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의 모티브 84]
그는 워커홀릭이다. 그의 인생에는 직진만 있다. 어려운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으니까 그럴 수 있다. 꿈꾸는 것은 많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탈이 나기 시작했다. 몸에서 고장 났다고 신호를 보낸다. 주변 사람들도 지치기 시작했다. 가장 열심히 응원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조금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이건 분명 중요한 신호다.
나도 그랬다. 그때는 불안했다. IMF가 난 해에 입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려나갔다. 몇 년간의 구조조정으로 480명에서 입사한 회사는 18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 첫 번째 잘린 사람 중에는 그래, 그럴 수 있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다음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얼마나 큰 클라이언트를 가지고 있느냐, 결정권자와 얼마나 가깝냐 등이 판단 기준이었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나도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은 일에 매달리게 했다.
경쟁 피티라도 있으면 출퇴근 시간 잠깐을 빼고는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집에 가서는 잠을 자고 옷을 갈아입고 오는 정도. 주말에도 당연히 일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몸이란 게 전구와 같아 계속 켜놓으면 결국은 터진다. 나도 그랬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가 죽을 것 같다고 말하곤 기절했고, 링거 주사를 다 맞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의사는 대상포진에 원형 탈모라고 했다. 나름 잘하고 있었지만 한순간에 질려버렸다. 지쳐버렸다. 새까맣게 타버렸다. 한동안 일이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래서 회사를 옮겼다. 지금에서야 그때 그렇게 일한 시간이 나를 만들었구나 하며 고마움도 느끼지만, 그때 잘 조절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직업도 찾았고, 이제는 다시 번아웃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도움이 된 방법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1. 스위치를 켜고 끌 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업무 시간에는 스위치를 키고 집중하고, 힘들 때는 스위치를 내려 생각을 끄고 잊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뇌는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계속 관심이 가고 생각이 끊기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되면 스트레스가 쌓여 신체에는 과부하가 걸리게 되어 일 역시 잘되지 않는다. 지치고 힘들 때는 생각을 끊을 줄 알아야 신선한 시선으로 다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계획을 잘 세우고 이에 따라 생활함으로써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은 일의 조정 능력이 높다. 일이 생기거나 고민이 생길 때 이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날, 해야 하는 시간 계획에 집어 넣어두고 고민은 내려놓는다. 그렇게 언제 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무의식은 은연중에 이 문제를 풀게 된다.
2. 자신이 집중할 취미가 필요하다.
생각이라는 것이 내 맘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문득 떠오르고는 내 맘대로 떠나지 않는다. 무언가의 생각을 잊으려면 내 머릿속에 다른 것을 떠올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충전시킬 수 있는 온전히 재미있는 것. 그것이 있어야 다른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나는 답답할 때는 걷는다. 집 근처 양재천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노라면 많은 잡념과 걱정이 날아가 버린다. 요즘 같은 날씨엔 에어컨 켜놓고 시원한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작년에 시작한 권투도 효과적이다. 줄 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치고 있으면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리가 하얗다. 그렇게 땀 흘리고 시원한 물로 씻고 나면 개운하다.
3. 꼭 무엇을 할 필요는 없다.
가끔은 '취미 생활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취미가 없다 라는 것을 가지고 힘들어하지는 말자. 있으면 좋다는 것이지, 없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침대에 딱 붙어 늘어지게 자는 것도 괜찮다. 몸이 그러자고 하면 말을 따르자. 내 맘이 이야기하는 데로, 하고 싶은 데로 하자.
누워있을 때는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냥 살아도 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은 인생을 풍성하게 만든다. 이제는 아주 오래 산다. 술 마시고 노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냥 주변에 관심을 두고 둘러보자.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해줄 것은 무엇인지.
4. 새로움은 에너지를 준다.
새 학기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설레는 기억이었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폴짝' 한 것처럼 새로운 물건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꼭 취미는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새로움은 무엇일지 찾아보자. 스트레스 주는 일 말고 진짜 해보고 싶었던 것들. 그것을 가르쳐주는 수업이 있다면 등록해서 나가보자.
그 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자신을 위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는 것도, 평소에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신선한 힘을 준다. 익숙함이 편안함을 준다면, 새로움은 탱탱한 긴장감과 에너지를 넣어준다. 무엇을 해야할지 정 모르겠으면 평소에 잘 쉬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는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좋은 친구라면 그 시간도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5.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자.
미래가 불안해서 쉬지 못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감사히 여기자. 오늘 이 순간을 감사할 줄 모르면 언제나 불안하고, 행복은 자신에게 오지 않는 미래에만 존재할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많은 시간 힘들고 고생했는지.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았는지. 하지만 그 어려움을 헤쳐내고 이겨왔기에 지금까지 온 것이다.
과거에 힘든 시간을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싶을 때가 많다. 그동안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지 않았는가? 감사하자! 현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오늘 하루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쉬지 못해 힘들다고 한다면 그건 열심히 살고 있다는 뜻이다. 잘 하고 있는 것이다. 훌륭하다. 진심이다. 옆에 있다면 어깨라도 두드려주고 잘 했다고 폭 안아주고 싶다. 하지만 잊지 말자. 기계도 자동차도 쉬지 않고 너무 달리기만 하면 과열되어 결국은 멈추게 되어있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쉴 줄도 알아야 한다.
이번 여름, 뜨거워진 자신의 몸도 마음도 푹 쉬게 해주자. 그리고 몸도 마음도 완충해서 신나는 마음과 가벼운 몸으로 기분 좋게 달려가보자. 분명 시원한 바람이 느껴질 것이다.
[이형준의 모티브 84] 쉬는 방법을 모르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