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귀는 유연한 사고와 통한다
1장 마인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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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과 단점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상황에 따라 단점은 장점으로 뒤바뀔 수 있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얇은 귀는 유연한 사고와도 통한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완벽한 장점이 없듯 완벽한 단점도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일(고스트라이터로서의 일)에도 여러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이지만 내 글이라고 당당하게 밝힐 수 없고, 글에서 부정적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반복해야 하며, 어떤 경우든 기업 친화적 관점에서 글을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의 홍보물 작업을 맡게 됐다면, A를 비판하거나 A의 단점을 부각하는 글은 쓸 수 없는 거죠. 기업 홍보물이란 기본적으로 해당 기업의 장점을 널리 알리기 위한 제작물이니까요. 일을 맡은 이상, 글에서 A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드러내면 안 됩니다. 이건 '국룰'이나 마찬가지예요(만약 A가 못 견디게 싫다면 일을 맡지 않으면 되겠죠).
저 같은 경우 특정 기업에 대한 호불호가 별로 없는 터라 이 일을 하면서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고스트라이터라는 직업과 잘 안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싫어하는 기업의 장점을 부각해야 하는 글을 쉼 없이 쓰다 보면, 갑작스럽게 '현타'가 밀려오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오히려 이 일을 하면서 '나의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는구나'라는 걸 느낀 적이 많았어요. 제가 귀가 얇아서 남의 말을 엄청 잘 듣는 편이거든요(그나마 다행인 건 아무 말이나 잘 듣는 건 아니고, 친한 사람 말만 잘 듣는다는 거예요.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라 누군가와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하면 사기당하기 쉬운 타입이죠ㅠ.ㅠ). 누가 옆에서 '이거 엄청 좋대. 너도 한 번 해볼래?'라고 권유하면 바로 혹하는 타입이라, 기업에서 자사의 장점이 부각된 홍보 자료를 건네주면 '와, 이 회사(제품) 진짜 좋구나'라며 바로 감탄한답니다. 심지어 A가 식품 회사라면 한동안은 A 제품만 먹을 정도예요. 좋은 제품을 알게 됐으니 실제로 먹어보고 평가해 보자, 이런 마인드랄까요?
일종의 덕후 기질도 작용하는 것 같고요. 전 하나에 꽂히면 그걸 엄청 파는 타입이라 A 기업 일을 할 땐 A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고, B 기업 일을 할 땐 B의 열렬한 찬미자가 된답니다. 나쁘게 말하면 맹목적이고, 좋게 말하면 긍정적이에요. 사람이든 기업이든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보는 편이니까요. 어쩌면 고스트라이터 일에 최적화된 성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침소봉대하듯 사실을 부풀리는 것도 싫어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을 더 크게 보고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글을 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일은 저에게 단점을 장점으로 뒤바꿔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귀가 얇다'는 특징이 '줏대 없이 남의 말에 잘 휩쓸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인정해 주고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변화하는 셈이죠.
단점과 장점은 어떤 의미에선 한 몸과도 같습니다. '예민하다'는 건 '까다롭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섬세하고 감성적이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결국은 어떤 측면을 더 크게 보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스트라이터도 한편으론 남의 얘기 대신 해주는 사람에 불과하겠지만, 또 한편으론 기업과 고객의 원활한 소통을 돕는 유능한 커뮤니케이터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