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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Oct 30. 2023

관계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또 다른 흔들리는 존재가

며칠 전 당신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종종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그토록 길고도 진지한 메시지는 실로 오랜만이었기에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 앞섰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잔뜩 찡그린 미간과 함께 급히 내린 스크롤 옆으로 펼쳐진 당신의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잡지도 놓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적 있었어요?


물론입니다. 살아온 삶 내내 곁에 있던 그런 애매한 관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남긴 옅은 흔적, 그러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잔상들이 순식간에 희미한 슬픔을 데려왔습니다. '지금' 그 고통에서 허우적거릴 당신이 느낄 묵직한 무게와 짙은 괴로움도 떠올랐습니다. 때마침 코앞에 마감을 앞두고 몸과 마음의 피로에 허덕이던 저는 네가 꼭 안고 뒹굴고 있는 그 비애에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어쩌면 잠시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서글픔을 말입니다. 그래서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짧은 잠에서 깨어난 뒤에야 숨을 고르고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제게 대답을 요청하는 것만 같던 당신의 메시지에 제법 어른처럼 답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을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나름의 답을 써 내려갔죠. 내게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불편한 점을 이야기해 볼 것 같다고. 왜 손을 놓고 싶은지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개선할 방법을 함께 찾아볼 거라고. 그리고 급히 덧붙였습니다. 내 경우엔 불행하게도 그렇게 입 밖으로 내 마음을 내뱉었을 때 오히려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실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비통함에 뒹굴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너무도 슬펐거든요. 내가 상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은 건 그 사람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내 약점을 드러내고자 함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신과 더 가까이, 이전처럼 지내고 싶다는 일종의 사인이었고 나름의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관계는 뜻대로 흐르진 않았죠. 상대는 서서히 제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도망가는 이의 뒤꽁무니를 쫓아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았고, 조금 어릴 때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고, 좀 더 자랐을 때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제 마음을 꺼내는 수고를 했던 건 그렇게 하고 나면 무심히 도망치는 대신 최선을 다한 스스로에게 후회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얘기 한번 못해보고 놓친 관계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종종 미련이 둥둥 떠오르니까요.


그런 메세지를 쓰면서 조금 민망했습니다. 내 관계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이런 얘기 하는 게 우스워서요. 그래서 재빠르게 덧붙였습니다. 어떤 쪽이든 네가 덜 다치고 덜 후회하는 쪽을 선택하라고. 어떤 선택이라도 상처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그랬더니 당신은 제게 다시 물었습니다.

헤어진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점이 후회가 되었어요?괜히 친해졌다? 아니면 끝까지 노력해 볼걸...?


제 대답은 '케바케'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랑 괜히 친해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던가? '거의' 없었던 것 같더군요. '거의'라고 붙이는 이유는 이미 희미해진 학창 시절의 내 마음까진 확신이 없어서였어요. 그 이후에는 엄청나게 상처 입은 관계도 있고 허망한 관계도 있었지만 완전히 쓸모없는 관계는 없던 것 같습니다. 상처라는 그런 것 아닐까요? 죽은 살갗에는 절대 생길 수 없는 것. 살아있는 관계에서만 생길 수 있는 상처와, 그 위에 새 살을 돋우기 위해 애쓴 마음을 이어가면서 분명 한 뼘 자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움직였을 테니까요. 설령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할지라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테니까요.


시간이 아주 흐르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그 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그 사람을 만났다면 서로 상처 주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우린 계속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과거의 그 사람이 과거의 나와 잘 맞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가 꼭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분명 우린 같은 사람이지만 또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자꾸 어긋난다면 조금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틈이 지금의 내게 슬픔을 준대도, 그 사람과 '굳이' 친해졌다는 후회는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 생각합니다. 상처를 '더' 많이 입은 관계는 있지만 상처'만' 입은 관계는 없었다고요. 그 사람 때문에 내 마음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그 사람은 멀쩡하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연결되어 있다면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저 역시 의도치 않게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줬을지 모른다 생각합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가시밭길을 굴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 상처투성이가 되었다면, 그건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 그저 '착취'나 '상하복종'의 영역이 아닐까요? 그런 사이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끊어내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애틋하고 애처로운 관계였을지라도 상대에게 안녕을 고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 경우엔 단번에 잘라내기보다는 서서히 멀어지는 편이지만 말이죠. 물론 반대로 그런 안녕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어쩌면 당했기 보다 그냥 그렇게 된 관계도 있고요. 아무튼 내가 상대를 더 이상 친구로 느끼지 않는 순간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입니다. 변한 게 나인지, 그인지, 혹은 상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시로 바뀌던 권력관계가 더 이상 전복 가능성이 없다고 느낄 때. 그리하여 상대는 내게 항상 동의와 애정을 바라면서 정작 나에겐 경청과 인정을 건네지 않을 때. 그 관계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마 나는 상대의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물론 애정의 정도에 따라 노력에 기울이는 힘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릴 때 그저 같은 학교와 학급에 배정되어 친구로 연결되어 있다가 커가면서 점점 가치관과 취향이 다름을 느끼는 관계. 그래서 대화를 할 때마다 묘하게 엇갈리고 도무지 즐거움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사이. 그럴 땐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나와 다른 사람이 주는 활력과 배움이 있으니까요. 나와 똑같다는 이유로 나를 편하게 하는 사람들만 만나면 내 세계는 점점 더 얕고 편협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여전히 애틋하고 애정 하는 구 제자 현 친구인 당신, 어쩌면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당신이 기대했던 내가, 내가 기대하던 당신이 사라져 있을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 우리가 맺은 인연이 결코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내게 준 기쁨과 슬픔, 설렘과 분노, 감사와 놀람, 행복과 보람, 그 모든 마음과 시간이 소중하니까요. 그러니 당신이 흔들리는 관계에 너무 아파하지 않길 바랍니다. 놀랍게도 매 순간 나를 일으키는 인연은 곁에 있기 마련이니까요. 오랜 인연이든, 새로운 인연이든, 내게 놀라운 온기와 애정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누군가가 반드시 다가옵니다. 그러니 흐릿해지는 인연에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다. 괴로움에 차 있기엔 당신의 인생이 너무 아름다우니까요.


어떤 관계보다 소중한 당신의 손을 놓지 않기를 마음 깊이 바랍니다.


단단하고 따뜻한 당신의 관계를 응원하며,

담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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