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하루를 꿈꾸며
이른 아침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어. 택배의 도착 예정을 알리는 기사님의 메시지였어. 조금 놀란 사실은 그 물품을 전날 밤에 주문했다는 사실이었어. 물론 구매한 제품을 빨리 받아볼 수 있었어 좋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누리는 편리함은 너무 달콤하지만 이게 누군가의 쓰디쓴 땀방울로 채워진 거라면 왠지 입맛을 다실 때마다 따끔거리니 말이야. 그러면서 '개처럼 뛰고 있다'는 말이 떠올랐어. 지난 5월 숨진 숨진 로켓배송 택배 노동자의 카톡 메시지에 있던 말이라지. 우리의 편리함으로 열이 잔뜩 오른 지구가 내뿜는 열기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그려졌어. 알 수 없는 얼굴이라 그려 넣을 수 없었지만 거기에 내가 아는 누군가의 눈, 코, 입을 그려 넣어도 이상하지 않았어. 그게 너무 이상했는데, 또 생각해 보니 이상하지 않더라.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헐떡이며 뛰고 있으니까. 분명 다른 얼굴인데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같았어.
흐릿한 표정으로 동동 거리던 얼굴은 제빵공장에도 있었어. 이른 아침, 홀로 샌드위치 소스를 만들던 그 어린 존재는 기계에 끼여 숨지고 말았지. 그를 삼켜버린 게 교반기라는 사실도, 그게 깊이가 약 50~60cm 정도 되는 통이 달린, 가로·세로·높이가 약 1m쯤 되는 기계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어. 그 커다란 쇳덩이를 힘겹게 휘저어야 손쉽게 입에 넣는 샌드위치가 완성된다는 사실도. 이상하지? 분명 내 손에 무언가가 닿기까지 당연히 그걸 만들고 운반한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을 텐데 그걸 까맣게 잊는다는 게 말이야.
전력도 다르지 않았어.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네 살의 청년의 죽음을 접한 뒤에야 떠올랐지. 내가 늦은 밤에도 쉼 없이 움직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혼자서,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시설 속에 몸을 집어넣으며 말이야. 휴대폰 플래시에만 의지했던 어둠 속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컨베이어 벨트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른 이에게 발견될 때까지 몸통과 머리가 찢어지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명을 삼켜버린 깊고 어두운 곳은 또 있었어. 바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잔뜩 만들어내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가 처리되는 작업장이야. 차에 실린 음식물 쓰레기를 삽으로 퍼내서 저장소에 붓던 노동자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지하 저장소로 떨어졌대. 깊이 3m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몸보다 심장이 더 먼저 바닥으로 떨어지진 않았을까?
이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슬퍼져. 누군가의 죽음 언제나 마음 아픈 일이니까.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하지만 더 처참한 건 죽음 그 자체보다 이런 일들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었어. 왜 우리는 출근해서 아무 사고 없이 퇴근하는 자연스러운 일상조차 갖기 어려운 걸까? 자꾸만 반복되는 이 장면의 주인공이 어쩌면 내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삶의 미세하게 흔들었어.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 따윈 금세 사라지고 마는 헛헛함을 볼 때마다 그 진동은 더 거세졌지. 무력감과 허망함이 밀려들 때마다 더 크게 흔들렸어.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점점 강해지는 흔들림에도 익숙해지는 나였어.
그럴 때마다 내가 읽은 사건 속에 담긴 그 '사람'을 마주하려고 했어. 그들의 일상, 그들이 서 있던 장면을 떠올려 봤지. 그러면 문득 그들이 죽어간 시간에 놀라곤 했어. 공교롭게도 그들은 대부분 어둠 속에서 사망했어. 집에 돌아오는 길이나 휴식을 취하다 죽은 게 아니라 일을 하다 사망한 경우에도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모두 잠에 빠져있거나 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 어두컴컴한 시간, 그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야. 놀랍지 않니? 우리가 눈 감은 동안 생각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게 말이야.
혹시 생각해 본 적 있니? 분명 우리가 이용하는 건물을 깨끗한데 건물 계단이나 복도를 청소하는 분들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매일 변기로 흘려보내는 배설물들을 누군가는 치워야 할 텐데, 정화조를 처리하는 노동자도, 음식물을 비롯한 악취 나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노동자도 쉽게 마주치기 어렵잖아. 의외로 밤늦게까지 장시간 야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혹은 낮과 밤이 뒤바뀐 야간 노동자가 꽤 많다는 걸 알고 있니? 새벽 배송만 해도 그래. 우리가 잠든 사이 쉴 새 없이 택배 노동자들이 움직이는 거잖아. 방송국, 대학교, 병원, 공항, 지하철, 급식소, 편의점 같은 많은 곳도 마찬가지겠지? 세상이 주목하지 않지만 삶에 없어선 안 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이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고, 새삼스러워하는 내가 참 새삼스럽기도 해.
가끔 보면 이 세상 전체가 거대한 백조 같아. 겉으로 보이는 우아함을 위해 사정없이 움직이고 있는 발버둥을 수면 아래로 숨겨버리니 말이야. 미디어나 sns에 예쁘고 멋진 모습이 도배되는 동안 치열하게 땀 흘리고 더러운 걸 닦아내는 사람들은 까맣게 지워내는 것만 같아. 저 멀리 구석으로, 밤으로 밀어내면서 말이야. 그림자처럼 말이야.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인구 감소가 우려된다고 저출생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큰 소리를 외치면서 왜 정작 살아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그대로 두는 걸까?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만들라고 아우성칠 게 아니라 이미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죽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닐까?
노동자의 죽음이 마주할 때마다 생각지 못한 비상식적인 상황에 놀라곤 해.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가 '2인 1조'라는 작업 수칙이야.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빠른 구조 요청이라도 이뤄졌을 텐데 그게 지켜지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는 거지. 그 규칙은 안 지킨 이유는 너무도 진부해서 슬픔도 도망갈 지경이야. 돈. 사측은 언제나 비용 감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인력은 곧 비용이니까.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인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노동하는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길 희망한다면 너무 과한 요구일까?
직장에 다니다 보면 스스로도 종종 헷갈릴 때가 있었어. 나는 일하는 기계인가, 일하는 사람인가, 하는. 나는 분명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직장에 들어갔는데, 직장에서는 나를 말하는(말 잘 들어야 하는) 기계로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거든. 조직의 목표를 위해 성과를 내야 하는 도구 말이야.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은 지워야 하고, 견디기 힘든 노동 강도를 요구받기도 했지. 그러다 보면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지고 인간으로서의 예의도 사실 잃어가는 것 같았어.
물론 꼭 내가 있던 조직만 그런 건 아닐 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나 최고의 가치는 돈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 적은 사람을 힘들게 굴리는 게 효율적이다 싶으면 그렇게 하는 거고, 돈이 절약된다면 누가 다치든 죽어나가든 상관없는 거야. 실제로 예전에 한 자동차 회사에서 이미 시장에 출시한 모델 연료 탱크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어. 그 때문에 1년에 수백 명이 사망할 거라고 예측되었어. 하지만 리콜은 물론 다른 일체의 조치도 하지 않았지. 리콜 조치를 취하거나 그 모델을 보완하는 비용보다 사망자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이 더 저렴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거든.
그들의 선택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경악과 분노 어떤 감정이 먼저랄 것도 없이 단단하게 뒤섞여 버렸거든. 잠시 후엔 등골이 서늘해졌어. 낯설지 않은 상황 같았거든.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최고 높은 자리를 차지할 때가 많아. 당연히 자본보다 인간이 먼저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내가 다치는 것보다 핸드폰이나 노트북이 다치는 거에 더 마음 졸이고, 무슨 사고가 터졌을 때 계산기를 빠르게 돌리고 있는 나만 봐도 그렇거든. '돈 님'을 떠받드는 이 시대에, '돈 님'이 없으면 아무 구실도 못하는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 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얘들아, 돈을 사랑해도 돈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인공지능이 난무하면서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돈 님'이 '인간 따위'를 앞질러가는 시대이기에 더욱더 '인간'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타인이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태도, 생명을 가진 존재를 존중하는 마음, 무참하게 이유 없이 누군가가 죽어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음을 잊지 않는 의식하는 노력 같은 것들 말이야. 우린 돈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니까.
돈이 있어야 살고, 돈이 중심인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에 흔들릴 때가 많겠지만 허덕이는 마음에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단단한 법과 제도가 필요할 거야. 하지만 당장 우리가 그것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해서 눈을 감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사람이니까. 약해서 악함을 드러내지만 또 약해서 약함을 알아보고 끌어안을 수 있는 존재니까. 흔들리더라도 눈물 쏟는, 피 흘리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약할수록 함께 해야 하는 법이니까.
우리 같이 용기를 내어 보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