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사월도
ㅃ...삐ㄱ...그어걱-
녹슨 대문은 앓는 소리를 냈다. 손에 잡히는 감각, 느껴지는 무게와 소리까지 전부 낯설게만 느껴졌다. 오랜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집 대문을 밀고 들어온 장면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서울로 올라오게 된 이후로. 항상 마중 나온 엄마가 앞장서 문을 열어주었구나, 쉼 없이 재잘대던 엄마 목소리에 삐그덕 대는 소리가 묻혔던 거구나. 가스레인지 위 붉은 찌개를 토해낸 냄비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개수대엔 정리되지 않은 감자 껍질, 애호박 끝동이 썩은 내를 풍기고 있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집에 들를 정신이 없었고, 끝나자마자 직장 짐을 정리하러 급히 서울로 돌아간 뒤로 꼼짝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죽음 앞에서 온전히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엄마의 마지막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일상이었던 모양이다. 조금 위로가 됐다. 엄마의 일상이 파괴되지 않은 채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된 건 분명 다행인 일이었다.
엄마의 사인은 뇌진탕이었다. 며칠 전 넘어졌다는 말을 흘려 넘긴 게 마음이 쓰였다. 아니, 어쩌면 조금 화를 냈을 지도 모른다. 칠칠치 못하게 왜 넘어지는 거냐고, 병원에 좀 가라고, 엄마를 위하는 척 짜증을 위선으로 가려보다 결국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며 그 얄팍함을 드러내고 말았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묻는 엄마에게 별 일 없다고, 그냥 좀 힘이 없는 거 뿐이라고, 엄마한테까지 내가 괜찮은 척을 해야 하는 거냐고 뾰족한 말을 뱉고 있었다. 며칠 후 엄마는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프지 않아서가 첫 번째 이유였지만,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나 떠맡아야 할 마음의 무게가 더해지지 않은 덕도 컸다. 이만한 게 다행이라고 말하는 엄마는 실은 괜찮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을 뿐. 그때의 뇌출혈이 갑작스레 엄마를 삼켜버렸다. 혜린에게 엄마의 소식을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택시를 호출하는 것, 주말이라 꽉 막힌 도로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 이미 차갑게 식은 엄마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괜찮다는 엄마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됐다. 아니, 실은 믿지 않았지만 믿는 척 한 게 문제였다. 괜찮다는 건 거짓말일 뿐인데. 어릴 때는 괜찮다는 엄마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래서 아빠가 정말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아빠가 곧 큰돈을 벌어 돌아올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에 온 건 아빠가 아닌 낯선 남자들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그들ㄹ은 온 집안을 헤집어놨다. 가구에 붙은 시뻘건 딱지, 바닥에 찍힌 시꺼먼 발자국보다 선명한 건 새하얗게 질린 엄마의 얼굴이었다. 단단하던 엄마가 일그러졌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엄마는 분명 녹아내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엄마를 놓치지 않기 위해 꼭 붙잡았다. 하지만 그때도 엄마는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야반도주하듯 쫓겨온 낯선 촌구석이 싫었다. 사월도라니. 이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래를 따라 출렁이는 바다 위에 뜬 달이라나. 모래사장도 아니고 모래갯벌을 따라 출렁이는 혼탁한 바닷물, 찝찝함이 섞인 냄새, 바짓단과 운동화를 더럽히는 흙바닥, 칠이 벗겨진 철제 대문들과 까진 담벼락, 무미 건조하게 고만고만한 건물까지 전부 못마땅했지만 가장 싫은 건 사람과의 거리감이었다. 불쑥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들이 무례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도망치거나 소리치는 대신 견디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나는 엄마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바닥에 펼쳐진 이불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둥글게 자국이 남은 베개에 머리를 대고 엄마가 늘 눕던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침대 하나 놓자고 할 때마다 등허리가 푹신한 요에 닿는 맛이 있다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뜨끈해서 얼마나 좋을지 모른다며 고집스럽게 웃던 엄마가 아른거렸다. 이불속을 더 파고들었다. 엄마의 체취가 묻어났다. 더는 괜찮은 척 할 필요가 없었다. 내 주변엔 아무도 없으니까. 젖은 눈을 감았다.
끼이이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엄만가. 아니, 영혼은 소리를 내지 않을 텐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누구냐고 말하려 했지만 소리는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했다. 잠시 후 안방 문이 스르르 열렸다. 혜린이었다.
혜린은 사월도에서 제일 먼저 사귄 친구였다. '이 집에 이사왔냐'고 해사하게 묻던 날, 혜린은 엄마한테 ‘다 큰 어른이 동생한테 양보를 안 한다’고 욕바가지를 얻어먹고 집을 뛰쳐 나온 참이었다고 했다. 거짓말을 잘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혼났다고 하기엔 너무도 말간 얼굴을 들이밀었기에. 그런 건 넉넉함에서 나오는 여유 아닌가.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혜린의 손을 잡고 있었다. 혜린은 꽁꽁 싸맨 내 세계를 푹 찌르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서서히 녹여왔다. 다짜고짜 다정하게 부르는 내 이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혜린과 함께 사월도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엄마는 그런 혜린을 반겼고, 가끔 용돈이나 숟가락을 쥐어 주곤 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혜린과의 인연이 시작된 건.
내가 서울로 온 뒤로 엄마를 살뜰히 챙긴 건 혜린이었다. 엄마의 장례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물쭈물하는 내게 상복을 입히고 영정사진을 무엇으로 할지, 장례식장 음식은 어떻게 준비할지, 제단 꽃 장식과 수의, 유골함, 빈소용품 따위를 고른 것도 혜린이었다. 그런 혜린이 미더웠다. 하지만 조문객과 손을 맞잡고 엄마와 나누어 마셨던 담근주 맛이나 통기타를 배운다고 얼얼해진 손가락 같은 것을 꺼낼 때는 조금 껄끄러웠다. 엄마와 음주가무라니. 대체 우리 엄마를 얼마나 안다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건너편으로 들어가는 화려한 조의화환을 보자 입이 다물어졌다. 번듯한 직장을 다녔으면 회사 이름 떡 하니 새겨진 화환과 테이블 비닐, 젓가락이 놓여 있었을 텐데. 그 이름의 명함을 품고 다니는 사람들의 신발이 수북하게 모여 있었을 텐데. 딸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고 염습실에서 누워 있는 엄마의 엉덩이와 손가락 끝을 집요하게 노려봤다.
혜린이 말아준 밥을 억지로 씹어 넘겼다. 먹는 걸 보고 가겠다고 기어이 자리를 틀고 앉았다. 으레 하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벽에 등을 기대고 움직이지 않았다. 고집이라고 하기엔 뭔가 능글맞은 구석이 있어서 오히려 단칼에 끊기가 어려웠다. 결국 먼저 마음을 접은 건 나였다. 분명 축축하고 물컹한 느낌인데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거칠고 거북했지만 꾸역꾸역 삼켰다. 혜린을 내보내기 위해. 그런 내게 혜린이 물었다. 겨우겨우 넘긴 음식물과 함께 혜린의 목소리가 역류하는 듯했다.
그때도 혜린은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 내 손을 잡고 앞장서서 우리가 다니게 될 중학교의 위치와 학생 수 따위를 읊어대던 날이었다. 어느 집에 누렁이가 살고, 어느 집에 또래가 있는지 같은 것들도 읊어댔다. 어느 집 아저씨, 아줌마가 용돈을 잘 주고, 어느 집에 가면 맛있는 걸 잘 얻어먹을 수 있지도 재잘댔다. 그중 내가 알고 싶은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많은 것들을 도대체 왜, 어떻게 꿰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저 나른하고 밋밋한 촌구석을 벗어나고 싶었다. 혜린의 손을 놓고 달렸다. 길을 알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길을 잃고 이곳에 떨어진 거 아닌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손바닥에 붉은 피가 스며 나왔다. 그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였다. 뒤따라 온 혜린이 내게 물은 건.
“너, 여기 온 게 싫어?”
“......”
“나도, 싫어.”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축축한 내 눈을 보며 혜린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커서 여길 떠날 거야. 그리고 여기 사람 아무랑도 연락 안 할 거야.”
“여기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잘 아는 거 아니야?”
“싫어해도 잘 아는 거 많은데. 넌 아니야?”
혜린이 좋아졌다. 낯선 공간을 싫어하는 동지가 생긴 것도, 누군가의 비밀을 알게 된 것도.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꼭 어른이 되어 이 동네를 떠나자고, 그리고 다시는 발 붙이지 말자고. 그 맹세를 배신한 건 혜린이었다.