유로워진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뒤였다. 그 개인적인 생각을 함께 산책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듯이 꺼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수입 뮤지컬에 맞서서 창작 뮤지컬을 공연하려고 하는 이들은 우리 정서에 맞는 뮤지컬을 창작하거나 제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우리 정서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속에 음모가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싶다. 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우리 정서’라는 말과 ‘우리 정서에 맞는 뮤지컬’이라는 말의 그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서에 맞는 뮤지컬을 해야 한다는 그 당위성은 무엇일까? 우리 정서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정서라는 것이며 우리 정서에 맞는 뮤지컬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뮤지컬일까? 이 질문들을 하는 것은 뮤지컬을 창작하는 것은 좋지만 그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리 정서라는 말 때문에 창작의 방향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서양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라는 양식에 대해 배우고 또 그것으로 먹고사는 나로서도 개인적으로 ‘우리 정서’, ‘우리 정서에 맞는 뮤지컬’에 대한 것은 정리를 할 필요도 있었다.  

   

 우선 더 중요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이 말부터 하고 산책을 즐기고 싶다. 창작의 그 출발점이 남의 것에 맞서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느니,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뮤지컬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느니, 뭐 그런 의무감이라면 그 의무감은 버리시라는 말. (그렇게 쓴 뮤지컬이라면 각종 지원금 타내기는 좋겠지. 그런데 그런 착한 작품들, 재미있는 것 보셨는지.)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우리의 전통적인 것을 무시하는 사람이고, 허접하게 만들어진 뮤지컬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나와 산책을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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