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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Apr 21. 2024

그녀는 왜 슈퍼우먼이 되어야만 했을까?

산업화 및 도시화에 따른 여성의 역할 변화

전통적 성별분업이 경제활동은 남성의 몫이라는 답을 정해놓았지만 여성의 노동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가부장제 하에서 만들어진 성별분업이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기여를 비가시화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강혜원, 2018). 실을 만들어 베를 짜던 길쌈이든, 농경사회에서 당연히 함께 했던 논밭일이든, 집안에서 행해졌던 살림이든 여성이 했던 모든 노동은 가족에 기여를 했으니까요. 다만 전통적 성별분업으로 인해 이러한 여성의 노동이 노동으로 평가받지 못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사고로 혹은 무책임함으로 인해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을 때도, 어머니의 활동은 경제활동이 아니라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행해지는 ‘희생’으로 당연히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산업화 이전까지는 위와 같은 성별분업이 보통의 경우 설득력을 가졌습니다. 대체로 남성은 집 밖의 일, 여성은 집 안의 일로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어머니가 논밭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가족의 농사였으니까요. 하지만 산업화가 진전되고 핵가족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등식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소득 확보의 주된 수단이 임금노동으로 바뀌면서 남성의 영역은 집 밖의 일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는 것으로 축소됩니다.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오는 것으로 역할이 조정된 것이죠. 그에 따라 여성의 역할도 집 안의 일에서 가족의 일상을 유지하는 활동으로 재조정됩니다(윤택림, 2001). 예를 들면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을 잘 관리하여 목돈을 만들거나 주거를 마련하는 일, 가족의 사회적 지위 확보를 위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 자녀의 교육을 관리함으로써 소위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일 등이 여성의 역할에 편입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내가 해야 할 일은 가계부 쓰기로 일컬어지는 근검절약이었으며, 공공기관들은 ‘알뜰주부상’과 같은 것을 만들어 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습니다(신경아, 2007). 그 때 요구되던 어머니의 교육 책임은 2000년대 들어 다음과 같은 말로 발전합니다. ‘자녀의 성공적인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다름아닌 할아버지의 경제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다.’


이러한 역할 재조정이 남성의 일방적인 역할 떠넘기기로 초래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업화된 자본은 주로 남성이었던 임금노동자를 새벽부터 밤까지 활용하기를 원했으니까요. 이 시기의 남성에게는 임금노동을 빼고는 다른 무엇을 할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자본이 임금을 통해 남성을 철저히 복속시킴에 따라 여성 역시 가정에 더 얽매이게 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 부담 확대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도시화가 진전됨에 따라 여성이 해야 할 일은 늘어만 갔습니다. 도시가 발달한다는 것은 물가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주거비를 포함하여 교육비, 통신비, 의료비 등 가계가 짊어져야 할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남성 생계부양자의 임금 상승 폭은 이를 감당하지 못 했습니다. 결국 가족 차원에서 낼 수 있는 수단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였습니다. 1970~80년대를 거치며 여성의 역할인 가족 일상의 유지에 가사 및 돌봄 노동 뿐 아니라 임금노동까지 들어온 것입니다(김혜경, 오숙희, 신현옥, 1992).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미 여성의 역할이 임금노동으로까지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돌봄에 대한 기본적 책임은 여성에게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치고 들어오면 그에 따라 다른 무언가는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거늘 가족 돌봄이라는 책임은 여성 바깥으로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사회는 여성의 임금노동으로 인한 가사의 공백을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인식했습니다. 언론은 아내의 취업을 가족 내 경제권에 관한 부부 간 갈등이나 남성이 가지는 심리적 위축의 원인으로 다루었습니다. 양육에 초점을 맞추어 엄마의 취업이 자녀의 건강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강혜원, 2018).


수채화풍의 '슈퍼우먼' by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왜일까요? 이것은 여성의 임금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현저히 적었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물론 이것은 전통적 성별분업에 따른 성별 임금 격차에 따른 것이지요. 하지만 근본적 원인이 어찌 되었든 부부가 동일한 시간을 임금노동에 투여하더라도 가족 생계를 지탱하는 주된 부분은 남성의 노동 수입입니다. 여성이 투여하는 임노동 시간이 어찌 됐든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니 가사를 책임지라는 논리입니다.


여성의 임금 노동은 그 수입 탓에 ‘용돈벌이’로 취급되었습니다(배은경, 2008). 자녀 양육에 있어 사교육이 필수로 등장한 이후에는 경력단절여성이 취업에 다시 뛰어들며 하는 말, “애 학원비나 벌어야지” 역시 그렇습니다. 일하는 여성 또한 본인의 임금노동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생계비가 아닌 용돈이나 학원비,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생계에 지장 받지 않을 만큼의 금액이라는 거죠. 그 액수가 실로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월급이 남성보다 적다는 것, 그리하여 생계부양자는 남성일 수밖에 없다는 사고입니다. 


아니면 그 반대입니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근거, 가족의 생계부양자는 남성이라는 역할 모델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임금노동에 대한 가치절하가 필요했습니다. 여성의 생계부양 역할을 인정한다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러하기에 여성의 임금노동은 가족 부양이 아니라 가족 돌봄을 위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가족을 좀 더 잘 돌보기 위해 ‘여분’의 수입이 필요하고, 여성의 노동은 이 여분의 수입을 위한 선택적이고 자발적인 노동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실제 생활과는 무관하게 형성됩니다.


여성의 수입에 대한 인식은 1990년대에 들어 바뀌기 시작합니다. 고소득자, 전문직 등 여성의 지위가 눈에 띄게 상징적으로 올라온 때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사회전반으로 볼 때는 매우 미미했으나 비교할 것이라고는 이전 시기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때는 여성 역시 그 능력에 따라 남성과 동등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착시가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능력에 대한 인정이니 좋아해야 할까요? 아니었습니다. 그에 따라 변한 것은 여성의 역할이었습니다. 여성의 소득을 용돈으로만 취급했던 사회는 이제 여성에게 배우자만큼의 임금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건 좋은 엄마, 좋은 아내의 기준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돈을 벌어오는 것 또한 가족 내 여성이 해야 할 일로 추가가 된 겁니다(강이수, 2007). 기준이 바뀌니 비난할 거리도 늘어납니다. 이전에는 일 하는 엄마에게만 가해졌던 비난이 이제는 가사에만 전념하는 엄마에게도 가해집니다. 놀고 먹는다는 말로 말입니다(김종미, 1999). 그렇다고 해서 일하는 엄마에게 행해지던 비난이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결국 사회는 여성에게 돈도 잘 벌고 집안도 잘 볼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슈퍼우먼이 되라고 말입니다. 



※ 참고문헌

 강이수. (2007). 산업화 이후 여성노동시장의 변화와 일-가족 관계. 페미니즘 연구, 7(2), 1-35.

 강혜원. (2018). 가족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모성담론 경합.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김종미. (1999). 주부, 아줌마, 여성운동. 여성과 사회, (10), 58-72.

 김혜경, 오숙희, 신현옥. (1992).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한국가족의 역할 변화. 여성과 사회, (3), 278-314.

 배은경. (2008).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산업화 시기 한국 어머니의 모성 경험: 경제적 기여와 돌봄노동, 친족관계 관리의 결합: 경제적 기여와 돌봄노동, 친족관계 관리의 결합. 페미니즘 연구, 8(1), 69-123.

 신경아. (2007). 산업화 이후 일-가족 문제의 담론적 지형과 변화. 한국여성학, 23(2), 5-45

 윤택림. (2001). 한국의 모성. 미래인력연구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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