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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Jun 12. 2024

27화_먼 나라이웃나라_캄보디아 태국 편_세계시민_5

동남아시아 두 국가 캄보디아, 태국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1. 캄보디아

Kingdom of Cambodia (캄보디아)

*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에 속한 입헌 군주국
* 면적 181,035 km2 (세계 88위, 한반도의 0.8배)
* 언어 : 크메르어 (90% 이상), 불어, 영어, 중국어 (출처_외교부)
* 1975~1979년 사이 크메르루주가 자행한 학살로 인해 약 140만 명,
   굶어 죽은 사람 포함 최대 250만 명 사망자 보고 됨
* 태국, 베트남, 라오스 3 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음
* 수도 : 프놈펜
* 뚜올슬랭(Tuol Sleng) : 정치범 수용소
* 폴포트가 수상으로 있을 당시 실질적인 노예국가, 독자적인 공산주의를 지향
* 평화, 평등, 공평이라는 3대 가치를 지향하는 공산 국가
* 농민, 노동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숙청하려 했음
* 기후 : 열대몬순, 고온다습
* 종교 : 불교 약 95% 차지
* 인구 약 1718만 명(2024년 IMF)
* 주요 산업 : 의류, 신발, 여행 용품 제조업
* 휴양지 : 시아누크빌 (섬)

2. 태국

2. Kingdom of Thailand  (태국)

*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사이를 걸친 국가
* 면적 513,000 km2 (세계 50위, 한반도의 2.3배)
* 수도 : 방콕
* 언어 : 타이어(공용어), 중국, 말레이어
* 인구 : 약 7027만 명(2024년 IMF)
* 기후 :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  
* 종교 : 불교 약 93%, 이슬람(5%), 기독교(1%) (출처_외교부)
* 휴양지 : 피피섬, 푸껫, 코사무이, 코사멧, 꼬리뻬 등
* 아시아 각국이 서강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기, 유일한 독립국
* 에메랄드 불상이 있는 사원, 국왕, 불교, 코끼리, 똠양꿍 등으로 유명한 나라
사랑하는 기쁨이 안녕!
오늘도 변함없이 인사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해, 정말 그래
이제까지 네게 수많은 이야기 꽃 피워 보냈는데,
언제 네 마음 한가운데 그 꽃 모여들어  
풍성한 꽃다발 네 품에 안겨줄 수 있을까?
2024년 6월  미국 산호세 놀러간 지인께서 꽃 좋아하는 내게 선물해 주신 꽃, 감사해요


기쁨이 청소년 되어 인생질문 찾아 올 즈음에 가능하려나
아님 푸르고 푸른 청년 되었을 때 가능하려나
그게 언제든 네가 필요할 때 꺼내, 그 향기 향유하길 바라

시들지 않는 꽃으로 준비했으니까
아빠가 늘 네 곁에 있으려고
지난 10년 고비 넘어
아빠 생애 이곳에 고스란히 담아 놓았으니까   
아빠는 이제 너와 평생에 함께 하는 거야
다음에는 엄마 이야기도 담을 거라, 엄마 아빠 모두와 평생 함께 하는 거야
어때! 신나지!
오늘은 아빠가 캄보디아, 태국 이야기를 해줄 거야
그러기 전에 그 이전 이야기부터 해줘야 할 것 같아
네게 아빠 삶을 조금 더 알려 주고 싶어

자 이제 출발한다!
눈 지그시 감고, 아빠 손 꼭 잡아, 우리 같이 과거로 여행 떠나는 거야
 기쁨아 언제고 너를 사랑하는 아빠, 엄마 그 사랑을 잊지 마!


서른 즈음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부(夫婦)됨을 만인 앞에 선언했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희로애락 같이 하겠노라 큰 소리로 성혼 선언했다

 

신혼여행 가기 전 그 전날까지 늦은 야근 해야 했다. 신입사원 딱지를 아직 붙이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회사는 늘 바빴다. 아침 8시 반 출근, 밤 10시 반 퇴근을 수개월 동안 매일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 그 후로 몇 년 그 생활이 더 이어졌다. 공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는 1년 넘게 새벽 6시 반 출근, 보통 밤 12시 혹은 1시 퇴근을 밥 먹듯 했다. 주말 오전에도 공장 생산라인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지 확인해야 했다. 딱히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생산라인이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지만 예상보다 정말 고된 5년을 보냈다



시계를 잠시 돌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 그 시작부터 다시 들여다보기로 한다. 자세히 보면 그제야 그 의미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니까




아프리카 케냐 그 끝 무렵 흑인, 인도인, 파키스탄인 동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게 되었다. 한국행을 다시 선택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케냐 사람 키마리와 몇몇 동료들과 포옹을 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이미 내린 결정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걸 알았기에 헤어짐이 참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예비 신부가 있는 고국으로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최소 2-3년을 있을 생각으로 케냐 새로 이사 갈 집에 이미 계약금 100만 원 걸어 두었지만 한 푼도 못 받게 됐다. 중개인과 여러 차례 이야기 나눠 봤지만 돌이킬 수 없다 했다. 법을 확인하고 강력하게 주장하면 가능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왠지 그러기 싫었다. 빈부 격차가 크고 가난한 나라, 마타투를 타고 다니면서 그간 사람 간에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케냐 사람들과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래 생각을 바꾸자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케냐에 100만 원 주고 돌아간다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현실 인식을 했다. 나는 또다시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시계를 다시 12시 정각으로 맞추고,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새 출발해야 했다. 이미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 나이 경쟁력에서부터 밀렸다. 대부분 학비를 스스로 벌며 다녀야 했던 나로서는 졸업이 남들보다 2년 가까이 늦어진 상태였다. 다시 취업 준비에 몰두했다. 결혼을 약속했던 예비 신부를 더 이상 오래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있는 돈 다 털어서 작은 고시원에 들어갔다. 창문 없는 유일한 방, 식당 옆 언제나 티브이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 그릇소리, 술 취해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던 시끄러운 방을 택했다. 밤새 몇 시고 상관없이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던 식당 바로 옆 방, 가장 싼 방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현실이었다. 다행히 고시원 비용에 밥값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밥과 김치는 얼마든지 꺼내 먹을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할머니 사장님은 친절하셨고 취업 준비한다 들어온 나를 너그럽게 바라봐 주시고 가끔 계란 프라이도 해서 주셨다. 그렇게 그 순간부터 꼬박 8개월 가까이 전력투구를 해야 했다


아프리카에 가기 전부터 합산하면 지원한 회사만 200군데 가까이 되었다. 지원할 수 있는 대부분 공채에 지원했고,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유형 회사들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중 합격 가능성이 높았던 건 교직원 면접 때였다.


서류, 인적성, 1,2차 면접을 차례로 거쳐 3차 최종 대학교 총장 면접에서 조차 일이 잘 풀렸다. 총장님은 면접 중에 많이 웃으셨다. 그래서 다 된 밥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


케냐 가기 전 1년 몇 개월, 다녀와서 8개월 통산 2년 취업 준비생으로 살았다. 경력개발센터, 모의 면접, 각종 면접 모임, 학교 스터디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보험회사 인턴 경험을 쌓았고, 학점도 경영학 복수 전공을 선택한 탓에 졸업학기에도 많은 수업을 들어야 했다. 어쩔 수 없었던 현실 속에서 무딘 날을 계속 갈고 또 갈았다.  


이제 교직원 되어 새롭게 출발하게 될 마지막 관문만 남겨 두었다. 그러나 최종에서 2:1 경쟁률을 넘지 못했다. 나 대신 현직 은행원이 최종합격을 했다. 교직원 실패 후 은행, 증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하나은행 최종 면접에 갔을 때 또다시 쓰디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렇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여러 이유 속에서 크고 작은 회사들로부터 거절에 거절을 당했다. 쓰나미와 같이 몰려들었던 실패의 늪, 나는 흔히 말하는 실패 챗바퀴에 타 실패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실패라는 단어가 더 이상 무디게 느껴질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언제나 제 자리인 듯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종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입사 지원해 주신 것에 깊은 감사드리며, 현재님이 최종 합격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끝났다.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케냐 이후 8개월 만에 최종 합격 소식이 날아들었다


케냐에 위치해 있었지만 국내 대기업에 갔기 때문에 재 취업이 금방 될 줄 알았으나, 큰 오산이었다. 하나님은 언제나처럼 내게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당신께 드리길 원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입사원으로 입사 후 완전히 다른 산업과 새로운 직무가 어렵게 느껴졌다. 그동안 준비했던 스펙은 단지 종이 몇 줄 채우는 용도에 지나지 않았다. 직속 상사들은 대부분 세대 차이를 느끼기 충분한 40대 중후반 어른들이었다.



실무적인 경험을 빨리 익혀야 했다. 다소 거칠고 생경한 직장 문화에 빠르게 편입해야 했다. 케냐에서 소수 한국인, 다수 외국인들과 직장 생활을 해봤지만, 국내 회사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출근은 8시 반, 퇴근은 매일 10시 30분을 넘겨야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 부서 특성상 늘 그랬다. 수년 넘게 지켜온 불문율이라 했다. 같은 층 다른 팀들은 늦어도 8시면 일을 정리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너네 팀은 왜 집에 안 가냐고 늘 물었다.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일이 많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도저히 즐겨지지 않았다.


피곤이 쌓이니 몸도 마음도 고달팠다. 입사하고 점심시간에 이런 말을 들었다. 현재 너는 500:1 경쟁을 뚫고 합격한 거야. 그 말을 처음 들었는데 그리 달갑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성실하고, 취업에 필요한 경험들을 하기 위해 누구나 고군분투하는 성실한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와 같이 취업 준비 하던 모든 이들이 그랬었다. 지금 이 시간 499명은 지금도 쓰디쓴 고배를 마시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느 자취방에서 오늘도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고 있을 거야라는 음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서였던 것 같다



기회를 어렵게 잡았으니, 그 기회를 잘 활용해서 소기의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숭고한 기회를 잡았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신앙의 힘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어느덧 해를 넘기고,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지난 2년 간 공부한다고 아르바이트도 못하고 줄곧 의자 위에 엉덩이만 붙이고 책만 보던 한 청년을 애석하게 여겨주었던 예비 신부가 드디어 내 아내가 되는 날이었다. 가정은 둘이 하나가 되는 인생 여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었고, 남이었던 그녀가 나와 같이 한 가정을 이루고 일상을 통해 차근차근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생각을 하며 날마다 말씀을 짧게라도 묵상했다. 성경 말씀이 와닿는 순간이 많았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3~24)


열 평이나 될까? 아주 작은 전세 신혼집을 마련했다. 아내가 물색한 작고 조그마한 신혼집에 둥지를 틀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열다섯 살부터 배우자 기도를 시작했었고, 그녀와 교제하는 3년 동안, 아니 그녀를 처음 만나서 선후배로 지내는 그전 7년 동안 그녀의 성격과 품성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게 되었다. 아내는 성경 원리대로 당신을 존경하는 사람으로 대하고 싶다고 했고, 나 역시 그럴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회사 일은 너무 고되고 바쁘게 돌아갔지만, 내 가정이 평안해서 충분히 견뎌나갈 수 있었다. 커다란 소망이 있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한 컷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캄보디아 선교를 가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섬김이 주목적이었지만, 회사가 바빠 선교 준비 시간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드문드문 갈 수 있는 기회가 가끔 주어졌다. 역시나 사회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끝내는 게 당연하다는 걸 몸으로 계속 체득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고 몸이 힘들면 마음도 따라 힘들어진다는 걸 또 한 번 제대로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선교 준비를 거의 못했지만 현지 선교를 통해 오히려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 큰 기대감에 캄보디아로 떠났다.


Kingdom of Cambodia (캄보디아)에 가기 전까지 그 나라는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던 생소한 이름의 나라였다. 동남아시아 국가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더운 나라, 뎅기열을 전파하는 무서운 나라로만 여겼던 것 같다. 뎅기열(Dengue fever)이란 타이거 모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옮겨지는 바이러스 성 질환으로 모기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전염을 퍼뜨린다.



캄보디아 여름은 우리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게 더웠다. 고온 다습이라고 했는데, 정말 찌는 듯한 더위를 느끼며 계속 힘들어했던 기억이 여전하다. 우리 단기 선교팀은 여름성경학교로 그 지역 아이들과 함께 놀고, 준비해 간 공연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예수님에 대해 직접적으로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단기 팀으로 구성되었다. 이를테면 단기 선교사 역할을 하기 위해 그 나라를 방문한 것이었다.



크메르어를 할 수 없었기에 거리 전도는 불가능했지만 아이들과 손짓, 몸짓으로 서로 말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살면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면 언어를 뛰어넘는 경우를 자주 보아 왔는데, 그때가 정말 그랬다. 며칠 있으면서 환한 아이들 표정 너머로 그 아이들 일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아이들은 해맑았지만 동시에 그들 역사 속에 깊게 서려 있는 슬픔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그리 녹록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사역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킬링 필드 현장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참혹한 역사였고, 어떻게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런 극악무도한 학살을 저지를 수 있을까? 이해되지 않을 만큼 참혹했던 현장을 여러 곳 방문했다.


선교센터 근처에서 한 컷

캄보디아 킬링 필드(Killing Fields) 역사를 배우기 위해 뚜옹슬리엥(Tuol sleng) 정치범 수용소 건물을 방문했다. 1975년 당시 폴포트는 공산주의 기치를 내걸어 지식인 및 지식인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을 숙청하는 잔인무도한 학살을 오랫동안 자행했다.



미국 어느 대학의 조사로만 당시 공식 사망자가 140만 명이라고 했고, 농업 공산주의 국가를 지향했던 당시 정권 하에 굶어 죽은 사람 수를 합하면 총 200만~250만 명의 국민이 그 기간 동안 사망했다는 보고를 접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히틀러가 떠올랐다. 어떻게 인간이란 이렇게 잔인하고 파괴적이며 권력에 미칠 수 있단 말인가?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소시민으로서 그 삶도 중요하지만, 정치와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계기가 되는 경험이었다.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절감했던 시간이었다. 뚜올 슬리엥을 걸으면서 그 당시 갖가지 고문 방식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수많은 캄보디아인 사진을 보았다. 심지어는 안경을 쓴 것만으로 지식인에 가까운 부류로 분리되어 삶을 마감해야 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 얼토당토 하지 않는 이유로 공산주의 치하에 국민들을 잔혹하게 한 폴포트는 후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한다.



1975-79년 당시 수많은 지식인들(의사, 화가, 교사, 법률가, 연예인 등)이 무고한 상태로 죽게 된 후, 캄보디아를 이끌어 갈 지식인들이 거의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폴포트가 베트남 침공으로 도망친 이후에도 나라 재건에 커다란 어려움을 오랫동안 겪었다고 한다. 2000년도 초반 중국 다롄에 위치한 뤼순 감옥(안중근, 신채호, 박희광 등과 중국의 독립운동가들을 수감했던 감옥)에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조국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안중근 의사가 마지막 며칠을 보냈던 방을 지켜보며, 나라를 향한 애국이란 무엇인가 한참을 고민했던 순간을 맞이했었다.



인간이란 선한 측면과 악한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교육과 종교, 문화, 배려의식 등을 통해 인간 다움을 회복할 수도 있고, 도저히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인간 말종이 될 수도 있음을, 뚜옹슬리엥에서 분명하게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 캄보디아 땅에도 해외 선교사(宣師)들이 들어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태왔고 지극히 작은 영향력일지라도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아무 이유 없이 저 세상에 보내야 했던 그 아이들 마음을 꾸준히 어루만지고 위로하고 있었다. 교육과 함께 아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섬기고 있었던 모습을 보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이런 극악무도한 사건을 그저 내버려 두시는가? 수많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지나온 삶을 통해 내가 찾은 답은 이랬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다른 한 사람을 섬기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 모든 생명을 제대로 관리하도록 권한을 위임해 주셨다. 누군가를 유린하고 폭행 거짓을 일삼고, 살해하도록 내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나 한 사람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땅에 보냄을 받았으며,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결국 유산을 남기라는 사명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만났던 다섯 살 꼬마 아이가 나중에 어떻게 킬링 필드 이야기를 듣게 될까.. 아이들이 좀 더 크고 나면 킬링필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기 시작하게 되겠는가 걱정되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더 이상 킬링필드가 아니며 우리 모두에게 어렵지만, 서로 돕고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든지 살아갈만한 세상 될 수 있다는 걸 누가 알려줄 수 있겠는가?


캄보디아 어느 청소년 방에 들어가 허락을 받고 한 컷

그동안 방문했던 나라 그곳에 살고 있는 모두가 먹고사는 문제로 힘들어하며 살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벌고, 유수한 교육을 받아, 남보다 내 가족이 더 잘 살길 바라는 마음, 나와 내 가족이 잘되는 게 중요하지 다른 사람이 잘되는 말든 상관하지 않는 우리 안에 그릇된 태도에 문제가 없는가? 자문해 봐야 할 때가 왔다 믿는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현실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시편 146:9)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시편 10:14)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명기 26:12)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9)

 


성경에서는 나그네(외국인, 이방인), 고아(어떠한 사유로든 부모를 잃은 자녀들), 과부(남편을 사별한 미망인)를 보호하시고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라 말하고 있다. 외로운 사람이 주를 의지하고 있으며, 부모가 없는 어린아이를 직접 도우라 말하고 있다. 어려운 사정에 처한 이들 모두 객(외국인, 방문인)과 고아, 과부, 병든 자 모두에게 환대하라 명하셨다. 그들이 우리 공간에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면 네 손으로 하는 범사 모든 일에 복 주겠다고까지 약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선택만이 남았다



모든 사람은 연약하고 완전하지 않다. 인간 본성과 결부되어 있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신자들조차도 성경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바쁘다는 이유로 종교 생활을 한다. 성경 말씀이 내 삶 속에 체화되려면 먼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읽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모여 다 같이 성경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하는 참된 행위를 통해 예수그리스도 위대하신 삶을 배우며 자라라고 성경은 명하고 있다. 그는 머리라 칭하고 있다. 머리는 우리 모든 몸에 지시를 내리는 두뇌다. 뇌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온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처럼 자라 가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얼마나 읽고, 생각하며, 그 말씀을 사용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돌아봐야 할 때다.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 말씀의 능력을 오늘 지금 이곳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내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는 성경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믿고 이미 그 지혜를 경험했다면 이제는 말씀대로 현재 살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한다.



선교(宣敎)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함으로 그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 다른 사람들을 그 길로 초대하는 모든 행위로 귀결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결코 교세를 넓히는 데 초점이 있지 않다. 선교란 결국 가난하고, 병들었으며, 마음이 아픈 사람들, 갈피를 잡지 못해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반대쪽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다시 초대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죽기까지 자기를 내어 주신 그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객을 선대하고 킬링 필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해피 로드(happy road)로 초대하는 삶을 뜻한다. 


사원 내에서 기도에 열중하는 태국 국민들, 선교사님 사진 제공

캄보디아 가기 2년 전, 케냐에서 모든 걸 정리하고 본국으로 귀국하는 중에 태국을 경유하게 되었다. 태국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 허락되었다. 당시에는 신종인플루엔자 A (H1N1)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었고 태국을 방문했던 그때가 그 최정점에 도달한 시기였다. 태국 공항 내에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태국 공항을 벗어나도 신종플루 바이러스들이 도처에 있을 거라 조심하라 했지만, 경유하는 시간을 사용하여 태국 시티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2010년 3월까지 대한민국 사망자가 260명에 이를 정도로 당시 신종플루는 세계 각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고 태국 역시 방역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는 듯 보였다.



시티 투어 버스에 호주 사람이 옆에 앉았다. 그래서 다니는 동안 같이 다니면서 서로 말동무하면 어떻겠냐 물었다. 그는 그 신종플루 상황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맥주를 마시면서 다녔고, 시티투어가 안내해 주는 대로 이름도 모르는 사원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 다시 차를 탑승하기를 반복했다. 태국은 불교 사원이 많았던 것 같다.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치창 된 사원도 보았고, 곳곳에서 기도드리는 많은 현지인들을 보며, 불교 국가 태국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휴양지 선호도에서 매년 순위권을 다투는 나라, 자유롭고 볼만한 경관이 많은 나라, 세계 50번째로 큰 국토를 가지고 있는 나라 그 정도가 내가 아는 태국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은 신종플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고 모두가 서로를 조심하던 시기였다.



불교 사원에 들어갈 때마다 그 땅 구석구석을 밟으며 기도를 드렸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이 분들에게도 많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풍성한 삶의 원리가 얼마나 놀라운지 이 분들이 직접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용히 기도를 드리며 돌아다녔다


태국선교사님 사진 제공
간절한 염원을 담아 소원을 비는 태국인들

태국과 캄보디아를 2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동남아시아 사람들 일상을 짧게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언어와 문화, 종교가 다르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주어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생김새와 언어만 다를 뿐 인정 많고 나그네에 대해 환대하는 멋진 사람들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아프리카 케냐인들도 비슷했다. 미국에서 만난 아랍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파란 눈의 서양인들도 대부분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단지 서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기회가 없어 그런 따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우리는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만나게 되면, 사귐을 갖게 되면 금세 알아챌 수 있는 만남이 세계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865년 9월 13일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가 조선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 문명을 아직 받아들이기 전, 이 한국 땅에도 수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하고, 조선 시대를 살고 있던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워진 광혜원(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병원)도 선교사를 통해 세워진 병원이었고 조선기독교대학(=연희전문대학, 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도 여러 나라 선교사들이 건너와 건립된 교육, 의료 기관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이지 대부분 이름 모를 분들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우리 사회도 커다란 혜택을 입었다. 캄보디아, 태국뿐만 아니라 거의 전 세계에 가난하고 생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는 곳에 상황이 비슷하다.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미지의 땅을 방문하고 살게 되면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게 되고 결국 학교, 교회, 병원 등이 세워지고 있다.



빈곤한 여러 나라가 느리지만 경제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서, 새로운 문명과 조우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을 계속 확장시켜 가고 있다. 선교라는 일은 이러한 측면에서 참으로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다. 인정을 하던, 하지 않던 실제적으로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 가운데 매우 일부분, 그 상황을 악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선교란 사람을 살리고 사회와 나라를 살리는 숭고한 일인 것이다. 그 경험을 동남아시아에서 체험하며 나는 다시 한번 세상을 다르게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모든 시간에 참으로 감사하다


 



사랑하는 기쁨아, 아빠는 네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유산을 계속 남기는 삶을 살아주었으면 해


사랑은 먼저 받지 않으면 주기가 어려워.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아빠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아 늘 네게 전해주고 싶었어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사랑, 십자가에 내 한 몸 희생해서라도 사랑하는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예수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네가 알기를 바라.


배움은 있잖아. 모든 경험을 통해 배우는 거야. 기분 좋은 경험이면 더 좋겠지만, 슬프고 아픈 경험도 때로 찾아올 거야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울어져 있거든.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잘 지내게 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계속 어렵게 살아가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다는 뜻이야.


그래서 배운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무엇을 위해 배우려고 하는지가 중요해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삶, 가치 있고 의미 있지 그러나 타인을 포함하여 살아가는 삶은 어마 어마한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우울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누군가를 향해 우리가 진심을 담아 손을 내민다면 그분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마음을 열어 줄 거야


왜 내게 관심을 기울이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물어올 수 있어.


그러면 이렇게 말해줘. 나를 사랑해 주신 예수라는 분이 들려주신 그 좋은 소식을 당신께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삶을 저와 함께 계속 배워가면서, 후 세대 아이들에게 좋은 유산을 남겨주기로 해요라고 말해드려


기쁨아 지금 느리고 하는 일마다 서투르고 잘 못하고 실수한다고 해서 많이 속상한 거 아는데, 괜찮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극복하게 될 거야


너는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는 사람으로 예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거야


그 삶이 얼마나 신나는 삶인지 몰라 아빠가 매일 경험하고 있잖아 우리 모두가 경험하면서 돕고 살아가면 좋겠어. 인색하지 않게 서로를 돕고 섬기면서 범사에 성장하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라는 시 한 편 소개할게. 잘 들어봐. 예수님 마음이 이렇데

우리 기쁨 이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자기 자신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여유와 감사함이 넘치길 진심으로 바라. 사랑해 기쁨아 아주 많이~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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