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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May 19. 2024

양육하는 아빠는 행복하기만 할까?

아빠의 이중부담

아빠의 양육 참여 인식을 공고히 한 것은 모든 캠페인이 그렇듯 미디어입니다. 지상파에서는 2013년에 두 개의 프로그램이 런칭됩니다. MBC의 <아빠? 어디가>에서는 아빠가 자녀와 여행을 했으며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아빠 혼자 영유아인 자녀를 48시간 돌봅니다. 이쯤되면 아빠의 양육 참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바뀝니다.  아빠의 양육 참여는 특별함이 아니라 훈장이 됩니다. "우리 집 남자는 자녀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요."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아빠의 양육 참여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노동자로서의 노동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노동 전선에 뛰어 들었지만 집안 일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아빠는 양육에 뛰어 들었지만 노동의 책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다정한 남편, 함께 돌보는 아빠로서의 역할이 강화될 수록 노동자로서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기에, 그의 업무 강도는 더욱 높아지게 됩니다. 일과 가족이라는 시소의 중심대가 가족으로 옮겨갈수록 일의 무게가 낮아져야 할터인데, 남성 노동자는 그러하지 못합니다. 양육시간의 공백을 추가적인 노동 혹은 더 밀도 높은 노동으로 메꿀 수밖에 없습니다. 나성은의 연구에 인터뷰한 남성처럼 초저녁에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퇴근하면 다시 사무실에 출근해 밤샘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나성은, 2014). 이 인터뷰 대상자처럼 퇴근 후 재출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을 갑니다. 많은 수의 남성은 재출근이 아니라 회사에서 노트북을 챙겨와 집에서 작업할테니 말입니다. 물론 작업의 시작 시간은 아이가 잠든 후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일하느냐?'  이 질문은 몽매할 뿐입니다. 속 편한 질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책임은 높아지고 해야 할 일은 많아집니다. 그리고 고용 불안의 시대에서 책임을 완수하지 못 한다는 것은 실직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나이가 들수록,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가 커갈수록 들어갈 돈은 많아집니다. 맞벌이를 통해 빠듯하게 운영되고 있는 가족의 생계를 염두에 둔다면 실직은 결코 생각할 수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일-가정 균형을 위한 소득의 감소? 역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돈 들어갈 곳이 숱한데 소득을 줄이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는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맡겨진 일을 완수하되 양육을 위한 시간을 별도로 뽑아내는 것. 


수채화풍의 '한 쪽 어깨에는 아이를 앉히고, 많은 짐을 든 채 웃고 있는 남성 노동자' by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끔 만듭니다. 왜 이런 노동을 감내하는가? 왜 이렇게 사는가, 혹은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아빠인 남성 당사자들도 이러한 의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처럼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 근저에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전통적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는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세상이 많이 바뀌어 혼자 이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졌으나, 그리고 혼자 짊어질 수도 없으나, 생계의 많은 부분은 남성인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확고합니다. 


이 생각을 버리지 못 하는 원인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성별임금격차 역시 사실적으로 작용합니다. 아내가 일을 한다 해도 그 임금 비중은 가계 전체 소득에서 절반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 많은 가족이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이것은 다시 남성에게 가족의 생계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만듭니다. 전통적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성별 임금격차를 만들고, 이것이 다시 전통적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 셈입니다. 일하는 엄마들이 양육의 주책임자를 본인으로 인식하고 아이에게 미안함을 갖는 것처럼(이재경, 2004), 양육에 참여하는 아빠들은 혹시라도 소득이 줄어 생계부양자라는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라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모든 아빠가 이와 같은 압박과 불안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안정적인 직업의 아내를 둔 남성들은 생계부양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나성은, 2014). 나의 일자리가 잘못되어도 우리 가족이 버틸 수입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서 나타나는 남성의 책임감은 그 직접적 원인이 전통적 담론이 아닌 가족의 현실이라는 것을 드러내줍니다. 



*참고문헌

나성은. (2014). 남성의 양육 참여와 평등한 부모 역할의 의미 구성. 페미니즘 연구, 14(2), 71-112.

이재경. (2004). 노동자계급 여성의 어머니 노릇 (mothering) 의 구성과 갈등: 경인지역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 12(1), 8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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