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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Jun 14. 2024

28화_먼 나라이웃나라_대만 _세계시민6_Busking

K-POP 대한 국민, 대만버스킹에 함께했던 추억, 다시 가고 싶은 대만

타이베이 위엔샨 전철 역. 대만 가수 버스킹 목소리 들으며 한참 여유롭게 즐기다 찍은 사진, 내가 선택한 버스킹 곡은 CCM 은혜 (손경민 작곡)1-2절까지 부르고 내려온 날


대만 

Taiwan (대만), Repulic of China (중화민국)

* 아시아 최장수 공화국
* 인구 : 2,357만 명 (2020년 기준)
* 1912년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 대전 승리 이후 건국 선포
* 대만 : 16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 수도 : 타이베이
* 대도시 : 타이중, 가오슝, 타이난, 지룽 등
* 국경 : 타이완섬, 푸젠성 진마 지구 포함(면적 36,197 km2)
* 통화 : 신타이완 달러
* 유명음식 : 펑리수, 취두부, 우육면, 굴 오믈렛, 망고 빙수, 밀크티 등
* 언어 : 중국어(공용어), 민난어(대만 방언), 객가어(중국 남방지역 방언)
* 온천이 유명한 나라
* 기후 : 아열대성 해양기후(여름 33℃, 겨울 13℃ 평균)
* 종교 : 불교 : 약 35%, 도교 약 33%, 무종교 : 약 27%, 기독교 : 약 4% 등
사랑하는 기쁨이
아빠의 자랑, 아빠의 기도제목
아빠를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보석 같은 인생 손님
평생 손님
네게 많은 사랑의 빚을 졌어
아빠가 나눈 사랑 이상으로 늘 나를 바라봐 주고, 꼭 껴안아 주었지
대롱대롱 매달리면 열매처럼 한참 달려있는 너
업어줄 때마다 아빠가 제일 좋다 말해주는 너
아빠 두 눈과 네 눈이 마주쳐 한참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아빠는 네 눈빛 깊은 사랑의 눈망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 본단다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아빠가 최고예요
아빠는 예뻐요
 아빠 100점

그런데

 엄마 다음으로 제일 좋아
하면
아빠 대답은 그래도 좋아, 만족해
네 사랑에 감사해 직접 표현해 줘서 고마워
늘 네가 건네는 말들이 따뜻하고 재미있었고 의미 깊었어
10년의 모진 고난 속에서 여태껏 너무 잘 자라주었어
 우리 둘이 이번 주 재활 병원 같이 가기로 약속했었지
 넌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많이 안아 줄 거야
네 심장고동소리 느낄 수 있도록 꼭 안아줄 거야
 한 참 안은 채로 놓아주지 않을 거야
아빠 답답해 놔줘 할 때까지 안아 줄 거야

네 심장에 내 전기 통할 때까지
그래서 그 사랑에 우리 둘 모두 감전될 때까지
그렇게 꼭 안아줄 거야

 사랑해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해


아빠가 이번엔 작년 5월에 다녀왔던 대만 이야기를 해줄 거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people)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거야

 사귐이 누림 되는 삶, 만남이 축복되는 이야기를 해줄 거야

너도 미래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날 수 있도록
아빠가 계속 가이드해 줄게 아빠 믿고 따라와!

자 다시 눈을 감아봐
작년 5월 어느 날로 함께 여행 떠나자
몇 년 지나면 이제 우리 둘 같이 여러 나라 돌아다니게 될 거야
 우리 셋 함께 지구촌 다니게 될 거야

아빠가 너를 데리고 온 세상 구석구석을 다닐 거거든
네 건강이 허락한다면 말이야
그럴 수 있다면 꼭 그런 추억을 직접 만들어 주고 싶어
신나는 여행이 될 거야
온갖 추억으로 가득한 여행 될 거야
기대해도 좋아, 많이 기대하고 기다리면 좋겠어
지금은 치료에 집중하자  
온몸과 마음이 잘 치료되도록 노력하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자
심호흡 한 번 깊게 들여 마셔, 이제 타임머신 출발하니까


지난 15년 가까이 회사원으로 살아왔다. 자의 반, 타의 반 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지만 15년이란 세월은 쏜살같이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다시 서울에서 청주로, 또다시 서울로 돌아와 정착하는 단계를 거쳤다. 그간 여러 회사를 이동했다. 여러 산업을 두루 거칠 수 있었다. 보험, 전자, 식품, 생활용품, 유통업종을 짧고 긴 시간을 통해 거쳐왔다.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일이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그 함축적 의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많은 환경과 조우했다. 돌아보니 모든 시간에 깊은 의미가 었다. 많은 시간 부족한 나를 발견하면서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컸다. 나름의 최선을 기울였지만 설정해 놓은 목표에 못 미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가진 능력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2023년 봄, 손가락만 움직여도 어깨가 빠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팔 어디쯤, 어느 신경 가닥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을 때였다. 어깨를 살짝만 움직여도 팔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처음엔 오른팔에 이어진 어깨만 그러더니, 왼쪽까지 동일한 증세가 나타났다. 목디스크에 이은 또 다른 형태의 커다란 통증이었다. 진단 결과, 동결건, 흔히 말하는 오십견이 심한 상태였다. 쏟아지는 일을 해야 하는데, 과한 피로감 속에 어깨와 팔, 손가락까지 통증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회사와 긴급하게 협의를 했다.



육아휴직이 가능했다. 병가의 형태를 띤 갑작스러운 육아휴직을 냈다. 기간은 두 달, 그것도 원래는 한 달만 가능한 상황에서 도저히 한 달 치료로 되지 않을 것 같아, 설득에 설득을 거쳐 어렵게 두 달 병가를 냈다. 마음이 힘들었다. 최선을 다하는 내 노력과 별개로 몸은 받쳐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마음에 우울감이 찾아왔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에 온몸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기도 했기 때문에 동네 병원에서 건강 검진도 간략하게 받아 보았다. 그 어느 날 검진에서 심장에 무리가 가고 있는 징후도 포착되었다. 전에 없었던 증상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몸이 많이 고달팠나 보다 싶었다.



병가를 내고, 두 달간 오십견 치료를 성실하게 받았다. 체외 충격파와 물리치료, 치료사 선생님과 상담을 통한 적절한 보완 치료를 병행했다. 40 대인만큼 사십견인데, 심한 편이라 했다. 원래 몸이 약한 것일 수도 있고, 십 년 이상 오랜 업무로 무리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했다.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한쪽 마음이 허했다. 병가를 내기 전, 심리 상담을 받고 싶은 니즈가 강하게 있었다. 나를 모르는 상담가와 만나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내 지친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게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재활하는 아들과 그 아들 돌보느라 자기 아픈 곳은 제대로 신경 쓰지도 못한 채 살아오고 있는 아내 생각에, 쉬어야 할 때도 쉬지 못하고 달려왔던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병가 시작 주에 맞춰서 신기할 만큼 상담 일정도 들어맞게 되었다. 개인 상담과 집단 심리 프로그램 두 개에 동시에 응시했는데, 감사하게도 내 병가와 딱 맞춰 일정이 허락되었다. 확률 상 매우 어려운 일이 수개월 기다림 에 톱니바퀴 맞물리듯 딱 그때 찾아오는 지켜보면서, 또 한 번 깊이 깨달았다.


내 모든 삶을 주님이 운행하시는구나.

내 기도에 이렇게 성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상담을 통해 마음과 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내 생각이 아닌 몸에 필요에 반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생각으로 생각을 잡을 수 없다는 그 누군가의 말처럼, 생각이 아닌 내 몸을 느끼는 시간을 통해 깊은 호흡을 하고, 가만히 앉아 그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내 온몸을 구석구석 느껴 보는 연습을 했다. 의미 있었던 상담을 10회가량 받았다.



8회 집단 프로그램에서는 호흡과 더불어, 긍정 심리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나와 다른 여러 명의 참가자들도 어려움을 겪다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존재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활동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참 좋은 분들을 그룹 안에서 만나, 지난 1년 간 서로의 근황을 가끔 물어가며 여전히 서로를 기억하며 지내고 있다. 만남이란 이렇게 소중한 것이다.



병가 시작 후 책을 원 없이 읽었다. 목마름이 심했던 만큼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빨려 오는 대로 활자를 마셨다. 병가 동안 대략 20~30권 정도 읽었던 것 같다. 대만을 갈 때도 책 2권을 챙겨서 갔으니까, 한 마디로 나는 책벌레와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2주쯤 시간이 흘렀다. 육아 휴직 동안 해외여행을 한 번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아침 여행지를 물색하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일본, 동남아 등지를 살펴보다, 대만이 눈에 쏙 들어왔다. 중국을 네 번 다녀왔지만, 바로 옆 대만은 가본 적이 없었다.


여보, 나 내일 대만 가도 돼요
뭐라고요? 내일 대만에? 갈 수 있는 비행기 표가 있어요?
응, 자기가 허락해 주면 바로 티켓 사면 돼요
누가 샀다가 취소했나 봐, 나와 있는 표가 있네요
며칠 다녀올 건데요?
음.. 7박 8일?
호호호, 당황스럽군 역시 기쁨 아빠
조심히 다녀와요
기쁨이 혼자 돌보는 거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내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그간 힘들었던 몸과 마음 회복하고 와요
좋은 시간 되기를 기쁨이 와 매일 기도해 줄게
고마워요. 내 사랑. 그럼 나 표 바로 산다
히히히 신난다


철없는 웃음소리였지만, 그 방법을 실천함에 따라 내게 어떤 회복이 따라올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아내와 아들만 생각해 오느라 헌신했던 지난 몇 년에 대한 보상으로 이번만큼은 나를 위해 오롯이 시간을 쓰고 싶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표를 구매하고 다음 날 대만 비행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 대만어도 모르고, 중국말도 할 줄 몰랐지만, 가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안되면 영어로 대화하고, 그것도 안되면 손짓발짓으로 대화하지 뭐~


출발 전일 저녁, 대만에 계신 선교사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저 내일 대만 갑니다. 혹시 며칠 후에 방문드려도 괜찮을까요?


당황스러우셨겠지만, 흔쾌히 오케이 대답해 주었다.


놀러 와! 같이 시간도 보내고 대화도 많이 하자! 네 알겠습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 덕분에 누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대만을 향해 가는 내내 줄곧 기쁨으로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가 대만에 가서 만나는 그 모든 만남에 기름 부어 주세요.
그 모든 만남 가운데 커다란 기쁨을 선물로 허락해 주세요



만남(connecting)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힘을 내라 하고(이사야 41:6)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대만에 가는 그 몇 시간, 잠시 잠깐 비행기 바깥을 바라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기도를 드렸다.

성령님, 그곳에 가서 만나는 모든 만남 속에 함께 해 주세요. 당신을 제 삶 속으로 오늘 다시 한번 초청합니다. 저란 사람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아시지요. 그 모든 시간을 기대하며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드디어 대만에 도착했다. 유심칩을 바꿔 끼고, 이해할 수 없는 한자어 사이에 있는 영문 글자를 읽어가며, 핸드폰 번역 기능을 참고했다 그렇게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로 들어갔다. 타지에 홀로 여행을 간다는 것, 아무 도움 없이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 나가며 여행의 이유를 찾아가는 것, 그 모든 시간에 커다란 기쁨이 있었다. 아내와 기쁨 이에게 이 모든 시간을 그대로 보여 주고 싶어 수시로 영상 전화를 걸어, 다니는 거리, 만나는 사람들, 행복했던 시간을 보여주고, 대화했다 그렇게 기록하고 소중한 순간을 남겨 놓았다.


7박 8일 동안 2~3일 간격으로 이동 계획을 짰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전-여수 코스라고 하면 될까, 타이베이에서 타이쫑으로 다시 까오숑 이동 코스를 짰다. 거기에 맞춰 숙박을 정하고, 하루가 지 않아 갑작스러운 출발을 했다. 데이터 분석가로 일 하던 경험 덕분이었을까? 데이터를 보고 정리하는 기술이 점차 늘어가는 상황에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타이완 지도

이번 여행 콘셉트는 만남과 사귐, 그리고 여유 속에 바라보는 자연이었다.


7박 8일 동안 단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유 없이 다니지도 않았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데로 다녔다.


일단 타이베이 지하철 정기권을 구매했다. 48시간 이용권을 구매해 이틀 내내, 돌아다녔다. 주요 거점 동네는 모두 방문하는 게 목표였다. 아주 짧은 시간 인터넷으로 대만 정보를 확인하면서 찍어 두었던 몇 군데는 필히 방문하겠다 목표를 세웠고, 그에 따라 하나하나 도장 깨기 챌린지를 진행하였다.



타이베이는 매력적인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서울과 느낌이 사뭇 다르지만, 뭔가 비슷한 구석도 있어 보였다. 대도시에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캄보디아, 태국에서 마주했던 그 장면 중에 하나가 그대로 재현되는 부분도 있었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 인구밀집 특성이 한몫을 한 것 같은데, 거리에는 정말 수백 대에 오토바이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어딜 가나 오토바이가 가득했고, 수많은 여성들이 오토바이를 너무나 멋지게 운전하며 다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주로 오토바이 무리는 자동차 맨 앞으로 모여, 군집을 이뤄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는 듯 보였다. 교통 신호가 바뀌면 맨 앞에 모여 있는 수십대 오토바이 무리가 맨 먼저 출발을 하는 모습이 색다르면서, 그 방식이 지혜롭게 여겨졌다.  



첫날 무계획 속에서 타이베이 시내를 몇 시간 동안 걸어 다녔다. 섭씨 35도는 족히 넘었던 것 같은데 땀에 흠뻑 젖어 가며,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는 심정으로, 지도 한 장만 펴고, 3시간 정도 계속 걷고 또 걸었다. 시장도 들어가 보고, 지하철 역 근처에 서성 거리다가 지나가는 대학생들과 대화도 나눠 보았다. 대만 청년들은 과연 행복할까? 청년 세대들의 의식과 그들의 애환은 무엇일지 무척 궁금했다. 그들과 깊은 대화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공원을 다니고 벤치에 앉아 멍 떼리는 시간도 가졌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집에 있었는데, 단 하루 만에 대만 한복판에서 걷고 다니는 이 모든 시간이 은혜롭게 여겨졌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은혜의 단비가 내 몸에 내리는 듯하여 시종일관 기분 좋았다. 지나가던 남학생에게 길을 물었다. 길을 물은 김에, 자기소개를 하고, 그 친구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방향 길을 20분 남짓 걸어 다니면서 대만과 한국에 대해 궁금한 점을 서로 대화로 주고받았다.  


대만 대학생 20분동안 같이 걸어다니며 이야기 꽃 피운 청년


걷는 중에 여러 좋은 관광지를 소개받았다. 고마움 마음을 건네며 악수를 나누고 그렇게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오래 걷다 보니 어느덧 처음 출발지에서 5km는 벗어난 상황이었다. 그렇게 대만 타이베이 유명 관광지를 방문했다. 거기에서 미국 친구를 알게 되고, 두세 시간 함께 동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아시아를 순회 여행하고 있었는데, 대만이 몇 번째 국가라 했고, 그다음으로 한국 서울을 방문할 꺼라 했다.


중정기념당을 거쳐 용산사(龍山寺, 룽산쓰) 사원을 함께 다녔다. 그를 통해 대만의 아픈 역사를 자세히 듣게 되었다. 장제스(장개석, 본명 장중정) 총통이 대만 발전에 공헌한 부분이 있는 동시에 그가 숙청한 많은 사람들, 반체제 사람들을 포함한 역사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비로소 중정기념관에 중정이 장개석 기념관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이해할 수 되었다. 왜 이 기념관을 세워 그를 기념하고 있는 것인지 복잡한 속내가 있어 보였다. 역사란 무엇인가 E.H 카를 읽던 시절이 떠올랐다



미국인 친구를 통해 듣는 아시아 역사 강의, 대만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아픈 역사를 듣는 시간이 마음에 송곳을 찌르듯 아프게 느껴졌. 그러나 대만의 역사, 문화, 언어, 종교를 이해해야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되는 소중한 만남이 되었다. 미국 친구를 통해 지난 1년 여전히 대만을 추억하며 다음에 언제 이곳을 방문할지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 중이다.



타이베이 101, 호화스럽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너무 좋았다

대만 야경이 예쁘다는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었다. 타이베이 101은 필수적으로 들려야 하는 곳이라 했고, 현대적이면서도 대만 스러운 특색 있는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야간에는 타이베이 101을 방문했다. 그 건물을 멀리서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해서 샹산(코끼리 산) 꼭대기까지 수많은 돌계단을 오르고 오르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만날 또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놓고 기도하면서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 샹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어서이겠지. 그러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무언가에 쫓겨서 다니는 여행은 아니었다.

샹산(코끼리 산) 중턱에서 만난 한국 가족들, 얼마나 반갑던지 대화를 안 할 수 없었다


타이중은 대만 중간쯤에 있는 나름 규모가 있는 도시라 했다. 타이중에 머무는 중에는 주로 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며 계속 기도를 드렸다. 이번 여행은 힐링 여행, 주님과 대화하는 혼자만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7박 8일 중 5일 혼자 있는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하루 종일 입술을 중얼거리며 걷고 또 걸었다. 마음에 가면 전철에서 내려 그 지역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았다. 호수도 가고, 바다도 가고, 부두에도 갔다. 그곳에 앉아 한참 대만 무명 가수의 기타 반주를 들으며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쉬었다.


쉼이란 사람을 살리는 숨을 불어넣는 작용을 한다.


대만이라는 섬에 들어가, 숨을 쉬고, 쉼을 얻는 숨, 섬, 쉼 세 글자가 내 마음을 지켜주었다


내 몸을 편안하게 했다


개인 상담, 집단 상담 프로그램 담당자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한 번을 빠졌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7일간 얼마나 찬양을 많이 부르고 다녔는지 모른다. 구글맵을 통해 어디든 지역 위치를 금방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첨단 문명 속에 살아가는 혜택을 고스란히 얻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마다, 이 시대 가운데 태어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다 주님께 고백드렸다.


샹산에서 멀리 보이는 타이베이 101 모습,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가끔 드리는 기도 제목이 있다.

주님, 제 삶이 꽃보다 아름답게 해 주세요. 꽃보다 예쁜 인생 살다 가게 해주세요

기도는 노래되어, 작은 입술을 채우고, 걸어 다니는 곳마다 보이는 꽃과 나무, 새와 하늘은 내 마음을 감동케 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대만에 있는 일주일 동안 나는 참 많이 울고 웃었다. 홀로 있을 때는 기도하느라 울면서 다닌 시간이 많았고 선교사님과 대만 사람들과 있을 때는 재미있고 즐거워서 계속 웃고 또 웃었다.


타이중에 있는 동안, 예쁜 독서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작은 이젤이었는데, 거기에 책을 올려놓고 있는 모습이 이뻐 보여, 저거 하나 갖고 싶단 생각을 했다. 숙소 직원들에게 쓰고 있는 저 이젤을 내게 팔 수 있냐 물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해야 했기에, 이젤을 한국 땅에 가져가고 싶은 마음도 포기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대만에 있는 동안 국내 온라인 마켓 여러 곳을 뒤졌지만 똑같은 모양을 결국 찾지 못해, 대만 어디에 있던 찾아가서 꼭 사 가야겠다 결심했다.



타이중에 있는 동안 누구 하나 만날 사람 없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빗길을 뚫고 다니며, 여러 서점, 문구점, 미술작업실 등을 수소문 가며 계속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동일 모델은 없었다. 일단 타이베이로 돌아가기까지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거기에 매여 있을 이유가 없었다


타이중 숙소에서 만난 이젤 예쁘죠

타이중에서는 주로 한국에서 들고 간 책을 읽었다. 계속 외부에는 빗소리가 들려왔고 어딜 돌아다니기 어려웠지만, 중간중간 비가 그치기도 했다. 밤에는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한국에서도 하지 않는 야식을 먹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대만어를 알아듣는 것처럼 하면서, 대만 식당 가게 아주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손으로 고르고 골랐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선 손과 얼굴 표정이 모든 걸 대신해 주었다. 재미있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까오숑은 대만 지도상에 왼쪽에 위치한 큰 도시다. 대만에서 규모면으로 세 번째로 큰 대도시에 속하였고, 대만에서 가장 큰 항구가 있는 대표적인 항구 도시였다. 홍콩, 싱가포르, 다음으로 커다란 컨테이너 항구 도시라 했다. 드디어 선교사님과 해후를 했다. 온화한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교사님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선교사님이 일하는 곳에 방문해 구체적인 사역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현지인들을 소개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특별히 청년들과 즐거운 대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의 은혜가 한량없었다

주님은 언제나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성실하신 하나님이셨다


내 평생 사는 동안 주 찬양하리

여호와 하나님 내 주를 찬양하리

주님을 묵상함이 즐겁도다

내 영혼 주 안에서 참 기쁘리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제이어스 찬양 가사)


선교사님과 한컷, 우측은 야시장
대만 선교사님 교회 청년들과 환담의 시간, 그 옆에는 30인이 묶을 수 있는 호스텔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


청년들 개개인과 30분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대만의 청년들에 대해 묻고 또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대만 청년들 마음속에 심겨있는 신앙에 대해 들으며 나라, 민족, 언어, 문화, 생활권이 달라도 같은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공통분모가 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대만 청년들은 모두 나를 반겨주었고, 그중 두 세명과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매우 감사하고도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밤늦은 시간까지 나를 배려해 주신 선교사님 덕분에 가오슝에서 융숭한 대접도 받고, 삶과 죽음, 신앙에 대해 치열하게 대화할 수 있는 가슴 벅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 하나 특별한 일이 있었는데 숙소에 와서 프랑스 친구 한 명을 알게 되면서, 프랑스 지역에 대해 구글맵을 통해 하나하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는 대만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친구였고 당시에는 지방 여행 중이라 했다. 그 친구와 이틀 밤 대화를 나누면서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어느 지역을 가야 하는지, 그곳에 가면 왜 좋은지 조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대중목욕탕 시설을 갖춘 곳이어서 온몸에 쌓인 피로를 밤마다 풀 수 있어 또 좋았다.


 



대만 땅끝마을에 가게 되었다. 켄팅 국립공원은 지상낙원과 같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 일색이었다.



대만에 사는 사람들도 많이 못 가본 곳에 방문할 수 있었던 은혜를 선물 받았다

어느덧 지치고 상해있던 내 몸과 마음은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고 놀라운 시간이었다. 날아다니는 새와 초록 나무들, 잔잔하게 불어오는 살랑바람,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라는 찬양이 절로 나오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초록에 잠겨 나는 내 영혼을 충분히 어루만지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그곳에서 까오숑 교회에서 만난 청년 부부와 재회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며칠 전 만난 커플을 다른 지방에서 만난다는 것이 어찌 쉬울까? 몇백만 분의 확률이 아닐까? 내가 그와 그녀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더라면 우리들은 보았어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만남의 축복이란 이런 것이었다.


사귐은 누림이 되고 있었고 만남은 그렇게 예쁜 꽃을 피워 향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켄팅공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 부부를 다시 만날 날이 또 올 것만 같다. 그때는 대만어로 그들에게 인사해야지. 그리고 대만어로 나의 고마움을 전달해 주어야겠다

땅끝 마을 땅끝 바다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왔다. 가오슝-타이중-타이베이 열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며칠간 베풀어 주신 은혜의 시간, 한 명 한 명과의 만남을 추억하며 짧은 메모 형식으로 계속 일기를 써 내려갔다. 지나가면 그때마다 받은 감흥을 잊을세라 적고 또 적었다.


마지막 이틀을 어떻게 보내는 게 가장 좋을까요? 주님
주님은 저에게 또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으신가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고독한 시간 속에 답이 있었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주님께 말을 걸려 애썼고, 그분은 온갖 만물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처음 타이베이 시내 도착 후 정기권을 구매해 거의 모든 노선을 타고 다니며 마음 가는 곳마다 내렸다. 마찬가지로 까오숑에서 돌아간 이후로도 정기권을 구매했다.


까오숑에 가기 전 일이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가 이엔샨 전철역을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하가 아닌 지상을 지날 때였고 바깥 경관이 보기 좋았다. 위안샨에 내려서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어딜 가나 포근한 느낌이 친근한 타이베이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생각 속에 머물다가 눈앞에 버스킹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잘생긴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 기타 연주도 훌륭했던 가수 한 명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 역시 그곳에 가만히 서서 20분 넘게 그 가수의 음성을 타고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감미롭고 편안한 목소리가 귓가를 계속 간지럽혔다. 따뜻한 공기 위에 어느덧 녹아내린 맛 좋은 치즈 같이 달콤하고 쉼을 갖게 하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데, 마음속으로 이 모든 관객 분들에게 내가 노래를 들려주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분위기가 이미 너무 진지해져 있었고 괜한 방해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ㅎ혹시 몰라 성령님께 말을 걸었다.


주님, 제가 이곳에서 노래해도 될까요? 이 분들에게 한국 사람으로서 제 자신을 소개하고 짧게 찬양을 불러 드려도 될까요?

주님이 곡을 정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할게요.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서도 한 10분을 서성거렸다. 분위기 좋은 공연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게 맞는 건지, 혹여나 불편한 느낌을 주면 안 되는데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다시 기도를 드렸다. 조용히 전철 계단에 앉아 기도드렸다. 이윽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다면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대만 가수가 공연을 하는 중에 쉬는 시간 갖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대만 가수 음악이 멈추고, 그는 오랜만에 목을 축였다. 옆에 서 있던 나는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물론 영어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왔고,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한 곡을 대만인들 앞에서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느냐 정중하게 물어봤다. 그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고,  20~30명 남짓 되는 되는 관객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나는 한국 CCM 곡 중 은혜(손경민 곡)라는 곡을 부르겠다 말했고 MR을 가장 크게 해 놓은 상태에서 마이크에 음악이 나오도록 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1절, 2절까지 다 부르고 조용히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가려 했지만, 그가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방금 부른 곡에 대한 설명과 노래 부르면서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해 달라 말해주었다.


안녕하세요 K-POP 나라 한국에서 온 현재라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많은 음악을 들으며 자랐지만, 이 곡이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곡이고
그 메시지가 정말 좋아서 많은 곡 중에 이 곡, CCM 은혜라는 곡을 선택 후 여러분들 앞에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고, 이 곡은 유튜브를 통해 언제든 찾아 들을 수 있는 곡이니, 여러 분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이 곡을 꼭 들어주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 각자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은혜 (손경민)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버스킹에 워낙 몰입하느라,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음성으로 크게 노래를 불렀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주위로 모여들었고, 대만어가 아닌 한국어 음성을 개중에는 알아채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만에서도 K-POP 이 인기라고 했다. 물론 팝(POP)을 들려주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 있던 그들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에 아쉬움 없이 잔잔한 박수를 받고 내려올 수 있었다.



은혜 아닌 게 무엇이랴. 스승의 은혜, 부모의 은혜, 자연의 은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환경 속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아도 혜택을 입어왔다. 내가 만들지 않으면 입을 수 없는 옷을 누군가가 만들었고, 내가 재배하지 않았던 농작물을 누군가의 수고로 수확해 먹게 되었다. 비행기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다른 나라를 이렇게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을 것이다.



은혜라는 단어는 때로는 종교적인 의미를 뛰어넘는 보다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노력해서 만들어 낸 결과를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쓰는 경우가 많지만, 그 또한 은혜를 입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날 대만 사람들, 특별히 청년들 앞에서 내가 노래를 했던 이유는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있을 상처와 아픔이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만 해결될 수 있다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다음과 같다.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4~5)


대만인들이 내 노래를 즐겁게 들어주고, 잔잔하게 박수를 치는 가운데 목례를 하고 나는 다시 다음 전철 정거장으로 떠났다. 그리고 결국 타이베이를 떠나기 전 원하는 이젤을 결국 찾아 2시간 가까이 버스를 홀로 타고 어느 미술상에 가서, 원하는 그 이젤을 찾아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비록 병가를 통해 가게 된 여행이었지만, 그 안에서 소중한 경험을 끝없이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추억에 남는 사진을 남겼다.


독일, 프랑스, 미국, 필리핀, 일본, 한국 사람들을 만났고,

그 모든 사람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에 잇닿았다. 나의 아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슬픔 가운데 입었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입혀 주신 그 주님을 대만에서도 만났다. 너무나 감사했던 것은 까오숑에 있는 며칠 동안 저녁마다 들어간 뜨거운 대중목욕탕에서 오십견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실제적인 시간이 예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더욱더 확신할 수 있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편 30:11)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그를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언 8:17)


기쁨아 짧게 전해주고 싶은 소식이 있어 이번 8월에는 대만으로 엄마가 갈꺼야


아빠가 경험한 따스했던 추억 여행을 이번에 엄마가 경험할 차례야


네 엄마 지난 1년 너 돌보느라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했거든


사랑하는 만큼 무리를 했던거야


그래서 이번에 엄마가 쉼을 가지러 떠나라 했어


가장 기쁜 일을 함으로써 몸도 마음도 쉬고


선교하며 기쁜 깊게 들이 마시고 올꺼야


다음은 누구차례! 바로 우리 기쁨이 차례야


드디어 찾았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사귐은 누림이 됩니다


P.S 개인사정으로 연재를 하루 당겼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힘든 한 주 살아내시느라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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