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내 눈에 보일 때 그제야 아픔이 된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분을 추억하며 씁니다 아픔이 회복, 치유가 되길 바라며

by 아헤브

코로나가 발생하기 이전,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법적인 이동 제한은 낯설고 생소한 단어였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움직이고 숨 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누군가에게는 그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불가한 일이었다.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은 구석진 곳에는 여전히 이 모든 게 당연하지 않은 수많은 아픔이 존재하고 있었다.


병원에 가면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잠시 이동하고 싶어도, 병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이들은 심신안정, 수술이나 재활, 입원 상황을 이유로 기약 없이 오래 한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병원 허락 없이는 외부를 나가서는 안되며 이를 어길 시 강제 퇴원 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사전경고를 미리 받는다.


수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갈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집에 머무르고 있다. 무릎이 아프거나 허리가 아파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노인인 경우가 많으나 아직 돌배기 아기도 그런 경우가 있다. 생명 유지 장치 때문에 외출이 애초에 불가능한 경우도 적잖은 경우로 있을 수 있다. 치매 증상이 있어 동행 없이는 외부 출입이 불가한 부모님도, 각종 의료기기를 착용하고 있어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오래 누워 있는 경우도 있다.


그분들은 거리에도 있다.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둔턱을 이동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이 일상인 이들이 있다. 힘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변화되지 않는 답답한 환경 속에서 이동에 커다란 제약을 받고 살고 있으나 변화되지 않은 세월을 그대로 견뎌야만 하는 경우를 맞이한다. 언덕을 오르는 것도 내리막을 향하는 것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흰 지팡이를 짚고 홀로 길을 걷는 시각장애인들도, 검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이동하는 노인들도 거리 곳곳에 보인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미는 할머니들 역시 눈앞을 스치듯 지나가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접한다.


지하철 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칠십 대 노모가 정신 장애로 이동에 커다란 제약을 받는 아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게 되는 날도 있다. 무거운 짐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노모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50대 자녀를 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가녀린 체구의 노모 뒷모습이 더욱 처량해 보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픔이 내 눈에 보일 때, 그제야 아픔이 된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다만 우리가 지각하기 위해서 마음을 조금 더 써야 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보기 위해서는 흩어져 있는 마음을 한 데로 모아야 한다.


코로나가 오기 직전 해, 한여름 지하철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짜증이 역력했다. 누군가 제 어깨에 옷깃이 스치는 것마저 불쾌하게 여기는 때였다. 지하철 한편에 서서 조용히 책 한 권을 읽고 있던 내게, 어느 노모와 체구가 큰 오십 대 초반 아들 한 명이 눈에 아른거렸다. 노모께서는 이따금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고, 아들은 시종일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사정일까. 어떤 일이 있던 걸까? 칠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모는 신경질을 내며 한껏 곤두서 있는 아들을 진정시키느라 여러모로 힘을 쓰고 계셨고, 아들은 시종일관 불안해 보였다. 가끔씩 큰소리를 내는 아들을 보며, 그를 돌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여겨졌다. 그럼에도 노모는 여전히 한쪽 팔에 무거운 짐을 땅에 내려놓지 못하고 계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3개월-6개월마다 재활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으로 오랜 시절 이동 자체에 커다란 피로감을 느끼던 내게 누군가 이동하는 데 커다란 불편함을 겪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 언제든 내가 그 형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고 노모께 다가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자초지종을 묻고 어디까지 가시는지 재차 여쭤보았다. 우리는 하나하나 대화를 이어나가며, 금세 친근해질 수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지하철에서 내려 함께 환승을 했다. 그 분의 댁까지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노모의 반대편 쪽에 서서 아들의 나머지 팔을 감싸 안았다. 얼마 후면 여든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복합장애로 힘들어하는 아들 만을 시종일관 생각하며 말을 이어나가셨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우리는 마침내 어느 골목길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집 앞이라며 가도 좋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눈에는 구슬픈 감정이 짙게 서려 있었다. 꼭 내 어머니 같아서 너무나 속이 상하고 슬프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 감정을 애써 감추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서른 후반의 막내아들 같은 내게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그러지 마시라고 연거푸 말씀드리는 데도 그분은 함께 동행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며, 매주 같은 요일에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다는 표현을 하셨다. 그래도 오늘 집에 오는 길은 참 수월했다고 말씀하셨다.


이후로 다시 그분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여전히 지하철 문이 열릴 때면 종종 그분들이 들어오시진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경우가 있다. 경황이 없어 전화번호까지 받을 생각을 못한 게 크게 아쉬울 만큼 그날의 만남은 겨울 군불의 군고구마와 같이 달콤하게 남았다. 그날, 그분들과 헤어지고 나는 한 참을 어두컴컴한 골목에 가로등 근처에 머물러 있다가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겪었을 노모의 고통이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분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남모를 속앓이를 얼마나 오래 묵혀 두셨을까?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우셨을까.. 자신이 이 땅을 떠나면 홀로 남게 될 오십 넘는 아들을 두고 그분은 아마도 쉽게 이 땅을 떠나시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다. 헤어지며 환하게 웃어 주시던 그 정다운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아픔이 내 눈에 보일 때 그제야 아픔이 된다. 그 아픔이 보이면, 아픔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그의 아픔과 나의 아픔이 만날 때 그곳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의 길이 마침내 열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홀로 누군가를 돌보거나, 아무도 없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봐야 하는 아픈 이들이 많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그 이웃은 아프다. 동시에 우리 역시도 아픈 구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이제는 우리가 또 다른 아픔을 만날 때 커다란 용기를 가지길 바란다. 그에게 날 보낼 용기를 가지고, 아픔이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는 꿈을 꾸기를 바란다. 말그대로 아픔이 치유가 되고 온전한 회복이 되기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g5QjABE4y0A&list=RDg5QjABE4y0A&index=2

출처: 유튜브 채널: 다윗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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