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어떤 수저를 갖고 싶으세요?"
한동안 많이 떠돌던 금수저, 은수저에 더해 웃수저, 근수저, 말수저까지 이런저런 수저 앞에서 누군가 내게 물었어. 그 질문 앞에서 난 갖고 싶은 것보다 갖고 있는 게 뭘까 생각했어. 재능이든, 권력이든 남들보다 낫다고 내세울 만한 게 있는지 찬찬히 뜯어보았지. 아무리 봐도 딱히 자랑만 한 게 없는 거야. 그때 문득 떠올랐어. 아, 나 서울 사람이지.
사실 내게 서울이라는 건 별 의미 없는 행정구역명에 지나지 않았어. 명절이 되면 찾아갈 시골이 없다는 아쉬움을 제외하면 딱히 실을 감정조차 없는 무미건조한 단어였지. 비슷한 맥락에서 '서울'에 산다는 사실이 불편으로 다가왔던 적은 없었어. 학창 시절 강남과 비교하는 선생님의 잔소리를 들을 때나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1시간 넘게 이동해야 겨우 목적지에 닿을 때 살짝 설움이 올라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휘발되는 가벼움이었거든. 그래 서였을 거야. '서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건. 다른 지역 출신 친구들이 자기 도시의 인구수 따위를 말할 때 아무 말없이 잠자코 있는 나를 보며 처음으로 깨달았어.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찾아본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2023.03. 기준) 우리나라 전국 인구는 약 5천1백만이고, 그중 서울 인구는 약 9백만 명이라더라. 약 1천3백만 명인 경기도 인구까지 보면 수도권에 인구의 약 2/5가 모여 사는 거야. 왜 이렇게 많은 인구가 서울로 몰리는 걸까? 한 때 김포시 서울 편입에 대한 논의가 출렁였을 때도 사실 의문이 들었어. 서울로 편입되면 대체 뭐가 좋은 걸까? 당시 '김포골드라인' 문제로 대표되는 교통난이 제기되긴 했지만 김포시가 서울에 편입된다고 해서 지리적 위치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 그런 교통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대체 서울이 뭐길래?
서울살이 역시 녹록지 않아. 아무래도 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보면 그만큼 개인에게 허락된 공간이 좁아지는 게 인지상정이잖아. 그런 환경에서 인간은 더 까칠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아무래도 서울에선 사람들이 뾰족해지는 것 같아. 한정된 땅덩이에 사람들이 몰리니 집값이 높은 건 당연하고. 그래서 생각했지. 꼭 서울에서 살 필요는 없다고. 높은 건물도, 자동차도, 사람도 적은 다른 지역에서 살고 싶다고. 그런데 막상 새로운 지역으로 가려니까 덜컥 겁이 나는 거야.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적은 그곳에 내게 필요한 것도 적을 거란 생각을, 그제야 하게 된 거야.
일단 일자리가 걱정이 됐어. 프리랜서라 상대적으로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긴 하지만 적어도 협업할 사람들이나 내가 진행할 프로그램 수요자가 주변에 있어야 하잖아. 사람, 그것도 내 또래의 젊은이들이 없다는 건 가장 큰 문제였어. 일자리뿐 아니라 관계 그 자체 역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니까. 북적북적한 사람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연결될 사람은 필요했어. 부족한 건 사람만이 아니었어. 편의시설도 서울에 비해 확연히 적었지. 영화관이야 OTT가 있고, 공연이나 전시는 가끔씩 특별 이벤트로 보면 된다지만 책방이나 카페, 재밌는 문화공간이나 도서관 같은 곳은 포기하기 힘들거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병원과 약국 같은 의료 시설이 적은 걸 보니 삶의 공간으로 매력도가 떨어지더라고. 그제야 '서울에는 대학 병원이 많다'던 친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절실히 다가왔어.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어. 상대적으로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많다 보니 경비 문제도 신경이 쓰였고, 소위 말하는 혐오시설이 갑자기 삶의 공간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어. 땅이 넓고 사람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게 아닐까, 주민들과 함께 반대를 외쳐도 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목소리가 중앙으로, 다른 곳으로 닿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불쑥 들더라고. 실제로 서울 사람이 사용하는 전력이나 사용했던 쓰레기를 외곽에서 끌어오거나 내버리는 경우가 많잖아. 쓰고 버릴 때는 그저 조금 따갑기만 했던 사실이 이제는 너무도 무겁게 느껴지는 거야. 우습게도.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중앙까지 목소리가 닿지 않을 거란 두려움도 컸어. 수도권에 비해 다른 지역은 거주 인구도, 그 지역을 대변할 지역구 의원 수도 적으니까 자꾸 음성이 희미해지잖아. 인구 비레로 확정되는 선거구 원칙 때문에 '구' 하나도 서초갑, 서초을로 쪼개서 뽑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엄청나게 넓은 지역 여러 개를 하나로 묶어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기도 하잖아. 지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인구수에 비례해서 뽑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있었지만 요즘같이 지역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에선 결과적으로 수도권집중 현상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닌가 싶어.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더 크게 높이는 지역구 의원의 대다수가 수도권에 기반하기에, 다른 지역을 소외시키는 정책을 입안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지역에 사는 이들은 이런 두려움이나 불편을 안고 사는 걸까? 아니면 이미 중앙에 젖어 있는 내가 유독 그걸 놓지 못하는 걸까?
그제야 대학 동기나 후배들이 재수를 서울에서 했다든가, 논술이나 면접 준비를 위해 서울 학원을 다녔다는 말이 선명해졌어. 서울에 비해 드문 불빛과 인적도 낭만이 아니라 불편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지. 감탄했던 빽빽하지 않은 거리나 시야를 가리지 않는 낮은 건물도 다르게 보였어. 그게 그 지역 주민들에게 옅은 설움이라는 사실이 어렴풋이 피부에 스쳤어. 뚜벅이로 지방 소도시를 여행할 때 그저 조금 불편하다고만 느꼈던 대중교통도 크게 다가왔지. 그곳에 터전을 잡고 생활하는 지역 주민은 평소에 얼마나 불편할까. 특히 요즘은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비율이 높다고 운전면허증 반납을 이야기하잖아. 지방 도시에 고연령층의 비율이 높은데 대중교통은 이렇게 불편하면, 노인들은 집 안에만 있으란 소린가?
그제야 명확하게 깨달았어. 내가 서울에 태어나 줄곧 서울에 살았던 건 작지만 확실한 특권이었다는 사실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그래서 내가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게 진짜 권력이니까. 나는 서울 사람이고,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이 사회가 얼마나 서울 중심적인지, 학벌주의가 얼마나 심한지, 장애인에게 얼마나 불친절한지 알지 못했어. 하지만 결국엔 한쪽으로 쏠린 세상은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서울 쏠림 현상은 다른 지역 사람은 물론이고 서울 사람에게도 좋지 않으니 말이야. 그저 떠나지 못할 뿐이지. 그러니 조금 더 균형 있는 사회가, 어디서 살아도 괜찮은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