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통보를 받은 바로 다음날, 첫 번째로 했던 것이 새벽 예배다. 두 번째가 운동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건강해질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조직변경 발표를 기다리던 지난주까지의 나보다는 적어도 지금의 내가 정신도 더 또렷하고 몸의 컨디션도 더 좋다. 딱 두 번이었는데, 몸을 심하게 굴리고 나니, 컨디션이 더 좋아졌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건강하시다. 젊은 시절 아마추어 축구 선수로 뛰셨을 만큼 운동신경도 좋았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한 겨울에도 냉수마찰 하시는 것을 많이 보여주셨다. 난에게도 권장하셨지만, 어린 나이에 하기에는 무리였다.
IMF가 한창일 때, 나는 대학에 갔다. 어머니가 직장을 잃었고, 모아 놓았던 돈도 사기를 당하셨다. 나는 서둘러 군대에 갔다. 대전에 있는 한 후반기 학교에서 행정병으로 군대생활을 했다. 전방은 훈련과 근무라 힘든 대신 내무 생활이 편하고, 후방은 다른 조건들이 좋은 대신 내무 생활이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나의 군대 생활도 비슷했다. 행정병 중에서도 좀 더 편한 보직을 받아서 약간의 갈굼이 더 더해졌었는데, 이등 병 시절 나는 따로 샤워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유일하게 샤워할 수 있었던 시간은 새벽 보초를 끝낸 그 시간이었다. 아무리 대전이라고 해도 군대의 한겨울 밤은 춥다. 선임병에게 양해를 구하고 찬물로 샤워를 했다. 그렇게 시작한 샤워로, 나는 제대할 때까지 2년이 넘도록 한 번도 뜨거운 물로 씻은 적이 없다.
약 3주 전에 아들을 위해 집 근처 Boxing Gym을 알아봤다. 학교에서 친구에게 맞고 온 다음이었는데,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다. 다행히 Kids class가 주말에 있었고, 바로 아들을 등록시켰다. 처음 체육관에 간 날, 예닐곱 명이 아이들이 보였다. 한두 명은 정말 힘꾀나 쓰게 생겼고, 다른 두어 명은 약해 보였다. 아마도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아이들을 체육관에 보낸 것 같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저 링 너머로 열심히 복싱을 하고 있는 어른들이 보였다. 비트가 강력한 음악 속에서 거친 숨소리와 샌드백을 두드리는 소리, 펀치가 미트를 때릴 때마다 체육관 울렸다. 그 활력에 마음이 끌렸다. 나도 뛰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등록했다.
지금 까지 두 번, group class에 참여했다. 첫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5명의 참여자가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40대는 나 혼자고, 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여기는 인사가 없다. 통성명도 없다. 그냥 시작한다. 준비운동부터 나는 숨이 찬다. 맘 놓고 달려본 적이 까마득한데, 뛰고 뛰고 또 뛴다. 체육관을 3분 동안 뛰는데, 중간에 옆으로 빠졌다.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스텝을 배우고. 미트를 치고, 샌드백을 치고, 샌드백을 몸으로 밀고......
'내가 선수하려고 등록한 것도 아니고, 분명히 Basic boxing course였는데, 이게 기초과정이라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젊은 참여자들도 다 뻗어버렸다. 살집이 제법 있는 한 참여자는 거의 토하기 직전까지 갔다. 땀이 빗물같이 흘러내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안경이 벗겨졌다. 그래도 쉬지 않는다. 또 뛰고, 샌드백을 또 치고, 섀도복싱을 하고, 마무리 운동을 했다. 마무리 운동 때에는 드러누워서 거의 꼼짝 못 했다.
그렇게 첫 Class가 끝났다. 주먹질을 잘못해서 오른손 새끼손가락 정권에 살이 벗겨졌다. 손목도 아프고 모든 정권 부위가 빨갛게 부었다. 이렇게 땀을 흘려본 게 얼마만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체육관을 나오며 아직 다리가 움직임에 감사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저녁도 먹지 않았고,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던 내가 한 시간을 뛰었는데, 에너지가 오히려 올라간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에 꽉 찬 걸까? 집으로 오는 길을 뛰어왔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까?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몸이 따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질문이다.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기에 분리해서 얘기하기 힘들다. 심한 우울증이나 조현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보면, 몸을 잘 펼치지 못한다. 팔다리를 쭉쭉 펴는 것을 힘들어하고 대부분 행동도 작고 움츠린 자세를 가지고 있다. 반면, 동작이 크고, 평소에 목소리에 힘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자신 있게 사는 분들이다.
Ted의 명강의 중 하나인 Amy Cudd의 Your body language may shape who you are를 보면 이와 관련된 과학적 실험과 충고가 나온다.
Our mind changes our body
Our body changes our mind
생각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리고 나아가 행동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복잡하고 상처 입고 힘이 없고 낙담했다고 생각한다면, 몸부터 움직여라. 그냥 나가서 당장 뭐라도 해라. 걷든지 뛰든지, 정 안되면 햇빛 좋은 잔디밭에 대자로 누워있기라도 해라.
Our bodies change our minds,
our minds change our behavior,
our behavior change our outcomes
Tiny tweaks, big changes!
온몸에 알이 배겼다. 팔, 등, 가슴 옆부분, 배, 허벅지, 그리고 발바닥까지 아프다. 한 번 앉고 일어설 때마다 아이고 소리가 나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니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저녁 10시만 되면 눈이 스르륵 잠긴다.
이번 주에만 Boxing 체육관을 세 번 갔다. 체력이 달린다.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고, 저녁이 되면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있는 힘 껏 샌드백을 치고, 거의 쓰러질 때까지 뛰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운동을 마치면 샤워를 한다. 찬물로 한다. 여기가 홍콩이라고 해도, 찬물은 춥다. 한여름이 아니고서는 보통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는데, 체육관에서는 찬물이 전혀 차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원하다. 찬물을 다 증발시켜 버릴 것 같은 열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