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직업은 전업주부입니다. 회사원이 회사에 출근하는 것처럼 저는 집으로 출근 도장을 찍습니다.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면 저는 월급을 받진 않습니다. 홀벌이 월급에서 나눈 생활비를 가지고 식비와 차비, 의료비, 의복비 등에 지출합니다. 그렇기에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도록 차질 없이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책무 중 하나입니다. 어느 달은 좀 더 아껴 저축하거나 비상금으로 준비해 둘 수도 있겠지요.
사실 제 직업이 전업주부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결혼 후 어설프게나마 일이란 걸 하고 있었고, 주부라는 말을 딱히 쓸 일도 없었습니다. 일이 끊긴 뒤에도 누군가 일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집에 있다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있다 보니 간혹 가족 소개서를 작성할 때가 있는데, 그제야 직업란을 마주하게 됩니다. 별 뜻 없이 주부라고 쓰면 될 일을 주부가 직업인가라는 물음이 이상하게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경력 단절이라는 말이 근사하게 들릴 정도로 이제 사회에서 퇴출당한 한 여자, 더는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자기 비하까지 한 적도 있습니다.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이 주부라면 전업주부는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은 명명합니다. ‘전문’이란 말이 붙으니 좀 더 그럴싸해 보이는데, 직업에는 종사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맞습니다. 전업주부는 우리가 흔히 설명하는 직업에 속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면 그에 따른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집안일을 맡기는 것도 그런 차원이 아닐까요.
단순히 살림하는 안주인에서 벗어나 집안일을 전문으로 해내는 전업주부가 되어보자고 불현듯 다짐했습니다. 아마도 이사로 인해 바뀐 환경이 제 마음속 세상에도 변화를 불러온 것 같습니다. 그냥 집에 있다는 대답이 아니라 전업주부라고 망설임 없이 말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러려면 저 스스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만족은 떳떳함에서 시작될 테고요. 요즘은 워킹맘보다 전업주부를 더 부러워하는 세상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게 자유롭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살림과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제 손으로 해낸다는 자긍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결코, 워킹맘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을 겁니다. 가사도우미, 등하원도우미,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라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입니다. 도와줄 조모부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마저 불가능한 경우도 여럿 보았고요. 그에 비하면 제가 지금 속 편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항변하자면 저 역시 제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 졌을 뿐입니다. 아니,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묵묵히 제 일을 해낸다면 좋겠습니다. 핑계나 불평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말입니다. 마흔 평생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잡생각들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는 근본적 결론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전업주부이니 일단 전업주부의 일을 하면 되고요. 그런데 전업주부의 일과가 이렇게 과중한지는 결혼 7년 차가 되어 새삼 알았습니다. 엄마의, 할머니의, 증조할머니의 노고까지 눈물겹게 다가올 지경입니다.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습니다. 직업엔 귀천이 없고요. 그런데 전업주부의 일은 정말 위대하고, 전업주부는 가히 귀한 직업인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저는 우선 그렇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다짐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