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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n 07. 2023

대청소

전업주부의 일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청소입니다. 미세먼지라는 불쾌한 세력이 등장하면서 청소는 일의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이건희 공기청정기라 불리는 200만 원대 공기청정기가 인기를 끈 적도 있습니다. 헤파필터라는 것을 알고 나서 급하게 환기구 필터를 교체했습니다. 미세먼지까지 걸러준다니 일단 믿고 열심히 환기시스템을 돌립니다.     


물걸레 기능까지 탑재한 로봇청소기는 혁신적입니다. 로봇청소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출했다는 비현실적 촌극도 옛일입니다. 많은 전업주부가 청소에 할애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과감히 비용을 투자합니다. 저는 아직 로봇청소기를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고장 난 청소기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좋은 거로 하나 장만해야지 하면서도 돌돌이를 집어 듭니다. 쫙쫙 소리를 내며 먼지를 낚아채는 게 청소할 맛도 나고 결과도 제법 훌륭합니다. 떨어지지 않게 리필을 갖춰두긴 해야 하지만요. 그런 점에서 가성비가 좋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당장 몇십만 원짜리 청소기를 들이는 건 부담이 되는 일이니까요. 일단 좀 더 버텨보기로 했습니다.


대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파트 헬스장이 그날 쉬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 없는 날이라면 운이 아주 좋습니다. 창문을 열어젖혀 상쾌한 공기를 집안에 들일 수 있으니까요. 볕까지 좋다면 매트 말리기에 제격입니다. 자, 이제 음악을 틀고 대청소를 시작합니다. 저의 대청소 루틴 중 하나인데, 이 노동요에는 댄스곡과 슬픈 발라드도 섞여 있습니다.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마치 대청소 시간이 줄어든 것 같은 마법이 펼쳐지죠. 저의 경우 대청소하는데 대략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매일 30분이면 끝나는 일반 청소와 비교하면 확실히 품이 드는 일입니다. 그래도 매주 한 번 대청소를 빼먹지 않아야 다른 날들이 순조롭습니다.     


몇 년 전 청소도우미 업체에 집안일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평수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정해져 있었고 불가능한 항목도 몇 가지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4평 기준으로 네 시간을 청소하는데 5만 원가량 지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중 또 얼마는 업체 몫으로 돌아가고요. 할애한 시간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하시는 분들도 그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습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다섯 시간을 머무르는 셈인데, 차라리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높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도우미가 시간이 남아 놀고 있더라는 혹평은 사라질 테니까요. 불만이 쌓여 능력은 버려두고 핑계와 훈수만 두는 도우미들도 줄어들 테고요.  


사실 결혼 초만 해도 대청소는 남편과 저, 공동의 몫이었습니다. 일부러 정해둔 건 아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이 주말이면 대청소를 했습니다. 저보다 몇 배나 더 깔끔한 남편이 지나간 자리는 티가 나고 태도 났습니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을 보냈을까요. 아이가 생기고 잡무가 늘면서 우리 집의 대청소 시간은 사라졌습니다. 아이를 둘러싼 흔적으로 감추고 감춰졌어도 이 집안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쾌쾌한 속내를 말이죠. 아이의 비염이 심해지기라도 할 때면 매트를 걷어 올렸습니다. 매트 사이사이에 낀 먼지를 닦고 또 닦아내며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 미안함의 무게가 오래가진 않더군요. 그렇게 하는 둥 마는 둥,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대청소는 허공을 둥둥 떠다녔습니다.     


이사를 하고 석 달 동안 대청소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전업주부로서의 일을 하자는 다짐 이후 이룩한 첫 번째 성과인 셈입니다. 매일 해도 티 안 나는 게 집 청소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하지만 주부에게는 가족의 안락한 쉼을 위해 정성을 녹여내는 작업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매번 해도 반응 없는 일을 굳이 또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최신형 청소기가 줄을 서도 기어이 줄 달린 청소기를 내치지 않는 엄마의 고집이 안타깝지만은 않습니다. 닳아버린 무릎이 시려 엉덩이를 디딤발로 걸레질하던 할머니의 뒷모습도 애처롭지만은 않고요. 바깥일이 그러하듯 집안일도 가족을 위해 기꺼이 몸을 깎아내는 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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