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깨달은 등산의 즐거움
등산의 즐거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산속을 걸으며 맞는 청량한 바람, 초록의 숲을 오가는 새들의 울음소리, 등산객의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개울물... 이 아름다운 자연과 계절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등산의 과정이야말로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걸 나는 아주 뒤늦게야 깨달았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내려올 걸 왜 올라가, 힘들게?"라고. 나도 한때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차로 가면 편한데 왜 굳이 걸어서 가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평지를 걷는 것도 힘든데 왜 굳이 등산을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전부인데, 그게 뭐라고 저렇게들 좋아하나?'라는 의문만 머릿속에 맴돌았을 뿐이다. 그러니 매주 산에 가는 남편이 "너도 같이 갈래?"라고 물어도 내 대답은 늘 "No"일 수밖에.
그러나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게 마련인지, 20~30대에는 걷는 것도 싫고 등산도 싫더니 40대가 되니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운동 겸 산책 겸 남편이랑 등산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다. 봄에는 꽃을 볼 수 있어 좋고, 여름에는 초록의 숲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좋고, 가을에는 빨강노랑 예쁜 단풍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추운 겨울 등산도 견딜 만했다. 주말이면 남편이랑 손잡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산속을 걷는 기분이 생각보다 근사했다.
게다가 같은 산을 여러 번 가다 보면 등산 루트를 눈에 익히게 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등산에도 100% 적용되는데, 얼마만큼 가야 정상이 나오는지 모를 땐 힘이 배로 든다. 하지만 길을 알고 있으면 체력 안배도 가능하고, 쉬어 가야 할 적절한 타이밍도 알게 되고,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게다가 등산을 갈 때마다 들르는 포인트가 있다면 등산의 즐거움은 더욱 배가 된다.
등산이 조금 몸에 익은 후에는 집 근처 산뿐 아니라 다른 산에도 도전했다. 2022년 봄에는 한라산 영실코스를 남편과 함께 다녀왔고, 2023년 겨울에는 친구들과 마니산에 다녀왔다. 한라산 영실코스는 왕복 5시간에 가까운 대장정이었지만 그만큼 대단한 경험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이 교차하는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계속 감탄을 연발하며 쉼 없이 사진을 찍었으니까. 많이 힘들고 지치고 더는 못 가겠다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마침내 영실코스 최종 도착지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 또한 가슴속 깊이 각인돼 있다. 게다가 한라산 등반은 다이어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라산에 다녀온 후 쟀던 인바디 수치는 기존의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 최고 기록이었고, 이후 내 인바디 수치가 나빠질 때마다 "혜정 회원님, 한라산 한 번 더 다녀오셔야겠는데요"라는 트레이너의 놀림을 들었을 정도다.
마니산 등반은 친구들과 함께한 MT 다음날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마니산 참성단에서 좋은 정기를 받으면 새해(2024년)에 모든 일이 술술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등산을 시작한 것이다. 고도가 472.1m인 산이라 그리 힘들진 않겠지,라고 쉽게 생각했지만, 등산로는 예상외로 엄청 험난했다. 계단은 가팔랐고, 바위 위를 기어오르듯 가야 하는 구간까지 있었다. '새해엔 운수대통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없었다면 중도포기했을지도... 하지만 간신히 올라온 마니산 정상 참성단은 힘들어도 올라올 만한 곳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신령한 기운이 가득했달까. 왠지 모든 게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라산, 마니산 등 몇 번의 원정 등산과 수십 번의 동네산 등산을 거친 후, 나는 꽤나 산을 잘 타는 '준 등산인'이 되었다. 동네산 정도는 쉬지 않고 정상까지 갈 정도가 됐고, 등산의 재미도 알게 됐다. 천천히 산을, 그리고 주변 자연을 음미하며 걸을 수 있게 됐고, 잠깐의 휴식 시간에 마시는 시원한 물의 달콤함도 알게 됐다. 등산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목표지향적 인간의 전형인 나는 아무리 과정이 중요하다 한들, 한 번 산에 가면 반드시 정상을 찍고 내려와야 직성이 풀리고, 등산이 가져다주는 다이어트 효과에도 관심이 지대하다. 등산은 체력 증진, 근육량 증가에 확실한 효과가 있고 칼로리 소모도 커서 다이어트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과정은 과정대로, 결과는 결과대로 즐기면 등산의 효과를 100% 누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