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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Mar 31. 2024

'모성'이라는 단어는 태초에 없었다

모성이란 단어 뒤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

모성담론을 풀어내보겠다고 하였으나 그 뜻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성'이라는 개념 때문이 아닙니다. '모성'에 대한 백과사전의 정의는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된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자질과 경험'입니다. 굳이 백과사전을 펼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생활이나 정책에서 모성이라는 단어는 흔히 쓰이기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담론'이라는 개념은 조금 다릅니다. 한자어만으로 풀이하자면야 말씀 담(談)에 논할 론(論)이지만,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대화한다, 혹은 논의한다, 토론한다고 하지 담론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담론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 분야는 학계인데, 학계라고 할지라도 어떤 전공이냐에 따라 그 용례가 달라집니다. 그렇게 보면 의도치 않게 은어가 되어버린 단어가 '담론'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호한 '담론'에서도 놓치지 않는 개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언어와 사회입니다. 어떠한 관념이 표출되는 수단은 언어일 수밖에 없으며, 사람들은 언어의 교환을 통해 사회를 움직입니다. 그 반대의 방향도 가능합니다. 사회가 언어를 창출함으로써 관념을 구성하고, 이 관념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고 통제합니다. 그렇게 보면 담론은 언어를 통한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이론이기도 합니다.  미셸 푸코는 담론을 지식과 권력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사회가 언어를 만들어 냄에 있어 그 구체적 주체는 권력자일 수밖에 없기에 담론을 언어, 곧 지식과 권력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학 담론은 단순히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지식의 체계를 넘어서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됩니다. 무엇이 질병인지를 규정함으로써, 사람의 정상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지요.    


결국 모성담론을 논하겠다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쓰는 모성이라는 단어가 개인보다는 사회가 일종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구성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모성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모성'과는 달리 '부성'에 관해서는 사전에서 크게 논하지 않고 있습니다. 찾아본다면 '남성이 가지고 있는 부친으로서의 특성' 정도입니다.  어쩌면 '담론'이란 용어를 붙여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모성'이라는 용어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내포합니다. 미셸 푸코의 견해에 입각한다면 담론에는 권력의 개입이 전제되어 있으니까요.   


인상파 풍의 '태초의 모성' -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그러면 '모성'이라는 개념은 언제 강조된 것일까요?  어머니가 태초에 있었기에, 모성 또한 고대로부터 강조된 것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세계의 생성으로부터 시작되었겠죠.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지속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성'이 강조된 역사는 프랑스혁명 이후부터였습니다(이하 프랑스의 모성 강조에 대한 부분은 조청현, 2012 참조)중세까지는 아이를 위한 어머니의 역할 자체가 논의될 사회적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어린아이는 결코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심대상이 아니었거든요(김택호, 2016).  


프랑스혁명에서 성공한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 계급을 부르주아적으로 만드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강조된 것이 19세기 초반의 가족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냥 가족이 아니라 자녀가 있는 가족이 올바르다는, 이러한 가족이 사회의 기초단위가 된다는 관념입니다. 이 속에서 전통적 탁아제도인 '농촌유모제도'에도 비판이 가해집니다. 어머니가 모유를 먹이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인식도 이 과정에서 주장됩니다. 


그 시기에 프랑스 사회가 모성을 강조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인구의 중요성을 재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구가 국력과 국부의 원천이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영유아 사망률을 줄여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위생적인 탁아 방식이 필요했기에 탄생한 것이 '근대적 탁아소'입니다. 이 근대적 탁아소에서는 농촌유모제도나 '가정 탁아소'와 같은 전통적 탁아제도와 달리 위생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모유 수유와 함께 모성 교육에 중점을 두게 됩니다. 근대적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는 이유기로 접어들 때까지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탁아소에 올 것을 약속해야만 했습니다. 모유 수유를 위해서 말입니다. 근대적 탁아소의 운영자들은 모유 수유가 서민 계급을 도덕적으로 만들 수단일 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와 함께 즉 근대적 탁아소는 어머니들에 대해 모성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성교육의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어머니로 하여금 자녀를 사랑하는 법을 재발견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빈민 어머니들의 생활 태도를 부르주아 어머니들처럼 도덕적으로 바꾼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도덕적이라는 것은 질서와 청결, 절약과 깊은 신앙심 등이 포함됩니다. 탁아소는 이를 위해 어머니에게 부르주아 가정의 어머니가 아이를 돌볼 때 활용하는 양육 방식을 십계명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 권고했습니다. 많은 목록 중에  두 가지만 옮긴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기가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주십시오. 교육은 요람에서 시작합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자식은 잘 키웠느냐 못 키웠느냐에 따라서 행복의 원천일 수도 있고 불행의 원천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기를 보다 더 잘 먹이고 보다 더 잘 키우기 위해서 검소하고 현명해지십시오."


※ 참고문헌

김택호. (2016). '엄마'라는 문화적 기억의 재현과 수용: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의 경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의 경우. 돈암어문학30, 73-97.

조청현. (2012). 부르주아 가치관의 보편화 과정: 19 세기 파리지역 탁아소의 모성 교육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35, 117-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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