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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Nov 16. 2023

민주주의는 왜 대세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 이해

앞선 글에서 민주주의를 상대적인 관념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시민의 숫자로만 민주주의 여부를 판단하기엔 아쉬움이 남습니다. 고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 형태가 있었으나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아니 완전한 대세로 우뚝 선 것은 민주주의에만 있는 무언가가 있었을테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를 통해 민주주의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믈론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 옹호론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에 관한 핵심은 찬성론자가 아닌 반대론자의 견해에서 뽑아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반대는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국가의 정치체제를 6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왕족, 귀족정, 혼합정을 올바른 정치체제로,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을 그른 정치체제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있어 올바름의 기준은 해당 정치체제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느냐였습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체제는 올바르다고 보았던 반면 사적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제제는 그르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기로 하지요. 왕정은 한 사람이 통치하는 정부들 가운데 공동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부, 귀족정은 한 사람 이상의 소수자가 공동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부를, 혼합정은 다수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정부를 의미합니다. 통치자는 달라지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셋 중 무엇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조금 갈립니다. 귀족정을 최선의 정체로 삼았다는 견해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번갈아 지배하고 지배받는 정체를 최선으로 삼았다는 견해도 있습나다. 또 귀족정을 최선의 정체로 삼았지만 여기서의 귀족정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다수의 탁월한 시민들의 지배를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노희천, 2017).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올바른 세 기지 정치체제의 왜곡으로 인해 사적 이익을 위한 정치체제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왕정은 참주정으로, 귀족정은 과두정으로, 혼합정은 민주정으로 왜곡됩니다. 이것들은 시민 전체라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참주정은 독재자의 이익을, 과두정은 부유한 자의 이익을, 민주정은 가난한 자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사진: Unsplash의Pat Whelen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따라가다 약간 의아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난한 자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분리되는 지점이지요. 약자에 대한 보호를 국가의 존재 이유 중 하나로 보는 지금 우리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소위 ‘다중의 우월성’입니다(손병석, 1999).


“소수의 우수한 자들보다는 차라리 다중이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만 한다는 주장은 어떤 난점을 지니고 있으나 그래도 참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다수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자가 아니지만 함께 모임으로써, 즉 각자로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서 소수의 뛰어난 자들보다도 더 나을 수가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中-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마다 시민의 자격 기준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에서의 시민권 부여 기준은 ‘평등’입니다. 민주정에서는 빈자와 부자가 같은 발언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정부에 평등하게 참여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와 다르게 과두정에서는 높은 관직에 오르는 데 높은 재산을 요구하므로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습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가르는 본질적인 기준은 시민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됩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도 시민의 수로 정체를 구별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부유한 사람들은 소수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다수라는 데서 파생된 부수적인 속성에 불과합니다(노희천, 2017).


조금 전 언급한 가난한 자, 즉 약자의 이익 보호 관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이유로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옳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약자의 이익 보호는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이것 때문에 사회계약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대세가 된 이유는 약자 보호에 가장 충실한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가치 또한 약자 보호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약자 보호가 뒷전으로 처진 사회라면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참고문헌

노희천. (2017).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상 국가의 정체에 관하여. 범한철학84, 273-290.

손병석. (1999).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민주주의와 데모스 (dēmos) 의 집합적 지혜. 서양고전학연구14, 135-161.

아리스토텔레스. (2020). 정치학(천병희 역).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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