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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준 Feb 16. 2019

해봐, 현실을 알게 될거야

[이형준의 모티브 59]

시작은 집에서 늘어지는 아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추운 겨울이 오면서 수영을 그만두고 집에서 오롯이 방학을 즐긴다. 문제는 활동량이 줄어드니 잠자는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살이 아주 많이 붙는다는 점이었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탁구, 배드민턴, 헬스 등의 운동을 추천해 보았지만 답변은 노.


주말 사촌 형제와의 만남에서 친한 사촌이 권투를 시작했다는 말에 아이는 반응을 보였다. 아내는 관심 있다는 말에 바로 아이를 권투도장에 데리고 가 등록을 했고, 아이는 새로 생긴 글러브에 싱글벙글했다. 하지만 글러브의 약효는 단 하루. 너무 힘들다며 아이는 다니기 싫단다.


연말 휴가 중이던 나는 아이를 데리고 권투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운동으로는 조용하고 정적인 산책을 즐기던 나는 빵빵 소리를 내며 샌드백 두들기는 소리와 헉헉거리는 숨소리에 왠지 본능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 아내에게 말해주니 보약을 먹는 것보다 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며 바로 3개월치 회원 등록을 한다. 아이는 자신이 가르쳐 주겠다며 의기양양하고, 아내는 같이 다니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첫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손목 보호대와 글러브를 고르라고 한다. 권투장의 모든 운동은 땡 소리로 시작되고 땡 소리로 끝난다. 종이 울리면 3분간 운동하고, 다시 울리면 30초간 휴식이다. 처음에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그리고 3라운드 동안 줄넘기를 한다. 오랜만에 하는 줄넘기에 살들이 출렁거리는 것이 느껴지지만 줄이 마룻바닥을 치며 내는 탁탁 소리는 경쾌하다.


© Auction

4라운드부터는 기본자세를 배운다. 권투는 잽, 스트레이트, 훅, 어퍼 이 4가지 동작으로 진행하는 단순한 운동이다. 하지만 이것을 다양하게 쓸 수 있도록 조합하고 그것을 몸에 붙이기 위해 노력한다. 먼저는 잽잽 원투만 한 라운드, 그다음은 잽잽 투, 그리고 세 라운드는 원투 훅훅, 원투 훅훅 어퍼 어퍼, 원투쓰리 훅훅, 훅 어퍼 원투 등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가며 연습하고 여기에 수비에 해당하는 덕킹과 위빙이 들어가서 다양한 패턴을 만든다.


9라운드부터 세 라운드는 샌드백을 친다. 실제 무언가를 타격하면 손과 손목, 팔뚝, 어깨, 등으로 힘의 반작용이 느껴진다. 앞에서 배운 동작들을 가볍게 뛰면서 샌드백을 상대로 펀치를 연습한다. 이 정도 되면 뒤에서는 계속 뛰라고 하지만 발은 체육관 바닥에 붙어있다. 중간에 30초 남은 것을 알려주는 부저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는 남은 힘을 짜내서 연속 타격을 해야 한다. 원투원투원투원투. 샌드백을 매달고 있는 쇠사슬의 철렁거리는 소리가 계속 울리도록 빠른 속도로 샌드백을 쳐야 한다.


기본자세를 연습하고 있거나, 샌드백을 치고 있으면 관장님이나 코치가 부른다. 자세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미트를 대준다. 그러면 불러주는 대로 글러브를 끼고 미트를 친다. 이때 대 주는 대로 호흡이 딱딱 맞고 제대로 주먹이 들어가면 빵빵 소리가 울린다. 이때 쾌감이 짜릿하다. 물론 호흡이 안 맞거나 힘이 딸리면 헛스윙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보통 11라운드 운동을 하고, 버핏 테스트, 마운트 클라이머, 쪼그려 뛰기, 전력 달리기 등등 7가지 마무리 운동을 하면 전체가 끝난다. 운동을 하러 간 첫날, 코치가 시키는 데로 열심히 했다가 천국을 봤다. 머릿속이 하얗고 어지러웠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고 물을 마셔도 헉헉거리는 호흡이 진정되지 않는다. 온몸에서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한참 동안을 후후 거리며 숨을 골랐다.


운동하는 시간은 11라운드 33분, 쉬는 시간 30초씩 10번 5분, 앞뒤로 스트레칭과 마무리 운동 10분, 옷 갈아입는 시간까지 쳐도 1시간 안에 딱 끝난다.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강도를 맛볼 수 있다.


운동을 실제로 해보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첫째, 체력이 중요하다.

모든 운동의 바탕이 되는 것은 체력이다. 처음 줄넘기를 하는 것도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고, 자세를 배우면서도 힘이 떨어지면 제대로 팔을 뻗을 수가 없다. 마지막에 남은 힘을 쥐어짜며 펀치를 낼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체력 싸움이다. 일도 그렇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방법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결국 체력 싸움이다.

 

둘째, '조였다 풀었다'를 잘해야 오래간다.

줄넘기를 뛰어보면 안다. 100개가 넘어가면 허벅지가 땡기고, 종아리는 아프고, 발목에 통증이 온다. 3분 동안 모든 근육에 힘이 들어가 딱딱해지고, 호흡은 턱까지 차오르고, 남은 힘을 다 쓴 것 같은데 30초를 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짧은 시간 뭉쳤던 근육은 풀리고 호흡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3분을 집중할 수 있는 것은 30초를 쉬었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일하려면 그만큼 적절한 타이밍에 잘 쉬어야 한다.


셋째, 힘은 빼고 중심을 유지해야 한다.

골프 스윙을 할 때도 몸에 힘이 들어가고 중심이 흔들리면 공은 멀리 나가지 않는다. 축구의 슛을 할 때도 다리의 힘은 빼고 빠른 속도로 발을 휘두르되 몸의 중심은 남겨야 공에 제대로 임팩트가 가해진다. 야구에서 공을 던질 때도 팔로 큰 원을 그리게 던지되 몸의 힘은 빼고 중심이 잡힌 상태에서 공을 채야 원하는 곳으로 빠른 속도의 공을 뿌릴 수 있다. 원리는 통한다. 무언가 할 때 힘이 들어가면 결과는 오히려 떨어진다. 일의 중심은 유지하되 힘은 빼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오히려 결과가 좋다.


넷째, 생각과 실전은 다르다.

한 달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니 코치가 링 위로 부른다.커다란 스파링용 글러브를 건네주며 글러브 위를 치며 배운 것을 한번 써보라고 한다. 배운 것들을 연습하는데 갑자기 코치도 타격을 한다. 나만 치는 연습인 줄 알았는데 코치도 맞공격을 한다. 중간에 이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물론 힘을 빼고 툭툭 쳐주는 거지만 직접 맞아보면 느낌은 다르다. 라운드를 뛸수록 다리는 무거워지고, 팔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자세를 익히며 배웠던 것들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상대가 거울에서 사람으로 바뀌니 계속 움직여야 한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나의 반응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격은 막힌다. 팔을 내지 않고 수비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한다. 역시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다. 3라운드를 마치고 핵핵대며 링에서 내려오는데 코치가 말한다. 실제로 해봐야 연습과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된다고. 


타이슨이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해보면 안다. 계획과 연습 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해보고 붙어봐야 자신의 현실을 알게 된다. 


© Washingto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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