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그렇게 냉정하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오래간만에 고향에 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그 간만의 시간이 부모님을 얼마나 늙게 만드는지 말이다. 가뜩이나 늦은 나이에 나를 낳은 엄마는 그 경우가 더 심했다. 방학을 맞아, 연휴를 맞아 고향에 갈 때마다 엄마는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출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저 멀리 엄마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렇게 가끔 볼 때마다 더 작아져 있었다. 내 키가 자랐기 때문이 아니란 건 진작에 알았기에 한편으론 씁쓸한 마중이었다. 점점 작아지다가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사라질 것만 같았다.
엄마의 마중은 엄마의 암이 재발하면서 끝났다. 재발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첫 번째 암처럼 곧잘 이겨내고 다시 마중 나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피부가 흰 편인 엄마의 밝은 피부색을 더는 못 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대는 예후가 좋지 않은 췌장암이었다. 나는 온통 ‘죽음’의 결과밖에 없는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가족들 몰래 내 마음은 엄마를 포기했다. 살리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냥 다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신이 있다면 나를 미워해서 이렇게 끝까지 괴롭히는 거로 생각했다. 엄마는 그때의 내 마음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넌 왜 그렇게 냉정하니?
암은 엄마를 쉽게 정복해나갔다. 대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장루를 달아 배변 활동을 한 이후로 엄마의 몸은 온종일 퉁퉁 불어있었다. 저러다 터질 것 같아 무서울 정도로 붓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피부색은 점차 노란색을 띠기 시작했다. 모든 장기가 좋지 않아 이 증상은 왜 생기고, 저 증상은 왜 생기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언니와 나는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며 부기가 조금이나마 빠지도록 했다. 아직도 그 마사지가 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엄마를 예전으로 되돌리고 싶다는 욕망 반, 엄마의 이런 약한 모습을 보기 싫다는 마음 반이었다. 마사지를 처음 하던 날, 엄마의 발등에 손을 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주무르기 위해 꾹 누른 엄지손가락 모양대로 발등의 살이 움푹 들어가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은 탄력과 복원력을 잃은 상태였다. 엄마의 몸이 망가졌다는 걸 겉으로, 두 눈으로 보게 되니 충격이 왔으나 티 내지는 않았다. 가족들 모두, 엄마까지도 살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장의 마사지와 당장의 식사를 어떻게든 하게 만드는 상황이 서글펐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엄마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러나 싶었다.
엄마가 떠나던 날은 당신의 피부에 덜컥 눈물부터 났었다. 꼭 서울에서 몇 달 만에 간 고향에서 마주한 엄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의 수십 배의 말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 항상 멀리서, 반겨주지 않는 병실 침대의 엄마를 바라만 보다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엄마 손 위에 내 손을 겹치는 순간이었다.
‘엄마 손이 이렇게 노래졌구나.’
‘난 그걸 이제 알았구나.’
‘곧 갈 사람이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눈물이 계속 나왔다. 보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이승에 더 잡아두는 건 엄마나 우리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 노랗게 뜬 피부로는 버틸 수 없다고, 그러니 그만 괴로워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라고 나는 속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그 순간에도 날 흘겨보며 속으로 말했을까.
넌 왜 그렇게 냉정하니?
그럼 난 더 냉정하게 대꾸했을 거다.
더 있어봤자 엄마가 아프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