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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Apr 22. 2024

13화_노숙자(homeless)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기쁨이가 날마다 먹길 바라 너를 만족케 하실 거야

노숙자 1년 새 12% 증가… 미국 노숙자는 몇 명?

[특파원 리포트] 미국 노숙자 65만 명+∝ 주택도시개발부 자료에 따르면 , 미국 내 노숙자는 65만 3천여 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2%(약 7만 명)가 늘었습니다. 노숙자수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다가 오히려 팬데믹을 기준으로 감소했는데요. 바이든 정부가 엄청난 돈을 풀어 미국 구조 계획(APR)을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돈의 많은 부분을 임시거처를 마련해 주거나 강제 퇴거를 막는 보조금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러한 ARP 중 다수가 기한이 만료되거나 축소되면서 노숙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47420]
황동진 기자, 노숙자 1년 새 12% 증가… 미국 노숙자는 몇 명? [특파원 리포트], kbs 뉴스, 2023.12.21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현재라고 합니다. 대학교 2학년 학생이고요.
아까부터 어르신께서 이곳에 홀로 앉아 계신 것 보고,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틈을 엿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 걸었습니다
뭐라고? 나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야!
다른 건 아니고, 먼저 제가 준비해 온 빵을 좀 나눠 드리고 싶어서요.
이거 먼저 드세요. 허기 달래시고 저랑 잠시 이야기 좀 나눠요
...
아저씨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된 거예요?
사연이 있지. 근데 사연을 다 말하기엔 너무 길어.
모든 게 망하고 나서 희망을 잃게 되었어
어디 내 마음을 둘 곳 없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야





이해되지 않은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고,

해결되어 정리된 충격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흔적으로 남는다


종이 한 장 차이었다.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와 스티그마(외상의 흔적)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했다


이해되고 정리되어 상처가 아문 충격은 흔적으로 남는다 여전히 너무 아픈 기억을 갖고 있으나 더 이상 그것이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내 마음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 이상은 아니라고, 나는 너를 거부한다 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은 충격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밤낮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눈을 질끈 감아도 아무 소용없다 아무리 잠을 청하려 해도 정신이 더욱 또렷해질 뿐이다


아직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팠기 때문이다

이미 곪을 대로 곪아 나 혼자로는 짐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갑자기 떠나게 된다.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걸 한순간 놔버린다

모든 인연을 끊게 된다. 홀로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미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서 그렇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를 치료해 주는 그 무엇, 누군가가 필요하다. 인정하기 싫어도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리 애써도 혼자 힘으로 사태 해결이 안 되는 걸 알고 나면, 우리는 그 해결책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믿고 나를 맡길 만한 대상,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최종적으로 그를 선택한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burden)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짐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짐이 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load)을 질 것이라 (갈라디아서 6:4-5)


첫 번째 짐(burden)이다 이 짐은 내가 짊어질 필요가 없는 짐이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게 완전히 맡겨야 하는 짐이다. 내 짐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기대고 의지해야 더 이상 마음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 그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대상, 변함이 없는 대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배신을 당하게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불안함 속에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 만약 배신 당하기라도 한다면 너무 아파 다시는 누군가를 믿지 않게 된다. 따라서 영혼을 다 맡길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게 이 짐(burden)을 맡겨야 한다.


두 번째 짐(load)이 있다. 이 짐은 내가 짊어져야 할 몫으로 주어졌다. 다른 누가 대신 질 수 없다 평생토록 내가 오롯이 지고 가야 할 내 몫이다.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맡아줄 수 없고, 애초에 떼어 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스스로가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짐이다. 다만 첫 번 째 짐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두 번째 짐은 주위 사람들과 조화로운 삶을 통해 스스로 지고 살아갈 수 있다


사람들은 자주 이 두 짐의 성격을 헷갈려한다. 내가 져야 할 짐(=책임)은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고, 내가 지지 않아도 될 무거운 짐은 평생 내 등에 짊어지고 산다.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된다.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는 오랫동안 힘들고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면서 가치관이 뒤틀리고 감정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다. 올바른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애꿎은 상대를 괴롭히는 것이다.  


내 마음이 가볍고, 여유가 있다면, 상처가 치유되어 흔적이 되고 나면 비로소 문제의 핵심이 보인다. 이제 내가 져야 할 짐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분별력과 두 짐의 성격을 구분할 수 있는 시야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가 지지 않아도 될 그 짐(burden)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비로소 자유해졌기 때문이다.


예수는 네 짐(burden)을 내게 와서 맡기라 하신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약속하셨다


그분께 나와 마음을 여느냐, 아니면 평생 그 짐을 무겁게 지고 살아가느냐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주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일부 나쁜 사람들 때문에, 나에게 상처를 준 그 나쁜 녀석이 믿는 자라는 사실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본질이신 주님을 버려서는 안 된다


 


고등학교 2학년, 전도를 시작했다. 내 마음에 많은 아픔을 해결해 줄 치료자로 예수를 받아들였다. 아파트 전도를 수개월하고 나서 고3을 맞이한 후에는 가까운 친구들과 수많은 아이들에게 다가가 예수를 전했다. 그들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 강권했다. 실제로 그 짐을 내려놓은 많은 이들이 돌아와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려서부터 내 마음에 짐이 많았다. 많은 날 우울했고 힘들었다. 타들어가는 속내를 부모에게도 온전히 꺼내 놓지 못하고 불철주야 나 홀로 씨름했다.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던 어머니는 어느 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들아 네 마음에 짐을 모두 내려놓아라 하셨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처럼 스스로 어린양이 되려는 내게 네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는 권면이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지독하게 가난하거나, 불치병에 걸리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나 사건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재산을 잃을 때 우리는 하나같이 헤어 나올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사랑할수록 그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1997년 외환위기 및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파산했고, 대학로, 홍대, 서울역 등지 거리에는 꽤 많은 노숙자들이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현재 국내에는 9천~1.2만 명의 노숙자가 있다는 실태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


가난이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관계가 뒤틀릴 때 얼마나 극심한 고통이 올 수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거나 갑자기 죽었을 때 오는 고통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트라우마를 그대로 겪어야 했다. 그리고 예수의 빛이 내 어두운 흑암을 몰아내는 지속적 경험을 통해 그 트라우마가 스티그마로 치환되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할머니께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으셨다. 상을 당하고 일주일 동안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언제까지나 볼 수 있을 것만 같던 할머니를 갑자기 잃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생계로 돈을 빌려야 살아갈 수 있는 현실 앞에서 무력했고, 내가 가진 믿음이 내게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믿음에 대해 회의적인 때도 있었다. 뒤이은 어머니의 교통사고, 전도를 하고 난 직후에 당한 사고였기 때문에 더 많은 혼란이 있었다.


대학 입학 후 1년 내내 어머니 병간호로 시간을 보냈다. 그 모든 경험을 통해 나의 관심은 나의 내면을 벗어 나 외부로 향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그랬다. 나의 아픔을 충분히 탐색하고 나니 다른 사람의 아픔이 빠르게 전이됐다. 그들의 아픔이 나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다. 아파트 전도는 시장 전도로 이어졌다. 상가의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면 손님이 없어 홀로 책을 보시거나 TV를 보시던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이 허락하시면 나는 사영리를 들고 예수를 전했다. 마음이 간절했다. 부끄러움, 쑥스러움 보다 훨씬 강렬한 그 무엇이 내 안에 있었다. 상가 전도를 다 하고 나니, 지하철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곳에 가서 예수를 전하면 되겠구나


지하철은 왠지 모르게 더욱 조심스러웠다. 오고 가는 바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복된 소식을 전한다고 얼마나 들어줄까? 심한 욕을 듣는 건 아닐까?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 저리 꺼져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일까? 스물한 살의 나는 꽤나 심각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 나를 자유하게 한 그분을 신뢰하기로 했다. 나의 짐을 가볍게 하신 그분께 내 순간을 의탁하기로 했다. 열다섯부터 내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말을 거는 그 선한 음성이,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그 음성을 그대로 따라갔다


지하철 전도를 하면서 주로 개찰구 바깥 의자에 앉아 계신 분들께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혹시 기다리는 10분 동안 시간을 할애해 주실 수 있는지 물었다. 허락하시는 분들에게만 전했다. 생각보다 불쾌해하시는 분은 많이 없었다. 오히려 부담이 돼서 피하거나, 바빠서 들을 시간이 없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수많은 순간들과 조우했다. 사영리(기독교 믿음 소개 책자)를 가지고 예수를 전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은 내 경험 상 틀린 말이었다. 10년이 넘게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


다음은 지하철 안과 밖에 홀로 계신 노숙자 분들에게 마음이 갔다. 그분들이 눈에 밟혔다. 가난이 얼마나 한 사람을 움츠려 들게 하는지, 주눅 들게 만드는지 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몇 분 대화를 주고받으면 내 마음과 그들의 마음은 금세 연결 되었다. 당시 돈이 별로 없어 그때그때 형편 되는대로 빵을 얼마만큼 사들고 다가갔다.


노숙자 중에 정신이 이미 망가질 때로 망가진 분들과는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능한 분들과는 오랜 이야기를 나눴다. 소수였지만 예수를 받아들이는 분에게는 사영리를 전했다. 홍대 입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귀퉁이에 계시던 그분들과 대화는 지금껏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가족을 떠나거나,

가족이 떠난 사람들,

일정한 거처가 없고

주로 술에 의지해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역겨운 냄새가 나거나 위협적인 모습 때문에 언제나 혼자인 사람들


그분들 역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이웃이었다. 20대, 군대 가기 전까지 나는 그분들을 만나 뵈려 시간을 내고 그 장소를 찾아가는 노력을 했다. 노숙자를 돕기 위해 자기 삶을 던진 분들을 존경해하면서, 그분들에 비해 아주 짧은 시간을 그렇게 소중하게 사용하였다. 지금도 노숙자 분들이 국가와 사회의 도움을 받아 자기 자리로 속히 돌아가길 바란다. 그분들이 자기 삶을 다시 찾고 새 삶을 시작하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미소를 만면에 띠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해 지길 두 손 모아 바란다




기쁨아, 네 덕분에 아빠의 지난 이야기 하나하나를 세상에 꺼내 놓을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다 네 덕분이야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서 8장 28절)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네가 알기를 바라. 나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조차 나와 전혀 관계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단다. 그 가족이나 친구 중에 네 친구, 네 미래 가족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하길 바라


아빠는 어렸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였고, 믿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어. 성경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고 애썼어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오랜 시간 무릎을 꿇었어. 그래서 이렇게 많이 행복한가 봐.   

이제 그 삶으로 우리 기쁨 이를 초대해. 네 어려움을 바꾸어 하나님이 선을 이루실 거야

네 삶이 풍성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유산을 남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일단 아빠가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고 어떤 선택을 왜 하는지 잘 봐

그리고 우리 거기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해나가자


우리 기쁨이 아빠가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해~





(P.S 오늘은 13,14화를 동시 발행합니다, 제 글을 통해 위로받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길 기도합니다)


길이나 공원 등지에서 한뎃잠을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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