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엄마 안 아파요.
내가 이 말을 한 이유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44 입으셔도 될 것 같은데...”
“아, 그냥 55로 주세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상복을 받아 들었다. 흰색 리본의 머리핀까지 받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반나절 동안 엄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 있다가 바로 장례식장으로 온 터였다. 집중관찰실로 옮겨진 엄마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바깥은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낮에 위독하다는 아빠의 연락을 받고 대구역으로 가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갔다가 저녁에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고향의 장례식장으로 왔다. 모든 게 12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일이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생사를 넘고 구성원이 달라지는 시간은 2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삼일장은 내 생각보다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제단의 꽃장식을 어떻게 할지 금액에 따라, 종교에 따라 나뉘어 있었고 내가 잘 모르고 첫인상으로 고른 장식은 기독교식이라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언니는 급하게 부모님이 사진관을 하는 동창에게 연락해 영정사진을 출력했다. 난 아직도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던 언니 친구의 아버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우리 가족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 딸도 그러는데, 안 그래도 돈은 안 받으려고 했어요.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영정사진을 액자에 담아 제단에 세우고, 환복을 하고, 그러는 사이사이 연락이 닿은 지인들에게 부고 소식을 전했다. 처음 전화를 할 때는 눈물이 차올라 말을 잇기 힘들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했다. 그런데 이 감정이 엄마가 떠났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한 명 한 명 메신저와 통화를 거듭하다 보니 원인 모를 감정이 수그러들었다. 3일 동안 다른 사람들의 눈에 가장 슬픈 사람으로 비칠 스스로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내게는 반은 구면이고, 반은 초면인 상황이었다. 장례식장을 방문한 적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직접 상주가 된 적은 없었다. 상주가 되는 경험은 최대한 미래에 있기를 내심 바랐다. 짧은 인생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무서웠기 때문이다. 온기 하나 없는 빈소의 맨바닥에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잠을 설치다 출근 전 새벽같이 찾아온 언니의 조문객을 시작으로 나의 상주 노릇은 시작되었다.
이상하게 언니의 조문객을 봐도, 내 조문객을 봐도 눈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친척들이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을 훔칠 때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엄마 안 아파요.”
친척들이 내 말을 듣고 놀랐을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진심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직 학생이던 시절 자궁암부터 시작해 췌장암까지 10여 년의 투병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는 대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인공항문인 장루를 달아 생활했다. 엄마는 마약성 진통제를 달고 살았고, 정기검진 차 병원에 들른 다음 날이면 너무 아프니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 역시 달고 살았다. 더 이상의 치료는 불가능했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건 불확실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위독한 상태가 된 지 하루가 다 지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이 과정에서 운 적은 종종 있었지만 그게 엄마를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인지, 엄마가 아프다는 것에 대한 원망인지, 엄마가 아픈 뒤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집안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답을 찾지 못했다.
엄마가 아픈 이후로 나는 당연한 것들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치료에 고통스러워하며 변덕이 심해지고 안 하던 욕을 하는 당신의 모습을 볼 때면 수많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당신은 나를 사랑했나.
나는 당신을 사랑했나.
엄마는 종종 내가 말을 안 들을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유, 다시 배속으로 집어넣고 싶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너무 커서 넣지도 못한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농담처럼 했었다. 그게 엄마의 애정 표현이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엄마의 아픈 모습은 여러모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저 농담이 사실은 진심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것이 아니었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엄마가 알게 된다면 뭐라고 할까. 솔직한 심정으로 조금은 그랬다고 답할까. 그럼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그 답을, 다시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