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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Feb 21. 2020

인간관계의 불쾌한 골짜기

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


언캐니 밸리 uncanny valley를 우리말로 번역한 말이다. 언뜻 이름만 듣고 무슨 이론인지 떠올리기 쉽지 않다. 한 마디로 골짜기와 같은 그래프 모양을 빗댄 말이다. 게다가 그 골짜기 구간이 굉장한 비호감을 나타내는 구간이라 '불쾌한 골짜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의 이론(1970)에서 나온 표현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로봇이 인간과 비슷한 면이 많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지만 인간에 근접할 때 갑자기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져 불쾌감을 유발하는 구간(불쾌한 골짜기)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아래 그래프를 잠깐 보자. 여기서 Y 축은 로봇에 대한 호감도, X 축은 로봇이 얼마나 인간과 유사한지를 나타낸다.


[출처: 중앙일보 기사- 인간과 너무 닮으면 혐오감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


왼쪽의 커다란 굴착기 같이 생긴 노란 산업용 로봇은 사람과 닮은 점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 로봇은 딱히 호감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과 비슷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우 사람과 닮은 특성이 많을수록 호감도가 상승하게 된다. 특히 고정된 것보다는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며 걷는 로봇에 더 큰 호감을 느낀다. 그래프에서 점선과 실선은 각각 움직임이 가능한 로봇과 고정된 로봇을 나타낸다. 같은 유사성을 가진 로봇이라도 움직임이 있을 때 호감도가 높다. 


그런데 눈, 코, 입, 피부나 손가락 모양 등 거의 인간에 가까운 로봇에 이르면 갑자기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엄청난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이 구간이 바로 그래프 모양과 같이 '불쾌한 골짜기' 영역이다. 


아래 [사진 A]에서 나오는 로봇을 보자. 하나하나 따져보면 인간과 매우 유사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래서 전혀 호감을 느낄 수 없다. 애니메이션 내 인물들도 친근함보다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폴라 익스프레스(2004)가 극장에 개봉 했을 때 영화를 보던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불쾌한 골짜기는 좀비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의 원인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과 매우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호감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좀비다.

 

[사진 A] Repliee Q2 (actroid)      [사진 B] 영화 폴라익스프레스


이제 훨씬 더 자연스러워져 인간과 차이가 거의 없어지면 호감도는 다시 상승하게 된다. 불쾌한 골짜기를 건너 진짜 인간에 대한 호감도와 같아지게 되는 것이다. 아래 TV 드라마 리얼 휴먼(2012)에서 볼 수 있는 로봇과 같이 인간과 차이점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되면 호감을 넘어 애정이나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진 C] 리얼 휴먼 (2012, 스웨덴 SVT1)



불쾌한 골짜기의 원인은 인지적 편향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불쾌한 골짜기가 생기는 원인이다. 불쾌한 골짜기는 인간이 어떤 물체를 인식할 때 발생하는 인지적 편향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산업용 용접 로봇과 같이 인간 특성과 매우 다른 개체를 인식할 때에는 인간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특성들을 먼저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비슷한 특성이 점차 많아질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사성이 많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는 원리와 비슷하다.** 


그런데 인간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갖는 개체에는 이 편향이 반대로 작용한다. 인간과 조금이라도 틀린 특성들을 먼저 두드러지게 인식하는 것이다. 위 [사진 A]의 경우 눈, 코, 입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인간에 가깝다. 피부색이나 질감까지도 인간과 유사하다. 그러나 완벽히 똑같지는 않다. 이런 경우 입술이 말과 잘 맞지 않다거나 어눌하고 어색한 표정이나 실제 피부와 약간이라도 다른 질감 등을 두드러지게 포착하는 것이다. 걷는 행동에 있어서도 어딘가 약간 부자연스러움이 있다면 우리가 좀비 걸음걸이를 혐오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이런 로봇들에게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의 불쾌한 골짜기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인간관계에 대입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로봇에 대한 호감도 변화'를 '타인에 대한 호감도 변화'로 바꾸는 것이다. 모리의 그래프에서 '로봇'을 '타인'으로 바꿔 보기만 하면 된다. 이 경우 X축은 타인이 얼마만큼 나와 유사한가를 나타낸다. Y축은 타인에 대한 나의 호감도를 표현한다.


인간관계의 불쾌한 골짜기 (원본 그래프 수정)

전혀 모르는 완전한 타인의 경우(모리의 원본 그래프에서 노란 산업용 로봇에 해당한다) 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특성을 먼저 찾아보게 된다. 그래서 타인들 중 나와 유사성이 많아질수록 점차 호감이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친한 친구나 가족과 같이 나와 닮은 점이 많거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호감도는 최고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어느 순간 일부는 불쾌한 골짜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마치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나 쿵작이 잘 맞는 직장 동료 혹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 중에서 어떤 계기로 인해 서로 혐오하고 미워하게 되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계기나 원인이야 이 세상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불쾌한 골짜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분명 나와 유사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닮지 않은 부분과 싫어하는 점을 두드러지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완전한 타인에 비하면 좋아할 점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정말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쾌한 골짜기에 놓인 사람들과는 다른 경우다. 이들은 한때 절친이었고 한때 마음 맞는 동료였으며 한때 따뜻했던 가족이었다. 그러니 단순히 '이젠 나와 맞지 않아!'라고 성급하게 결론짓기엔 뭔가 찜찜하다. 따라서 이런 경우 나와 가장 유사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점이나 나쁜 점들만 유독 두드러지게 보게 된 것은 아닌지 한 번쯤 고민해봐도 좋지 않을까. 적어도 완전한 타인에 비해서는 여전히 나와 닮은 점과 좋아할 점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제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참고 문헌]

* 그래프 출처: [중앙일보] 인간과 너무 닮으면 혐오감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

**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1, 황혜숙 역, 21세기 북스


[사진 출처]

(Repliee Q2) https://heinakroon.com/2012/10/20/the-uncanny-valley/

(폴라 익스프레스) https://medium.com/voice-tech-podcast/voice-assistants-the-uncanny-valley-the-more-lifelike-the-less-real-fb0bab2755d1

(리얼 휴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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