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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an 19. 2023

안 좋은 습관에 대하여

[오늘한편] 발모증

나에겐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있다. 멀쩡한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이른바 발모증이다. 누군가에게 내보이기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좀 덜 하지 않을까 싶어서 글로 쓰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날에도 유튜브 영상을 틀어둔 채로 하염없이 머리카락을 뜯어대고 있었다. 의식을 해도 그때뿐이지, 잠깐만 방심해도 이미 손이 올라가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딱히 전조증상도 없다.



충동은 갑자기 찾아온다. 멀쩡하게 잘 정돈된 머리카락이 괜히 신경이 쓰인다. 어느샌가 정수리 부근으로 슬금슬금 손을 가져가게 된다. 처음에는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매만지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만지기 시작했을 때는 늦었다. 만지면 만질수록 점점 더 부스스해지는 일만 남았으니까. 그대로 내버려 뒀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계속 만져대니 당연히 머리카락도 갈라질 뿐이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갈라진 부분만 제거하자고 괜한 고집을 부리게 되니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한다.



손가락 끝에 걸리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버석버석하게 거칠어졌을 즈음이면, 만진다기보다는 머리카락을 뜯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최대한 손상된 머리카락만 뜯어내려 보려고 끝자락만 비틀거나 손톱을 이용해 끊어내는 식으로 노력을 해보지만 소용없다. 운 좋게 갈라진 끝부분만 제거되는 경우도 있지만, 하도 건드려서 거칠어진 부분은 이미 한 두 군데가 아니고, 기어코 모근째로 머리카락을 뽑아버리기 부지기수다. 



어느새 책상 위도 길이가 제각각인 머리카락의 잔해들로 너저분해져 있다. 그 광경을 마주하면 언제 이렇게 머리카락을 뽑았나 싶어서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손가락 끝에 걸려서 뽑힌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내 두 눈으로 볼 때만 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머리카락 투성이가 되어 어질러진 책상 위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정수리 부근이 휑해진 것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초등학생 5학년 때였나, 자세한 학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도 머리카락을 하도 뜯어서 땜빵이 난 적이 있었다. 그 자리는 여전히 머리가 자라지 않아서 지금도 다른 곳과 비교하면 듬성듬성 비어있는 게 티가 난다.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을 뜯었던 것이라 추측하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로 더 이상 머리를 뜯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2022년 8월, 작년의 여름 즈음에 또다시 머리카락을 뜯기 시작했다. 이직을 하고 결혼을 앞둔 시점에 이것저것 신경 쓸 일들이 많은 상황이긴 했다.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손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고 머리카락을 뜯어 버릇 했다.



머리 한쪽이 약간 비어있다는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고 곧장 상담을 받았고, 한 달 후에는 거의 뜯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요즘, 또다시 머리카락을 뜯게 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이번에는 머리가 비지는 않았지만, 한쪽이 휑해진 시점에는 늦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조심해야 될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거진 3주가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정말 나쁜 습관은 벗어난 것 같다가도 방심하면 돌아오는 것 같다. 그러니 영원한 극복이란 없는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건강할 때는 나쁜 습관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에 거짓말처럼 다시 고개를 치켜든다. 그리고 가뜩이나 나쁜 상황에 몰려있을 때, 나쁜 습관은 지금의 상황을 더욱더 나빠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아니, 실제로 나빠지고 있는 게 맞다. 그러니 기분이 좋지 않을수록, 어딘가 몸이 나쁠수록 스스로를 좀 더 잘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너무나 쉬우니까.



한 가지 더. 지금의 상황에 의해 나빠질 수는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그럼에도 상황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면, 상황에 압도당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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