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건조증이라는 친구를 위해 선물을 샀다. 생일에 맞춰 주려고 했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한 선물은 한 달 가까이 내 책상 위에 있어야 했다. 이것도 코로나 때문이다. 8월 중순에 잡은 약속이 밀리고 밀려 이젠 기약도 없게 됐다. 어영부영 해를 넘겨 이것이 작년의 선물도, 올해의 선물도 아니게 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선 오늘, 친구 집에 보내야 했다. 상자를 봉하기 전 프라하 무하 박물관에서 산 엽서에 정성껏 편지도 썼다. 여행지에서 구매한 엽서 대부분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편지할 때 사용했다. 들뜬 마음으로 산 기념품이지만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꺼내 볼 바엔 누구에게라도 주는 편이 낫다.
마침 우리 집 근처엔 우체국이 있다. 보낸 이와 받는 이의 연락처와 주소를 작성한 뒤 직원분께 상자와 함께 내밀었더니 택배비 사천 원이 나왔다. 사천 원? 우체국 택배 요금이 다른 택배사보다 비싸다는 걸 스물아홉 먹도록 몰랐다. 등기와 일반 소포의 차이도 몰랐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편의점에서 부칠걸, 창구 번호표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자책하다 이길보라 님이 알려준 무적의 주문을 떠올렸다.
"괜찮아, 경험!"
사실 친구에게 쓴 편지에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고, 지금처럼 힘든 시간도 나중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고. 오랫동안 취업 준비 중인 친구에게, 그리고 비슷한 처지인 나에게도 얘기해주고 싶었다(‘싸이를 봐. 미국에서 놀고먹은 덕분에 강남스타일 열풍의 주인공이 됐어!’). 결국 이 말은 편지에 담기지 못했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말을 남에게 할 순 없는 것이다. 무적의 주문도 때론 주춤한다.
스물아홉, 내 인생은 망했다. 어려서 꿈꾸던 20대 후반의 삶은 내게 없다. 어학연수 경험도, 석사 학위도, 자취방도, 무엇보다 변변한 직장이 없다. 스물아홉, 내 인생은 망했다. 취업 준비에도 매진하지 못하는 이 어정쩡한 상태가 정말 괴롭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어떤 동력도 없다. 스물아홉, 내 인생은 망했다. 기껏해야 인생의 3분의 1 정도를 살았을 뿐인 내가 자꾸만 내 인생이 망했다고 말하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당장 취업만 된다면 세상 모든 시름은 다 떨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엔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근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취업 문제가 해결되면 아마 바로 뒤에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불행이 커다랗게 몸을 부풀릴 거다. 그런데 이 말은 결국, 취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천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취업 실패는 그저 내 불행 목록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나의 결정적인 불행이 아니다. 내 불행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만세! 이반지하 님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자. “한가지 차별에 집중하지 마시고 골고루 절망하시길 바랍니다.”
변영주 감독님은 매일 아침 기대감에 눈 뜰 수 있다면 괜찮은 인생이라 했다. 오늘은 또 누굴 만나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눈을 반짝일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했다. 감독님. 그게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 남들처럼 살면 내 인생이 망하는 줄 알았는데, 이젠 남들처럼 살지 못해서 괴로워요. 행복하게 사는 법은 통 깨우치지 못했어요.
스물아홉, 행복하다고 말하진 못해도 사실 내 인생에는 꽤나 괜찮은 부분이 있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부지런히 냉장고에 채워 넣고, 홈 요가를 하다 조금 단단해진 몸을 뿌듯한 마음으로 거울에 비춰보고, 친구들과 에어비앤비를 예약해 배달음식을 먹으며 TV를 보다 밤새우는, 자잘하지만 나를 붙드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저녁 산책 중에 발을 떼는 족족 온몸이 힘없이 흘러내리는 진흙 인간을 상상했다. 가만 서 있다고 흘러내릴 게 흘러내리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지. 그럴 바엔 조금이라도 움직여야지. 주저앉는 모양새가 형편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