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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14회 - 우리 정서와 한국 뮤지컬 (2)

 자, 그럼, 산책을 떠나보자. 아, 죄송. 그들이 사용한 ‘우리 정서’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지 대한 음모를 밝히기 전에 우선 ‘전통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전통은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여러 세대를 걸쳐 내려오는 창조적인 정신과 그것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것의 원형을 보존해야 하지만,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원형을 박제화하여 무조건 보존해서 재현하는 것은 전통이 아니라 맹목이다. 박제된 유물에 대한 맹목적 숭배이다. 전통 계승에서 중요한 것은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이 반영된 행동이다. 전통은 그것이 있을 때 세워지고 계승된다. 우리가 우리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선조들의 그런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이 잘 스며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기 위해 본 에세이의 9회(뮤지컬 배우의 삼박자라는 함정)에서 잠깐 언급한 봉산탈춤에 대해 다시 말해본다. 봉산탈춤의 탈은 전통의 계승과 전수에 좋은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봉산탈춤에서는 공연 후에 탈을 태워버렸다. 탈들은 다음 공연을 위해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대로 재현해서 만들기 위한 원형은 이미 없다. 지난번에 태워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새로운 공연을 위해서 새로 탈을 만들기 위해 참고해야 하는 것은 지난번에 탈을 만든 이들의 기억뿐이다. 탈을 다시 만들면서 아래 세대에 그 탈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다. 세대가 지나면서 그 탈들은 그 당시의 사람과 사회를 반영하며 변한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를 거치면서 변해가고 전해지는 것이 진정한 전통의 계승이고 바로 그런 창조적 정신과 행동의 흐름이 전통이다.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원형을 원형대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지만 그 자체로만은 전통의 정신이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을 창조해냄으로써 이어가는 것이 전통이다. 그런 재창조를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전통은 삶에 무게감을 준다. 전통적인 것은 그런 전통의 성격을 지닌 것들이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가 가졌던 문제점 중 일부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를 몰랐다는 것이고 더러 알고 있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하면 새롭게 살려내야 하는지를 몰랐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그 문제점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전통의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전후세대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동시대의 것으로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설픈 전통의 현대화도 조심해야 한다. 누가 쓴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전통극에 대한 연출이나 배우들의 새로운 시도들이 나오는 이유는, 예술적 토대에서는 정당화될지 모르나, 단지 친숙성의 상실에 의해서 발생하는 불안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어설픈 퓨전(fusion)은 겉으로 보기에는 뭔가 해낸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한국적이란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면 그 얼마나 좋을까. 전통을 그야말로 전통의 정신으로 계승하는 모습.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한국이 아니다. 전통은 세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인데 전통의 단절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체득하지 못하게 되었고 전통에 대해 알려고 하면 굳이 배워야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전통적인 것들이 근현대사의 커다란 두 차례의 위기, 즉 일본 제국의 강제 점령과 같은 민족끼리 싸운 한국전쟁 때문에 많이 단절되었다. 이 두 가지 위기와 그것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전통을 쉽게 회복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이후 소비에트 연방과 중공(이 말도 어느덧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의 영향을 받는 북한과 미국의 영향을 받는 남한으로 나누어졌고 냉전이라는 살벌한 이념 전쟁과 군사정권 속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는 당연히 전통문화보다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야 했다. 그러니 전통문화에 대해서 잘 알 리가 없다. 억울하다. 그런 거 모른다고 선생님들에게서 질책을 받은 것이. (역설적으로, 그래서 우리는 전통문화를 지키느라 삶을 바친 분들을 존경해야 한다.)

 어쨌든 그렇게 전통을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우리의 역사를 배경으로 두고 한국적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자. 한국적인 것은 전통적인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것은 전통의 단절과 그 단절 때문에 생긴 영향들을 포함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의 모습을 반영한 모든 것이다. 한국적인 것은 전통적인 것과 함께 현재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다. 심지어 그것이 남 보기에 부끄러운 모습일 수 있는 것들까지도. 지겨운 정치판, 한숨 쉬게 되는 경제, 부동산 투기, 한심한 공교육과 허리 휘는 사교육비, 영어에 대한 미신, 황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지역이기주의, 한탕주의, 지옥과 같은 수험생의 생활, 교통사고 사망률, 뻔뻔한 사채 광고 등등. 부정적인 것만 늘어놓았지만 그런 것마저 한국의 현재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느라 그랬다. 우리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두고, 그러니 어쩔 수 있냐, 적응하고 살아야지라는 패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말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떡은 우리에게 전통적인 것이고 빵을 먹는 것은 현재의 한국의 모습이다. 한국적인 것은 빵을 먹는 우리의 모습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동의한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적인 것만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다면 위선이다. 비보이(B-Boy)들을 날라리라고 무시하던 이들이, 막상 그 비보이들이 해외에서 건너온 그 건들거리는 춤으로 세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니까 그제야 그들더러 한국의 위상을 드러냈다고 칭찬하면서 지원해준다. 웃긴다. 언제 비보이들이 편견과 싸우면서 맨땅에 헤딩할 때 도와줬다고, 아니 관심이나 줬다고. 그 아무리 전통적이라고 해도 동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비보이들은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공을 이용하려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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