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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May 12. 2024

아버지는 왜 바뀌었을까?

산업화 진전에 따른 가부장제의 침몰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여성, 어머니가 살기 힘든 사회 구조에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끄덕임이 흔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자만 힘든가?'라는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남성, 아버지의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누가 더 힘든가라는 질문은 피해야 합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 어머니와 아버지를 대립시켜 답 안 나오는 싸움만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모성담론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부성담론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하지만 모성담론과는 달리 부성담론이란 용어는 우리에게 낯설기만 합니다. 낯설다 뿐일까요? 낯선 것을 넘어 부성담론이란 용어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까지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담론을 지식과 권력의 상호작용이라고 볼 때 부성담론이라는 용어는 생길 이유가 없습니다. 지식과 권력의 소유자가 부성을 가진 남성이었으니 남성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상호작용을 주도하는 주체가 그 자신을 객체로 격하시킬 리는 없으니까요. 물론 최근 들어 간간히 부성담론이라는 용어가 학술논문의 키워드에서 간간이 보이고는 있습니다만, 여기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양육에서의 아버지의 역할 변화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치열하게 논의되어 왔던 모성담론의 '모성'을 '부성'으로 바꾼 것에 에 불과합니다. 지금 드물게 보이는 '부성담론'은 담론의 형성 과정인 지식과 권력의 상호작용이라고 볼만한 것이 없었기에 허구적 용어입니다. 


담론이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역할은 최근 들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역할 변화가 일어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그것과는 아예 다릅니다. 모성담론을 통해 유지되고 변화된 어머니의 역할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역할 변화는 기존 역할 수행의 한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존에 수행하던 역할의 한계가 부부 사이의 지위인 남성 배우자의 역할을 변경하고, 이것이 다시 양육관계에서의 부성을 새로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나성은. 2014). 담론이라는 것이 사회가 가진 기존의 틀을 유지하거나 바꾸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때, 부성의 역할이라는 것이 담론으로 작용하여 사회적 변화에서의 주도권을 가진 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채화풍의 '침몰하는 선박' by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가파른 산업화는 빈부격차를 확산시켜 남성 1인의 생계부양자 모델을 파괴하게 됩니다. 산업화가 급격히 진전되기 전까지는 가족 내 성인 남성 1인이 일터에 나가 성실히 돈을 벌어와 주변 이웃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종이 분화될수록 소득의 격차는 커지고 이로 인해 지출의 규모도 각양각색이 됩니다. 가족이 의존하던 남성 1인의 그럭저럭한 수입으로 이웃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갖기는 힘들어졌습니다. 여기서의 이웃은 매우 주관적입니다만은 대개의 사람들은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상대 비교는 흔한 인간 속성이기도 하기에 이를 탓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이러한 비교는 진전된 산업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득과 지출이 지금처럼 세분화되지 않았기에 비교 의식의 강도 역시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일한 생계부양자인 남성의 수입이 탁월하지 않은 채 고만고만하다면 가족이 도출할 수 있는 해결책은 수입원을 늘리는 것뿐입니다. 집 안에만 머물러 있던 어머니가 노동 전선에 뛰어드는 것이었죠. 이에 따라 가부장적 가족제도는 사고는 천천히 침몰하게 됩니다. 바깥의 일은 남성의 것이라는 등식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근간은 남성의 경제력에 있었거든요(박윤주, 김태형, 2017).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아버지상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고 분석합니다(강이수, 2011; 김정환, 이선이, 2014; 조은, 2008). 1997년 이후 본격화된 한국 사회의 고용 불안은 필연적으로 2인의 생계부양자를 요구했으며, 엄마의 외부 노동으로 인해 나타난 돌봄 공백을 누군가는 채웠어야 했습니다(나성은, 2014). 집에 따라서는 조부모가 이를 채워주는 경우도 있었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버지인 남성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남성의 역할 한계에 근거한 것임을 가리려 했던 것인지 아버지의 양육참여를 위한 사회적 캠페인도 일어납니다. 부모의 동반 양육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분위기가 일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제 아버지는 그 수입이 많고 적음을 떠나 양육 참여를 회피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 시대에서 양육에 무관심한 아버지는 구시대적 아버지를 넘어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참고로 한국이 지난 아버지상의 변화 시점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그리 늦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도 새로운 아버지상의 출현을 '조용한 혁명'이라는 표현으로 반겼던 시점이 1980년대 초반이었기 때문입니다(정진성, 2009).  



* 참고문헌

강이수. (2011). 남성부양자 가족의 균열과 지속: 변화 경로와 쟁점에 대한 고찰. 가족과 문화23(4), 123-145.

김정환, 이선이. (2014). 한국 30 대 고학력 남성들의 아버지상과 아버지 역할 실천방식에 대한 연구. 가족과 문화26(3), 71-104.

나성은. (2014). 남성의 양육 참여와 평등한 부모 역할의 의미 구성. 페미니즘 연구, 14(2), 71-112.

박윤주, 김태형. (2017). 문턱에 선 아버지들. 젠더와 문화, 10(2), 219-248.

정진성. (2009). 한국사회 부성의 구조: 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페미니즘 연구9(1), 79-111.

조은. (2004). 세계화의 최첨단에 선 한국의 가족-신글로벌 모자녀 가족 사례 연구. 경제와사회64, 14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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