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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16회 - 우리 정서와 한국 뮤지컬 (4)


 창작인에게나 관객에게나 ‘우리 정서’보다 중요한 것이 ‘나의 정서’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감동시킨 작품은 우리 정서에 맞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정서에 맞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는 한국인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정서라는 것이 녹아있다. 나의 정서를 통해 창작을 해도 우리 정서를 떠나지 않는다. 선조들이 물려준 자랑스럽고 소중한 전통뿐 아니라 굳이 들춰내기 부끄러운 역사와 현재의 모습 모두가 한국의 모습이다. 현재의 우리를 만든 우리의 과거 즉 역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명절 때 일 년에 어쩌다 몇 번 한복을 입지만 평소에는 서양에서 건너온 옷을 입고 생활한다. 그게 한국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소재와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택해야 한다고도 강요하지 말라.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였고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다. (게다가 영국은 그 이후에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하고도 에비타를 또 공연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의 소설이었고 미스 사이공은 미국과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쓴 뮤지컬은 한국 뮤지컬이다. 그러니 내가 보고 싶은 뮤지컬을 쓰면 된다. 무책임하게 들리는가? 하지만 그것이 더 두렵지 않은가? 내가 하고 있는 뮤지컬이 한국 뮤지컬의 한 모습을 규정한다는 것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사람들이 뮤지컬에서도 한국의 대표적인 뮤지컬이 어떤 뮤지컬인지 정의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이라는 것은 어떤 대표작이 대표하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창작인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작품들의 전체 모습인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나에게 어떤 작품을 일컬어 국민 뮤지컬이라고 하지 말아 주기를. 나도 한국 사람인데 내 정서와는 정말 다른 그 작품이 국민 뮤지컬이라면 그렇게 인정할 수 없는 내가 매국노로 낙인찍히는 것 같으니까. 그런 작품을 보고 전혀 감동이 되지 않으면 나는 한국의 국민이 아니라는 것인가? 예술은 국수주의나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 그런 작품은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아 상대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수월하다는 것을 그들은 계산하고 있다.)    

 슬슬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하겠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회피하면서 안전함을 숨기려고 사용하는 ‘우리 정서’와 ‘우리 정서에 맞는 뮤지컬’이라는 말에 속지 말라. 수입 뮤지컬의 대부분의 작품은 괜찮은 작품이다. 해외 뮤지컬에 대해 무조건 등을 돌릴 필요도 없다. (안타깝지만 그런 작품을 소개한다면서 이익을 챙기는 수입업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창작 뮤지컬 모두가 좋은 작품도 아니다. 미안하지만 사실 창작 뮤지컬 중 정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은 작품도 거의 없다. 수입 뮤지컬에 맞서려고 창작을 하는 에너지 소모를 하지 말라. 전통적인 것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도 벗어나기를 바라고 우리 정서라는 말에서도 벗어나기를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로서 나의 정서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쓰고 잘 만들면 된다. 그것을 위해 전통문화에 알 필요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공부하면 된다. 전통을 존중하고, 한국의 현주소를 인정하고,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예술가로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주라. 나의 정서에 충실하게 자유로이 진실을 말하라. 예술가 개개인이 믿는 자신만의 신념이 전통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국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인류 보편적일 수도 있다. 그런 다양한 뮤지컬 작품이 창작될 때, 그 모습 전체가 한국 뮤지컬을 규정할 것이다. 그것이 뮤지컬이 우리 뮤지컬이다. 그런 풍성함에 빠지고 싶다.


 아, 여기 벤치가 또 보인다. 잠시 함께 쉬자. 수다 떨었으니 입을 다물고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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