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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12회 - 제작자인가, 수입업자인가 (2)

 위에서 말한 첫 번째 어려움, 좋은 대본과 음악을 갖춘 창작 뮤지컬 작품이 없다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뮤지컬 창작인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결코 짧은 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창작인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은 오랫동안 투자하고 공을 들여야 하는 지루한 싸움이다. 이것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할 일이 아닌 교육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제작사에게 기대하기는 힘들다. 제작사가 아무리 작품을 인큐베이팅한다고 해도 인큐베이팅을 할 만한 작품을 쓰는 것은 ‘사람’인데 교육기관이 아닌 제작사가 사람을 양성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 문제를 제작자들에게 해결하라고 떠맡길 수는 없다. 뮤지컬 창작인 양성을 위한 교육과 인큐베이팅에 대해서는 다른 장을 통해 논의해보기로 한다.    

 두 번째의 어려움, 투자자들의 부족한 인내심에 대해서도 제작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수익의 가치뿐 아니라 공연예술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 역시 제작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예술계와 함께 다른 분야도 균형 있게 발전되면서 차츰 변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세 번째 어려움. 돈맛을 알고 난 후의 모험심의 퇴색. 이것은 제작자 스스로 변화하면 가능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대의 화려한 모습과 제법 꽉 차는 극장을 보면서 제작자가 돈 좀 벌었겠다 하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공연 제작으로 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 사실 돈을 벌려면 다른 일을 해서 벌 수 있지 않는가. 그렇게 힘든 일인데 왜 자신이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늘 기억해야 한다. 어차피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돈 말고, 자신이 뮤지컬 제작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다른 것을 기억해야 한다.    


 뮤지컬 제작에 관계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 대부분이 제작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뮤지컬 공연을 보고 뮤지컬의 강력한 매력에 빠졌던 경험이 있고, 적어도 뮤지컬에 대한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제작자로서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기꺼이 해내는 것으로 뮤지컬에 대한 그 애정을 증명한다. 자신이 왜 뮤지컬을 제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는지에 대한 최초의 결심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다소 감정적인 호소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도리어 그런 인간적인 마음을 가졌던 제작자들은 언제나 예술가들과 든든한 유대감을 가진다. 그래서 언젠가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성공을 이끌어내는 사고를 친다. 1956년작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를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성사시킨 헝가리인 제작자 가브리엘 파스칼(Gabriel Pascal)과 (그는 그 공연이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1954년에 사망하고 말았다. 가브리엘을 위해 건배!) 미국 초기 뮤지컬 시대에 많은 유럽의 오페레타들이 수입되어서 공연되는 동안 자신만의 뮤지컬 작품을 쓰고, 출연하고, 제작한 조지 M. 코헨(George M. Cohan), 지금으로부터 2천5백여 년 전 그리스 황금시대의 디오니소스 축제를 위한 공연을 위해 창작 작품을 발굴하여 1년 동안 준비한 고대 그리스인들을 기억하자. 이밖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작들의 제작자들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살펴보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쇼 비즈니스 만한 비즈니스는 없다(There‘s No Business Like show Business. 어빙 벌린이 음악과 가사를 쓴 뮤지컬 ‘애니 겟 유어 건(Annie Get Your Gun)’에서 나오는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라는 말은 단지 수익에 대한 말은 아니다. 쇼 비즈니스를 하다가 쫄딱 망할 수도 있다. 쇼 비즈니스 안에 있는 인간적 요소를 지니지 못하면 성공적인 제작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가끔 제작자라는 명함을 돌리고 다니던 그런 사기꾼들을 보지 않았던가?) 그런 진지함이 없는 제작자들이 돈이 된다면 외국에 가서 극장들 한 바퀴 돌고는 돈이 될 만한 작품을 사 오는 것이다. 자신은 그런 명작이 관객을 만나는 데에 기여한 것도 없고 해 본 적도 없으면서 한국의 작가들에게는 ‘너는 그런 거 못쓰지?’라는 눈빛이다. 그러면서 새 작품의 대본과 악보를 주면 볼 줄도 모른다.    


 외국에서 성공한 뮤지컬은 이미 검증된 작품이다. 검증된 작품의 공연권을 사 와서 한국에서 번역해서 공연을 올리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그 과정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힘든 일은 빠져 있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는 일. 그것이 제작자의 가장 중요한 할 일이다. 그 일은 하지 않으면서 그저 사 온다는 것... 한 편의 작품이 성공을 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해외의 작품을 쉽게 사 오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어려움을 이해한다면 감히 쉽게 사 오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한 편을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뮤지컬 제작자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투자자를 구해야 하고, 극장을 대관해야 하고, 연출가, 배우, 음악감독, 디자이너 등을 고용해야 하고, 홍보를 해야 하고, 급료를 지불해야 하고... 그러나 제작자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여 그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뮤지컬 제작자는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대본과 음악을 발굴해서 무대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뮤지컬계에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제작사들이 수입업자 일을 하고 있고 그 작품에 관련된 사람들이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있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작가로서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하는 말이 아니다. 외국의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제작자로서 그보다 중요한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제작자는 작품은 발굴해서 키우고 수입업자는 경제적 성공이 검증된 작품을 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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