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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Apr 07. 2024

전통적 모성담론은 어떤 세계를 만들었을까

모든 여성의 어머니화와 성별분업

전통적 모성담론의 첫 번째 문제점이 헌신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의 삶에서 어머니 자신을 소거시킨 것이라면, 두 번째 문제점은 이러한 상징을 여성의 본성 및 역할로까지 전이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여성의 역할이 모성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으로 한정됨에 따라 돌봄 혹은 보살핌은 여성의 본성이 됩니다. 이에 따라 양성 체제에 있어 여성은 경제적 수입을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집니다. 경제적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남성의 일이지 여성의 일이 아니니까요. 이러한 측면에서 모성담론은 여성 억압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게 됩니다(김택호, 2016). 


모성담론에서 모성은 어머니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답고 존귀한 품성임과 동시에 어머니가 '가져야 하는' 당연한 자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머니의 존재는 인류 공동체의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머니는 단 한 명이어서는 안 됩니다. 가족마다 이 이상적인 존재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성은 오로지 여성으로 한정됩니다. 어떻게든 사회는 이런 어머니상을 강제할 필요가 있으며, 모든 여성을 이상적인 어머니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모성은 여성 간 우열을 가리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강혜원, 2018). 사회가 정한 '올바른 모성'의 수행을 기준으로 삼아 여성을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19세기말 여성해방운동의 초점이 여성성과 모성성의 분리에 맞춰진 것은 이러한 이유였습니다.


이것이 먼 옛날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박정희 시대에도 여성은 독립된 개인이 아닌 어머니 혹은 딸에 불과했습니다. 그 당시 여성정책은 '부녀정책'이었거든요. 그 당시 정부는 사회 전체적으로 부녀자 교육을 강조하는 등 '부녀윤리'의 확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농촌을 떠나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에게 '공순이' 또는 '직업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금의 시각에서야 이러한 별칭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전통적 어머니상이 확고하던 그 시대에 이러한 호칭은 오명(stigma)이었습니다(강혜원, 2018).


입체파 풍의 '성별분업' by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그래도 지금은 바뀌지 않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성별에 따른 교육 수준도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맞벌이 역시 자연스러워진,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그에 따라 돌봄으로 상징되는 가사노동 역시 성별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반문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적지 않은 부부들이 양쪽 모두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평등하게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사회 분위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부들은 아직도 외벌이를 택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전통적 성역할에 충실합니다. 남성은 수입노동, 여성은 가사노동이라는 전통적 모성담론의 구도죠. 그리고 이럴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제1부(https://brunch.co.kr/@sgdoc/97)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성별 임금 격차입니다. 여성의 임금이 낮으니, 여성이 가사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지금 나타나는 가족 내의 성별분업은 모성담론과 무관한 것일까요? 오로지 부부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결과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통적 모성담론에 따른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노동을 주변화시켰습니다. 숙련노동을 남성에게만 할당함으로써 여성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Hartman, 1976). 이것이 양성 간 임금 격차를 발생시켰습니다. 이것이 고착된 상황에서는 새롭게 탄생한 노동이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지라도, 그 노동을 주로 여성이 담당하게 된다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되고 맙니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부부의 결정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은 전통적 모성담론의 자장 안에 있는 선택에 불과한 것입니다.   



※ 참고문헌

강혜원. (2018). 가족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모성담론 경합.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김택호. (2016). '엄마'라는 문화적 기억의 재현과 수용: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의 경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의 경우. 돈암어문학, 30, 73-97.

Hartmann. (1976). Capitalism, Patriarchy, and Job Segregation by Sex. Signs, Vol. 1, No. 3, in Women and the Workplace: The Implications of Occupational Segregation (Spring, 1976), pp. 137-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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