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심하고 단순한 질문에 관하여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직업이 무엇인지 묻기 전에 직업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조용히 생각하곤 한다. 학교에도 직장에도 소속되지 않는 나의 직업은 무직, 그러니까 직업이 없는 게 나의 직업인 셈이다. 2019년 도서관 계약직을 마지막으로 2년 가까이 이런 상태를 유지 중이다. 요즘 뭘 하냐고 물으면 취업 준비 중이라고 둘러대곤 하지만 내가 취업을 준비 중인 건지, 취업 준비를 준비 중인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런 나를 굳이 어떤 카테고리에 집어넣어야 한다면 ‘니트(NEET) 청년’ 정도가 될 거다. ‘니트(NEET)’의 일반적인 정의는 이렇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코로나 이후 니트 청년의 수가 급증하자 이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진단하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라고? 니트 청년 당사자인 나에겐 이 말이 절반만 맞는 것 같다. 일하지 않고 있는 건 너무도 분명히 맞지만 일할 의지가 없는 건 아니다. 언제고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이 왜 적극적인 구직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지는 나 역시도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이다.
지난 2년 동안 구직활동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몇 개월 전 다녀온 면접에선 지난 일 년간 뭘 했는지 묻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살아있느라 전력을 다했는데 그렇게 말할 순 없어서 대충 얼버무렸다. 면접관에겐 내가 버둥대던 지난 일 년이 단순한 공백 그 뿐일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입사 지원을 하고 나면 당장 그 회사에 다니게 될 것처럼 마음이 붕붕 뜨다가도 면접 한 번에 기분이 곤두박질치곤 했다. 면접 마친 뒤에 몰려오는 수치감과 모멸감, 불안과 막막함 같은 감정들을 애써 모른 척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잘 소화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오늘의 실패가 내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어쩌면 나한테 필요한 건 실패하는 경험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나를 달랬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요가를 배웠고,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고, 심리 상담 센터도 꽤 오래 다녔다. 29년간 묵혀뒀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문제를 끄집어내고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뒤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또래 니트 청년들을 만났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그 커뮤니티 안에서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건 내가 가장 힘들 때 정서적으로 많은 지지를 보내줬던 친구를 만난 다음이었다. 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라도 일 년 365일 내내 평정심을 찾을 순 없는 까닭에 오랜만에 만난 (역시 무직자인) 친구는 여러모로 지쳐 보였다. 약점이라면 약점일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친구에게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자, 스물아홉, 우울증 환자의, 무직 생활 이야기라니 구절구절마다 눈물이 차오르지만 받아들이기 싫어도 뭐 어째. 이게 내 현실이다. 매일 약 챙겨먹고, 상담 예약을 잡고, 때로 자기연민에 푹 절여지기도 하고, 친구들 만나 웃다가 집에 돌아와 눈물 콧물 쭐쭐 짜내기도 하고 뭐 그런 거다. 절망적인 와중에도 나를 더 살고 싶게 하는 순간들이 있고, 그런 기억은 꽉 붙들고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만하면 꽤 성실한 삶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